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국민 인식 따라가야…성범죄 처벌 강화 입법 지속 추진하겠다"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에 대해 야당이 올해 정기국회에서도 진정성을 안 보여준다면 우리 나름대로 개혁 의지를 실현해야 한다."
검사 출신이자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았던 송기헌 의원(재선·강원 원주을)이 21대 국회 전반기에도 법사위에 자리 잡았다. 송 의원은 지난해 말 야당과 수십 차례 협상에 임하며 공수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안 처리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 양형기준 상향, 검경 수사권 조정 후속 법안 등을 처리하지 못한 입법 과제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팩트>와 만난 송 의원은 국회에 재입성한 소감을 묻자 "초선 때는 잘 몰라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런데 재선이 되고 나니 지역구와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보인다"며 책임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 "검찰개혁, 이번 정기국회 안에 끝내야"
송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과제의 뼈대가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미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검찰이나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큰 골조는 거의 다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송 의원은 "검찰개혁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사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는 두 가지 과정인데, 전자는 수사 준칙만 확정되면 어느 정도 틀이 완성된다. 수사경찰을 어떻게 할지 경찰 개혁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것만 정리되면 된다. 후자는 공수처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우리 당은 이번 정기국회 안에 완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법적으로 지난 7월 15일 출범 예정이었던 공수처가 아직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 구성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집은 지었지만 입주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하며 "(여야) 양쪽이 원칙 있는 대화를 통해 같이 가는 게 우선"이라고 야당의 협조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기를 마냥 기다릴 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공수처를 지지하는 국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21대 총선에서 176석을 얻은 것이고, 이에 따르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야당이 논의를 지연시키려 한다면 거기에 끌려갈 순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특별감찰관 추천이 완료돼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추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이미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하지 않을 경우 추천 권한을 무효화하는 법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의장이 10일 이내 기한을 정해 각 교섭단체 위원에게 추천을 통고하고, 해당 기간 내 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해당 교섭단체 추천으로 갈음토록 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현행 '여야 각 2명'인 추천위원 몫을 '국회 몫 4명'으로 바꾸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도 조만간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 같은 동료 법사위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송 의원은 "우리가 당장 힘으로 밀고 가겠다는 취지는 아니고, 이런 것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안다. 당 전체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 출범 마지노선'에 대해 묻자 "야당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진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정기국회 안에 진위가 확인이 안 된고,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개혁 의지를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여당 법사위 의원들과는 공수처법 개정안 등 개혁 법안 논의를 위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송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국회 법사위 소속 위원들은 "윤 후보자가 헌법에 충실한 검찰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1년 새 상황이 180도로 바뀌어 여권에선 윤 총장 자진사퇴 요구가 빗발친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윤 총장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이 우리와 좀 다른 것 같다"며 "사실 지난해 윤 총장 청문회 때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듣고 '검찰 우선주의자'가 아니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윤 총장 본인이 검찰개혁 의지를 나타냈고, 살아온 경력을 보고 검찰개혁을 실현할 거라고 신뢰했었다"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나중에 보니 기존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피의사실 공표도 그렇고 몇 가지 사건의 기소를 정해놓고 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검찰개혁을 말했지만, 검찰 조직 우선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총장 체제를 "제왕적 검찰총장의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송 의원은 "검사가 몇천 명 이상인데 지금 보면 검찰총장 1명인 것 같다. 일선 검사들이 자기 소신을 발휘하고 여러 지성이 모여 올바르게 (방향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그러나 윤 총장 취임 후에는 (권한이 총장에 집중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카투사 군 복무 시절 휴가 특혜 의혹에 대해 야당이 '황제 복역'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아직까지는 의혹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니 빨리 수사해 가부가 종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 지지층 중심으로 이 같은 의혹이 검찰 개혁을 막으려는 시도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송 의원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 그는 "검찰개혁은 국민의 뜻이기도 하고 당의 뜻이기도 해서 추 장관 한 사람이 사퇴한다고 해서 검찰 개혁 방향이 바뀌진 않는다. 그럼에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야당이 추 장관을 통해 여론을 흔들려는 것 같다. 검찰 개혁을 하려는 우리 당의 뜻을 국민이 오해하게 하거나 불신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여당 법사위 간사를 맡으며 야당과의 협상에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던 그는 이번 의혹과 관련해 여당이 해야 할 일은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예를 들어 카투사가 규정상 한국군 규정을 적용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미군 규정을 적용해왔다면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또, 규정상으로는 (휴가 때) 보고서 등 자료 제출을 하게 돼 있지만, 급한 경우 우선 조치가 이뤄지는 경우도 실질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런 것을 규정만으로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지적했다.
