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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심판론 커질라…'애매모호' 민주당, 대응책 고심

  • 정치 | 2021-03-18 00:00
17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2차 가해 징계' 요청에 대해
17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2차 가해 징계' 요청에 대해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며 우회적으로 거부 입장을 밝혔다. 여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박 후보. /이새롬 기자

피해자 "2차 가해 조치" 요구에 박영선 "제가 모두 짊어지겠다"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 선거를 20여 일 앞두고 '성범죄 심판론' 재점화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가 직접 나서 민주당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에 2차 가해자 징계 등 조치를 요구하면서다. 하지만 이번에도 민주당은 거듭 사과할 뿐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당사자가 직접 나선 후에야 선거용 늑장 대응에 착수하고, 그마저도 사과로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 A 씨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 진정성을 꼬집으며 책임을 묻자 민주당은 곤혹스러운 모양새다.

A 씨는 이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박 후보의 과거 사과를 언급하며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를 짚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거듭 요청했음에도 2차 가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와 사과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박 후보) 선거 캠프에는 저를 상처 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그들이) 사과를 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인정과 그리고 후속적인 조치가 있었어야 된다"고 비판했다.

A 씨가 언급한 이들은 최근 박 후보 선거 캠프에 합류한 남인순 공동선대본부장, 고민정 대변인, 진선미 의원 등이다. 이들은 지난 박원순 사태 국면에서 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명의 성명서에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르도록 주도했거나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특히 피소 사실 유출로 논란이 된 남 의원에 대해 '당 차원의 징계'를 요청했다.

피해자 A 씨는 더불어민주당과 박영선 후보에 2차 가해자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를 요청했다. 이날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피해자 A 씨는 더불어민주당과 박영선 후보에 2차 가해자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를 요청했다. 이날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은 A 씨에게 거듭 사과했지만 그가 요구한 2차 가해자 징계 등 실질적인 조치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신영대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저녁 늦게 논평을 통해 "그간 피해자께서 겪었을 고통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위력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피해자분의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겁고 숙연해진다"며 "그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말조차 조심스럽다. 다시 한번 피해자 분께 진심으로 사죄 드린다"고 했다. 이어 "더 이상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와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위한 실질적 방안 마련과 함께 성 비위 행위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으로 단호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했다.

대응 방식에 따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박 후보 측과 의견 조율 후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까지도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A 씨의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아직 (A 씨의 기자회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캠프에서 대응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우리가 언급할 수 없다"고 답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당이 먼저 나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적극적인 반성과 성찰을 보이는 것이 타개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우리 민주당의 잘못으로 생긴 선거다. 책임도, 해결도 우리의 의무다. 피해자에 이뤄지고 있는 2차 가해 역시 우리 당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며 "2차 가해에 대한 당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다. 우리 당 선출직 공직자부터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달라. 저 역시도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 후보는 이날 늦게서야 입장문을 냈다. 그는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며 "제가 진심으로 또 사과 드리고 용서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저희 당 다른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제게 해달라.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 부족함이 많지만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한다"면서도 2차 가해 조치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A 씨의 호소를 계기로 야당의 '성범죄선거 심판론' 공세는 거세졌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페이스북에 "박 후보는 피해자에게 사과했다고 항변하겠지만, 민주당과 후보 캠프에는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피해고소인'이라고 불렀던 인사들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 캠프 구성원들의 '자진 사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 여성의원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남인순, 고민정, 진선미 의원에게 선대본부 주요 직책을 맡긴 것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라고 날을 세웠다.

야당은 A 씨의 호소에 따라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남인순, 고민정, 진선미 의원을 내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1일 '박원순 전 시장 2차가해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과 당 소속 여성의원들. 왼쪽부터 양금희, 허은아, 전주혜, 김정재, 윤주경 의원. /남윤호 기자
야당은 A 씨의 호소에 따라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남인순, 고민정, 진선미 의원을 내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1일 '박원순 전 시장 2차가해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과 당 소속 여성의원들. 왼쪽부터 양금희, 허은아, 전주혜, 김정재, 윤주경 의원. /남윤호 기자

권력형 성범죄 처벌 강화법 입법 노력이 미흡한 점도 민주당이 사과의 진정성을 지적받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 1월 이 대표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서는 관련 법을 고쳐서라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입법은 답보 상태다. 오히려 야당 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더 눈에 띈다.

우선 성폭력 범죄 2차 가해 예방 및 처벌법 논의가 여전히 미흡하다. 최근 박 전 시장 측근 인사들이 A 씨가 과거 박 전 시장에 쓴 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해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이종배·서정숙 의원이 지난 7월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2차 가해 처벌 강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검토보고서에서 전문위원은 "2차 가해 행위가 심각함에도 명예훼손 및 모욕죄의 법정형이 비교적 낮아 2차 가해 방지 및 적정한 대응에 미흡하므로 입법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행법상 명예훼손 및 모욕죄가 성폭력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헌행법체계에 수용 가능한지 여부 중심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여야간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 11월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이른바 '박원순‧오거돈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성폭력으로 인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는 경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소속 정당이 다시 후보자를 추천하면 그 정당 후보자에 대해선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하지 않고, 중앙선관위도 정당 국가보조금에서 선거비용 금액을 감액해 지급토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역시 논의되고 있지 않다. 야당은 이외에도 선출직 공무원의 권력형 성범죄 조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의 '선출직 공무원 등 성범죄조사위원회 설치법'을 발의하거나, 공무상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보호하는 이른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피해자 지원법(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 등도 내놓았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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