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SIS "양정철 합류, 류진 회장 의견 중요했다"...지난달 21일 만남 갖기도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양정철(57) 전 민주연구원장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 선임연구원으로 합류하는 과정에서 국내 방산기업 풍산그룹 류진(63) 회장이 적극적 역할을 하며 도운 것으로 확인됐다.
<더팩트>가 16일 양정철 전 원장의 미국 연수와 관련해 CSIS측과 가진 이메일 인터뷰 내용과 지난해 말 풍산홀딩스 소유 건물에서 양 전 원장과 류진 회장의 회동 사실 취재 등을 종합한 결과 류진 회장의 큰 역할을 확인했다. 미국 CSIS의 앤드류 슈와츠 언론 담당자는 지난 13일 <더팩트> 취재진의 양정철 전 원장 합류 배경을 묻는 이메일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양정철은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한다. 보수는 받지 않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전에 양정철이 햄리 소장에게 먼저 연락했으며 햄리 소장은 양정철 합류에 대해 CSIS 이사인 류진 회장과 논의했다"며 류진 회장의 역할을 시인했다.
CSIS 측은 양 전 원장과 관계에 대해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류 회장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인연을 맺어왔다는 점도 밝혔다. CSIS 측은 "2년(2019년 7월 16일) 전 처음 민주연구원이 CSIS와 제휴를 맺을 때 류 회장이 연결해줬다"라며 "이번에도 양정철 측이 연락 왔을 때 류진 회장 의견을 듣는 게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양정철 미국 CSIS 연수 '추천'
실제로 류진 회장은 양정철 전 원장의 미국행을 앞두고 직접 만남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 류 회장의 역할에 대한 CSIS 측 답변을 뒷받침했다. <더팩트>가 독자 제보를 통해 확인한 양 전 원장과 류진 회장의 회동은 지난달 21일 풍산홀딩스가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특별 장소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CSIS 이사에 선임된 류 회장은 이날 양 전 원장과 약 3~4시간 동안 만나면서 제반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평소 풍산그룹이 특별한 행사와 손님을 접대할 경우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풍산그룹 측 관계자는 두 사람의 직접 만남 이유를 묻는 <더팩트> 질의에 대해 "만남을 알지 못 한다"며 "류 회장이 CSIS 이사로 합류한 사실은 알지만, 양 전 원장의 내용은 알지 못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류 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으로 2월 말이나 귀국할 예정"이라고 양 전 원장과의 만남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양 전 원장에게도 류 회장 만남 배경과 미국 출국 일정 등을 묻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양 전 원장의 CSIS 선임연구원 합류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건 지난 6일이다. 정치권에선 양 전 원장의 CSIS 합류를 예상 밖이라는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그 배경에 이목이 쏠렸다. 당시만 해도 지난 2019년 7월 16일 미국을 방문한 양 전 원장이 존 햄리 CSIS 소장 겸 최고경영자와의 만나면서 맺은 인연이 배경으로 꼽혔다.
◆'설왕설래' 양정철, 지난달 풍산홀딩스 건물서 류진 회장과 회동
그러나 <더팩트> 취재 결과 양 전 원장의 CSIS 합류 이면에는 그동안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류 회장이 자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양 전 원장과 류진 회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21일 미국 CSIS 접촉에 앞서 풍산홀딩스 소유의 특별한 건물에서 회동을 가졌다. <더팩트>가 확인한 해당 건물은 마치 고궁을 방불케할 정도의 대형 건축물로 입구에는 '풍산역사관', '북아헌'(北阿軒, 북쪽 언덕 집) 현판이 걸려 있다. 등기부를 보면 지하 2층에 지상 3층 규모 주택 외 2필지를 풍산이 20년째 보유 중이다.
양 전 원장과 류진 회장의 인연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비단 이번 CSIS 연수뿐만 아니라 지난 201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에서도 특별한 인연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깜짝 참석'할 당시 막후에서 양 전 원장과 류진 회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전 대통령 초청은 양 전 원장이 미국 정계에 발이 넓은 류 회장에게 부탁해 성사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양 전 원장과 류 회장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모식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또 류 회장은 부시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난 자리에 미국 측 관계자로 유일하게 배석했다. 당시 자리엔 문 대통령, 부시 전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그리고 류 회장이 전부였다.
문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평소에 류진 회장님을 통해서 대통령님의 근황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류진 풍산 회장, 문 대통령과도 인연…양 전 원장 미국행 놓고 정가에선 '설왕설래'
류진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양 전 원장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문 대통령은 1989~1990년 노동자 해고로 풍산이 파문을 일으켰을 당시 풍산의 고문 변호사를 맡은 인연이 있다. 2018년 12월 아버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도 류 회장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과 함께 한국측 사절단에 포함됐다.
풍산그룹과 류 회장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30일 미국 CSIS 초청 만찬 연설에도 함께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도 참석했다.
문재인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보인 류진 회장의 후원을 받은 양 전 원장의 미국행은 현재 정가에서도 다양한 이슈를 낳고 있다. 당초 양 전 원장은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후임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여러 차례 고사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반기 핵심 인사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권력 싸움에서 밀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3일엔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양 전 원장의 미국행 배경과 함께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대로 친문 핵심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 전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양 전 원장을 감싸면서 미국행 배경이 더욱 정가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 양 전 원장 미국행 앞두고 분주한 '물 밑 활동'
양 전 원장은 미국행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한정식 집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최재성 정무수석과 함께 3시간여 동안 저녁 회동을 가진 사실([단독] '미국행' 양정철, 김태년·최재성과 '통음' 저녁 회동(영상)-더팩트 7일 보도)이 알려지면서 회동 내용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또 17일에는 이낙연 대표가 지난 1일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카드를 처음 제시하기 전, 양 전 원장이 이 대표를 직접 만나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1월 중순께 두 사람이 만나 이 같은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새해 벽두 이슈를 점령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은 당내외 비판에 직면하면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돼 왔다.
지난해 말 비서실장 물망에 이어 미국 CSIS 연수,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 건의 등으로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양 전 원장은 미국 CSIS 합류 시점을 1월로 예정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출국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 전 원장의 미국행을 도운 풍산그룹은 재계서열 70위권의 중견 그룹으로 ㈜풍산홀딩스를 주축으로 하는 금속/방산특화 기업이다. 1968년 10월, 일본에서 무역업을 하던 류찬우 창업주가 '풍산금속공업'을 세운 게 시작이다.
풍산그룹은 주로 비철금속의 가공, 생산하는 신동사업부문과, 탄약류를 생산하는 방산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신동사업부문은 동·동합금 판재나 주석도금재, 동관 등을 생산한다. 또, 동전 제작을 위한 '소전' 제작을 하고 있다. 유로화 동전에 사용되는 노르딕 골드제 소전을 최초 생산한 곳이며, 미국의 동전 제작에 사용되는 소전도 현지 법인을 통해 납품한다. 세계 70여 개국에 소전을 수출하고 있으며 연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대략 세계 시장의 50~6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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