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관계 이견 없어" vs "임기 말 당연한 수순"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역대 가장 좋은 성과를 낸 당·정·청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의 새해 첫 간담회에서 '원팀' 기조를 강조하며 한 발언이다. 그러나 한 주 만에 검찰 개혁 작업, 4차 재난지원금 등을 두고 당·청 이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청 갈등은 없다"며 부인하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국정 운영을 둘러싼 당·청 간 주도권 다툼이 벌써 시작된 분위기다. 특히 이낙연 대표는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이재명 경기지사와 가까운 민주당 내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는 강력한 검찰개혁을 추진해 청와대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오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개혁 시즌2'에 대한 당·청 간 이견은 지난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업무보고 과정에서 불거졌다.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자리에서 "박범계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대통령께서 속도조절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앞서 박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해 대통령이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 역량 강화 등을 당부했다는 취지로 발언해 문 대통령이 1차 검찰개혁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 시행을 우선하고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는 신중히 하라는 '속도조절'을 당부한 것으로 해석됐다. 논란이 커지자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당과 정부, 청와대가 검찰개혁 방향을 공유하고 있고 이견은 없다"며 관련법을 2월 말 또는 3월 초 발의, 6월 국회 처리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유 비서실장이 '속도조절론'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이다. 유 실장은 정확한 워딩이 '속도조절'은 아니었다면서도 "그런 의미의 표현을 하셨다"고 쐐기를 박았다.
여전히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중이 안갯속인 가운데, 민주당은 25일에도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고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설치 법안을 신속히 만들겠다고 거듭 밝혔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별위원회는 이날 '속도조절' 논란에 대해선 "그런 말은 나온 적도 없고 있지도 않은 말"이라며 선을 긋고 중수청 설치안을 필요하면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종민 최고위원도 이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통령은) 다른 제도개혁이 지금 있는 시행되는 제도에 영향을 미쳐서 혼선을 일으키지 않게 하자는 취지가 강하고, 지금 국회에서 추진하는 여러 가지 개혁을 어떤 속도로 어떻게 진행해야 된다는 걸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중수청 설치법 제정안을 발의한 황운하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기든 내용이든 당과 청, 당내 미세한 부분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조정이 가능한 이견들"이라며 "속도조절을 둘러싸고 갈등이나 파열음이 있는 것처럼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무리한 해석"이라고 했다.
당·청 간 미묘한 파열음은 4차 재난지원금을 두고도 드러났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고위당정청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향해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며 정면 비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이 지난 19일 당 지도부와 만나 한 발언도 재조명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처음부터 당과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사각지대가 최소화되는 피해지원책이 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면서도 "또 당에서도 한편으로는 이 재정의 여건을 감안해달라"고 당부했다. 추경안 편성에 대한 당의 강한 압박을 인지하고 문 대통령이 나서서 당정 간 이견을 중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에도 "정부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과감하게 충분한 위기극복 방안을 강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홍 부총리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4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12조 원으로 제시한 정부를 계속 압박해 20조 원 안팎으로 확정했다. 이 역시 당이 국정운영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민주당은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文 대통령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을 보여준 것이란 일각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날 김경수 경기지사는 지난 24일 자신의 라디오 인터뷰 발언이 임기 말 레임덕의 반증이라는 야당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대통령이 한 말씀 하면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다 정리되어야 한다는 건 과거 권위적인 정치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대통령께서는 늘 국회 여당과 충분히 협의해 오셨고, 이번 논란도 그렇게 해나가실 것이라고 본다. 이를 두고 레임덕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얘기가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했다.
당이 추진하는 중수청 설치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이상민 의원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저는 대통령 뜻하고 맞다고 생각한다. 당 일각에서 하려는 움직임은 논의하되, 긴 호흡을 갖고 치열하게 논의할 부분이다. 수사기관이 이것저것 생기는 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레임덕과는 관련 없다. 의원들이 각자 생각해 공론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도 "수사권 완전 폐지 문제 때문에 레임덕이 온 게 아니라 집권이 1년 남아 시기적으로 레임덕이 올 시기가 됐다"며 "검찰개혁 속도조절 논의는 당·청 간 갈등보다는 견해차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성공했다. 민심에 역행하지 않는다면 개혁 차원에서 밀어붙일 것이고 민심이 동조하지 않으면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논란은) 여론의 향배를 판단하는 일종의 시험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과거 정권에 비하면 현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여당의 움직임을 '갈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당·청 관계는 이전 정권에서도 자주 파열음을 냈다. 2002년 여야가 당·청 분리 제도를 도입해 대통령이 당 총재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통령의 임기 말 당·청 간 주도권 다툼은 두드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여소야대 국회가 되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시도해 당시 여당 의원들이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 백지화를 골자로 하는 세종시특별법 수정안을 발표했을 때도 당시 여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반발했고 본회의에서 부결시키기까지 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정부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당·청 갈등은 봉합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속도조절 논란이 단순한 레임덕 현상을 넘어 당내 힘의 무게추가 유력 대권주자인 이 지사로 향하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수사권 완전폐지 관련 입법을 주도하는 이들은 초·재선 17~18명이 모인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인데 공교롭게도 이들 상당수가 이 지사와 친분이 두텁거나 접촉면이 있기 때문이다. 처럼회의 이규민·민형배 의원은 이 지사를 공개 지지하고 있고, 김용민·김남국·김승원·이탄희·문정복·민병덕·홍정민·한준호 의원 등은 모두 경기도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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