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선별·보편' 논쟁에 국민 피로감 쌓여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2021년 2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400명대 안팎을 유지하며 3차 대유행이 조금씩 진정될 무렵이다. 여당이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곧바로 난색을 보였다. 여당 내부에선 소극적 관료주의를 지적하며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당정이 비공개로 만났고, 그 결과 어쨌든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 1차, 2차, 3차 때와 판박이다. 당시에도 당정이 지급 규모와 시기 등을 두고 기싸움을 했다. 당정은 1차 재난지원금 때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편 지급'을 결정했다. 2~3차는 선별 지급 방식에 뜻을 모아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4차 재난지원금을 주더라도 선별 지급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래서 여의도 외곽에서 나오는 유력 대권주자의 강력한 '보편지급' 목소리에도 제동을 걸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전 도민 대상 '제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자 이 대표는 지난달 19일 방송에 출연해 "지금 거리두기 중인데, 소비하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할 수가 있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 김종민 최고위원도 "방역당국과 조율되지 않은 성급한 정책은 자칫 국가방역망에 혼선을 줄 수 있다"며 이 지사를 저격했다. 전 도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 소비하려는 이들이 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정부 방역 방침에도 방해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경기도에 직접 당 공식 입장을 전하기도 했지만, 이 지사는 지난달 28일 당초 계획한 대로 '설 명절 전 지급'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이 3차 대유행의 저점에 해당한다는 것이 경기도의 판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4차 재난지원금을 준비하겠다"면서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함께 협의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다. 이 대표는 전 국민 지원에 대해 "경기 진작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대표의 '맞춤형+전 국민' 지원 방식의 목적이 이 지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코로나 추이를 살피며 지급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전제도 무색할 만큼 여당은 '보편 지급'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이 대표가 이 지사를 향해 '왼쪽 깜빡이'라며 비판했던 지난달 19일 0시 기준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 수는 351명이었다. 이 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 전날인 1일 0시 기준 확진자 수는 285명이다. 이달 초 200명대를 유지하다 9일 다시 400명대로 진입한 상황이다. 확진자 추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재난지원금 지원 방식에 대한 여당 기준이 오락가락한 점이 가장 큰 문제다.
4차 재난지원금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취약계층 등 더 어려움을 호소하는 쪽에 더 많이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달 말부터 백신접종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가팔라 국채 발행을 통한 대규모 지원금 지급은 국가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져 중장기적으로 재정위기가 발생하고 소득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 집중 피해 계층에 지원금을 선별 지급하는 방식이 보편지급보다 효과가 크다는 민간연구기관 분석도 나온다.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하는 게 소득 보전과 경기 부양 효과가 더 크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아울러 선별 지급 방식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대상 선별에 따른 시간과 행정적 소모도 지난 재난지원금 지급을 거치며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편성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데 뜻을 모았다. 갈등은 봉합되는 듯 보이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이 대표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규모, 시기는 설 연휴가 지난 뒤 빠른 속도로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홍 부총리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피해계층의 고통에 대해 정부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여전히 선별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재난지원금 논쟁은 설 연휴가 지나면 다시 치열해질 것이다. 왁자지껄해야 할 명절 대목에도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한숨 쉬고 있는데 당정 갈등이 재연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이들에게 한마디만 던지고 싶다. "재난지원금 지급, 한두 번 하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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