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0명대 출산율 국가이다. 2018년 0명대 출산율 진입 후에도 매년 낮아져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인 0.84명까지 추락했다. 초저출산국으로 진입한 이후 19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230조 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사실상 전무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은 대체 어디에 쓰인 것일까. 그간의 정부 대책과 예산의 쓰임새를 살펴봤다. 초저출산 장기화로 인해 '결정된 가까운 미래'도 그려봤다. 나아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초저출산 19년, '230조' 넘게 쓰고도 효과 전무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숙제다. 저출산 위기가 20년가량 이어지면서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게 식상할 정도로 위기에 무뎌지기도 했다. 그 결과 위기의 현실화가 우리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초저출산 장기화로 결정된 미래는 조만간 현실이 된다.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후손이 치러야 할 대가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2410명으로 전년 대비 10%나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전년(0.92명) 대비 0.08명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저치 기록을 최근 수년간 계속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자는 30만5127명으로 처음으로 인구가 '자연감소'(3만2718명)하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세는 진행형이다. 특히 지난해엔 코로나19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혼인인구도 급감했다. 지난해 전국 혼인 건수는 21만3513건으로 전년 대비 10.7% 줄었다. 인구 자연 감소세가 앞으로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실제 김수영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지난달 말 2020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전년의 경우 코로나로 혼인이 많이 감소한 상태에서 출생아 수가 조금 더 감소할 여지가 있고, 인구 고령화로 사망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자연감소는 조금 더 가팔라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초저출산(1.3명 이하)으로 진입한 시점은 2002년이다. 당시 1.18명을 기록하면서 초저출산에 진입한 이후 1.0명대 초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 2018년부터는 아예 0점대로 진입했다. 당연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꼴찌다(2018년 기준 OECD 평균 1.63명).
이 기간 우리나라는 정권이 네 번 바뀌었고, 진보 정권 시기 출산율이 보수 정권 시기에 비해 출산율이 더 낮았다. 김대중 정부 임기말 초저출산국으로 진입한 이후 △2003년 1.19명 △2004년 1.16명 △2005년 1.09명 △2006년 1.13명 △2007년 1.26명 등 노무현 정부 시절 평균 출산율은 1.17명이다. 문재인 정부 출산율은 △2017년 1.05명 △2018년 0.98명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으로 평균 약 0.95명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19명 △2009년 1.15명 △2010년 1.23명 △2011년 1.24명 △2012년 1.30명으로 평균 1.22명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2013년 1.19명 △2014년 1.21명 △2015년 1.24명 △2016년 1.17명으로 평균 1.20명을 기록했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대응으로 위해 2006년 이후 5년 단위로 3차례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해 3단계까지 마무리됐다.
'출산·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을 목표로 시행한 제1차(2006~2010) 기본계획(새로마지 플랜 2010) 중 저출산 대책 재정은 19조7081억 원이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6년 2조1445억 원, 2007년 3조651억 원, 2008년 3조8274억 원, 2009년 4조7878억 원, 2010년 5조8833억 원 등으로 매년 늘었다.
이 기간 중앙부처의 저출산 관련 대책 시행계획을 살펴보면 매년 집중 투자한 분야가 조금씩 달라졌다. 초기 2년은 평균소득 70% 이하 보육료 지원에 1조5204억, 만 5세 무상보육료 지원에 5706억, 민간보육시설 영아 기본보조금 5135억 등 출산 후 양육 지원에 재정이 집중 투입됐다.
여기에 여성농업인 일손돕기 지원 892억, 템플스테이 등 가족 여가문화 지원 310억, 학교 문화예술교육 내실화 342억 등 저출산 대책과 직접적 관련성이 낮은 대책도 저출산 대책 명목으로 사용됐다.
2009~2010년은 영유아 보육비 지원에 6조55억, 유아교육비 지원에 9822억, 산전후 휴가급여 지원에 3939억 원 등이 투입됐다. 이때도 템플스테이 및 전통한옥 숙박체험시설 확충 등 가족여가 프로그램 개발에 711억 원이 저출산 대책 예산이라는 명목으로 투입됐다.
'출산율의 점진적 회복'을 목표로 시행한 제2차(2011~2015년) 계획(새로마지 플랜 2015)은 맞벌이 등 일하는 가정을 대상으로 정책을 확대해 2011년 7조3950억, 2012년 11조430억, 2013년 13조5249억, 2014년 13조8586억, 2015년 20조1985억 등 총 66조200억 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해당 기간 총 투자액의 절반이 넘는 38조4791억 원이 영유아보육·교육비 지원에 투입됐다. 현금성 지원에 해당하는 양육수당 지원액은 5조8368억 원, 산전후 휴가급여액 2조9468억 원 등이다. 2014년부터는 신혼부부 등의 주거부담 경감을 위해 행복주택 입주지원 사업을 시행하면서 1조4748억 원의 재원을 투입했는데, 이 중 40%는 나중에 돌려받는 융자 지원이었다.
2차 계획에서도 학교 문화예술교육 활성화(3551억), 저소득층 문화바우처(1494억) 지원, 청소년 성범죄 예방활동 강화(1242억), 인터넷 중독·음주·흡연 예방(26억) 등 저출산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업에 수천억 원이 투입됐다.
제3차(2016~2020년) 계획(브릿지 플랜 2020)은 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시행했다가, 2019년 '삶의 질 개선, 성 평등 구현, 인구변화 적극 대비'로 목표를 변경했다.
재정 투입도 급격히 늘었다. 이 기간 저출산 대책으로 투입된 재정은 2016년 21조4173억 원, 2017년 24조1150억 원, 2018년 26조3189억 원, 2019년 37조1297억, 2020년 40조1906억 등 총 149조1715억 원에 달한다.
재정이 집중 투입된 사업을 살펴보면 출산 및 양육·돌봄 지원에 82조4834억 원, 청년 일자리 및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에 45조6312억 원 등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 청년 해외취업 지원, 대한창조일자리센터 지원, 청소년수련시설 건립 등 저출산 대책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사업에도 조 단위 재정이 투입됐다.
지난 15년간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총 235조 원가량의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했지만, 세계 꼴찌 출산율을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저출산 대책으로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2017년 12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의에 참석한 뒤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2018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국회도 무관심한 것은 마찬가지다. 행정부의 수장과 입법부의 시선에 저출산 문제가 멀어진 사이 세계 출산율 꼴찌 지속으로 인한 부작용은 우리 눈앞으로 다가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측은 지난 15년간의 저출산 정책에 대해 "출산·양육 서비스 위주 정책 확장으로 양육비용이 여전히 부담된다는 인식 등 국민 체감도에 한계가 있었고,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제도 외형은 마련되었으나 고용보험 가입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한 상황"이라며 "사회 구조적 요인에 대한 개선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고, 실질적인 행태변화 및 제도화가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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