"둘 다 싫지만 투표는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
[더팩트ㅣ여의도동=박숙현·연남동=문혜현 기자] "파란만장했잖아요. 약간 굴곡도 많았고 여러 이슈들이 생겼고... 그게 결과로 나오게 되겠죠."
"선택하기 어려웠어요.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차악을 찍어야 한다는 분위기에요. 어느 쪽이든 (투표) 의지는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2일 오전 6시부터 서울과 부산 지역 21개 선거구 722개 투표소에서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전날(1일)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돼 오는 7일까지 '깜깜이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가운데 사전투표 민심은 본 선거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투표를 마친 이들은 후보 판단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 등 정권심판론, 견제론, 인물 도덕성 등을 꼽았다. 거대 양당 후보에 실망한 다수의 시민들은 "차악이라도 뽑자"는 심정으로 투표장에 나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2시께 여의도동 사전투표장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장을 입고 온 시민들도 이따금 보였다. 인터뷰에 응한 시민 다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해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가 촉발한 부동산 문제에 대한 불만이 컸다.
서초구 주민인 김 모(40대 중반·여성) 씨는 "전에는 안 뽑았던 사람을 놓고 고민했다. 아무래도 현 정치권 대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부동산 대책도 그렇다. 지금 정권과 맞는 사람을 뽑자니 내 집이 망하게 생겼다. 사실 저는 집값 오르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며 "1가구 1주택인데 세금을 너무 많이 내야 하는 상황이다. 1가구 1주택자와 장기 보유 가구에는 그런(세금 완화) 게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이 무조건 서울 시내 9억 이하 기준으로 (조세 정책)하는 게 가장 불만이다"라고 했다.
50대 여성도 "이번 정부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게 많다. 부동산 같은 경우도 그래서"라며 "후보 믿고 찍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내내 여권이 강하게 제기해온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도 부동산 이슈를 이기지 못하는 듯했다. 김 씨는 "사실 제 남편도 처가 재산 모르지 않는다. 이야기 안 해도 다 안다. 제가 봐도 오 후보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걸 거짓말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서울시장 되는 데 있어 자격에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양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소 제게는 내곡동이 (선거) 당락하고는 연결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그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자였다. 김 씨는 "솔직히 박 후보를 좋아한다. 팬이다. 얼마 전에도 우연히 지나가다 악수할 기회가 있었다. LH만 터지지 않았어도 굉장히 좋은 위치에서 잘 풀렸을 텐데 유권자로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아쉬워했다.
후보의 도덕성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이도 있었다. 사전투표장 근처에 거주하는 A(59세·남성) 씨는 "저는 이번 선거가 정권 심판이냐, 서울 시정에 대한 반성이냐의 구도로 봤다"며 "이번 보궐 선거가 박원순 시장 스캔들이 있어서 사실 민주당을 별로 지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투표하지 않거나 기대감 상실 상황이었는데 막상 선거를 앞두다 보니 대체 세력으로 나와 있는 분을 파악했을 때 서울시장을 맡기기엔 부도덕하거나 정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가장 큰 건 내곡동 땅 문제였다고 본다. 솔직히 자기 처가 땅 측량하는 데 입회하는 거 별로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았나. 솔직한 입장을 취했으면 맞는데 오히려 간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하니 신뢰 부분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문제가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오 후보를 비판했다.
정권심판론 분위기도 강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조 모(40·남성) 씨는 "오 후보가 무상급식 때문에 서울시장직 걸고 개표도 못했던 불상사가 있었지만, 지금 집권여당이 과반수 이상 차지해서 법안 통과할 때도 너무 견제가 되지 않는다. 정치라는 건 견제돼야 할 것 같은데 견제가 전혀 안 된다"며 "(내년)지방선거 하면서 어쨌든 모든 행정처리는 서울시장 주관하에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견제가 가능한 당을 뽑는 것이었다"며 "이제 잘하리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는 총 12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거대 양당이 단일 후보를 만들면서 유권자들에게는 사실상 양자 대결로 인식된다. 그 가운데서도 제3후보를 택한 이도 보였다. 투표장을 나온 20대 여성은 "일단 1, 2번은 아니다. 양쪽에 권력이 쏠려 있어서 그런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 다른 데 뽑았다"고 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20·30세대는 과거와 달리 이번 선거에서 야권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다만 지지가 결과로 나타나려면 투표장에 나와야 한다. 대학가 근처에 있는 마포구 연남동 사전투표에서도 오후 내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점심시간대라 주로 근처 직장인, 대학생을 포함해 20대로 보이는 젊은 층이 많이 찾았다.
30대 여성 B 씨는 "직장이 여기라서 온 건데, 회사 사람들은 사전투표하자고 해서 거의 다 왔다. 밥 먹을 때도 사전투표 언제 하자고 해서 온 거다. 다들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연남동 투표장에서도 정권심판 목소리가 나왔다. 한 30대 남성은 "이번 정권이 남 탓만 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자기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남성도 "부동산 정책이나 인사들을 봤다. 정부 정책이 (투표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 후보 사이에서 확신하지 못하고 고민 끝에 한 표를 행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B 씨는 "다 비슷하고 더 나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잘하려고 하기보다 본인과 정당 입장, 표를 위해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다"며 "그래서 사실 선택하기 어려웠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차악을 찍어야 한다는 분위기다. (그래도)어느 쪽이든 (투표) 의지는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은 "(사람들) 70%가 둘 다 싫다고 생각할 거다. 오 후보는 독불장군 같고, 박 후보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도 "현 정부의 부동산 실책과 LH사태로 실망을 너무 많이 했다. 그렇다고 야당이 신뢰가 갈 만큼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투표장에 나서고 싶지 않을 만큼 양 진영에 실망을 많이 했지만, 투표는 내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작은 시작이라는 마음에 신중하게 투표를 하고 왔다"고 했다.
정치권에 실망해 아예 무관심층으로 빠진 이들도 있었다. 투표소 앞을 지나친 한 30대 남성은 "20대에 투표권이 생긴 뒤로 민주당을 찍어왔지만 이번 LH사태와 부동산 상승을 보며 투표할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오 후보를 뽑기는 싫어서 투표할 생각이 없다. 원래는 기권이라도 찍겠지만 그것조차 싫어졌다"고 말했다. 투표소 앞 카페에서 일하는 20대 남성도 "(두 후보) 딱히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선거에는 크게 관심 없다"고 했다.
한편 사전투표 첫날인 이날 최종 투표율은 9.14%로, 서울은 9.65%, 부산은 8.63%를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사전투표 결과, 전국 1216만1624명 유권자 중 111만2167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시장 선거에 81만3218명이 참여해 전국 평균보다 높은 9.6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부산시장 선거는 25만3323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8.63%였다.
이번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는 3일까지 이어진다. 투표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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