◆"20대 국회에서 뼈저리게 느껴"...21대서 비동의 간음죄·독립몰수제 등 추진
지난 4년간 구설에 오른 적 없던 송 의원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갈 즈음인 올해 3월 논란의 중심에 섰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지난 1월 올라왔는데 법사위원들과 'N번방 사건'에서 나온 '딥페이크(Deepfake: 특정인 신체·얼굴 등을 합성하는 것)' 영상물 처벌 관련 의견을 나누다 "나 혼자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한 발언이 문제였다. 성인지 감수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발언을 다시 꺼내 물었다. 다소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송 의원은 성실히 답했다. 그는 "당시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보다도 굉장히 보수적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게 완전히 개인적 영역에 있는 한 처벌하는 건 어렵지 않느냐는 게 대부분의 법조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논란이 불거지고 난 후 기자나 동료 국회의원, 일반인 등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어봤다. 법이 결국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회가 변하면 법도 변해야 하는데 자꾸 기존 법의 틀에서만 생각했다는 걸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조심스러운 듯 말했다.
깨달음의 깊이만큼 행동도 달라졌다. 성범죄 방지 법안을 추진하는 다수의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그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성범죄 양형기준 상향화다. 송 의원은 "(성범죄) 양형 문제는 기존 형법 체계를 깨지 않으면 국민 정서에 맞추기 어렵다. 여태까지는 전체 사법 체계 때문에 양형을 올리지 못했는데 국민 뜻에 안 맞으면 사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 혼인빙자간음죄나 간통죄, 호주제도 모두 사회가 바뀌면서 법도 바뀐 사례"라고 강조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물의 제작과 판매 등의 경우 유죄 판결 이전이라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 도입 법안도 20대 국회에 이어 재차 본회의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그는 지난 6월 백혜련 의원이 대표 발의한 '비동의 간음죄' 법안에도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그동안은 성 문제에서 여성이 수동적인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 시대 인식과 맞지 않는다. 원래 강간죄는 저항할 수 없는 속박에 의해 간음했을 경우라고 법을 배웠다. 최근에는 대법원 판례에서 무형의 불가항력적인 것도 강간이라며 정의를 좁혀오긴 했지만 이 역시 명시적 폭력이 있어야 한다"며 비동의 간음죄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다만 (입법화하기에)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20대 국회에서 법원행정처와 법무부에 이 부분에 관해 법률적으로 가능한 기술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해놓았다. 제가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간사와 제1소위원장을 맡았기에 그런 논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논의를 이어가려고 법사위가 참 재미없는 곳이지만 또 상임위로 신청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 때는 법사위에서 관련 법안을 논의하기에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여당으로서 법무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가능하고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도록 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송 의원이 또 관심을 두고 있는 입법 과제는 '서민 안정'이다. 그래서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자영업자들의 세 부담을 줄이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간이과세 기준이 4800만 원인데 이를 2억 원으로 높이는 것이다. 송 의원은 "선거 기간에 다녀보니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당장 부담이 되는 건 임대료, 세 부담, 임금 세 가지였다. 세 부담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외에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경우 상속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이른바 '구하라 법'과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 범죄 관련 피해자 안전확보를 우선시하는 법 등도 21대 국회에서 재추진할 예정이다. 송 의원은 아동학대 처벌 강화법에 대해 "그동안 가정폭력과 아동폭력은 가정 중심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벌어진 장소가 가정일 뿐 모두 범죄다. 이제 가정의 문제로 보지 말고 가해자와 피해자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 "혁신도시 원주, 생명·데이터 산업 띄우겠다"
송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의원 중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상대 후보를 10.7% 포인트 차이로 따돌리며 여유롭게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4년간 강원혁신지식산업센터, 강원보훈요양원, 해바라기센터, 강원인권사무소, 청년창업사관학교 등의 여러 기관을 유치하고 혁신도시, 원주-여주 전철, 각종 의료기기 관련 산업 예산 등을 부지런히 확보했기에 가능했다.
지역구에 대해 묻자 고향 원주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원주 출신 한재민 군이 2020 에네스쿠 첼로 컴피티션의 세미파이널 7명에 선발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송 의원은 20대 국회 때부터 서울과 원주를 출퇴근하고 있다. 자택에서 오전 5시에는 출발해야 차가 막히지 않는다고 한다. '피곤하지 않으시냐'고 묻자 "나이 들어 잠이 없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지난 20대 국회 본회의(2016년 6월9일~2020년 5월8일)에 100%로 참석한 총 40명의 의원 중 한 명이다.
원주도 코로나19 확산세를 피하지 못했다. 지역구의 코로나19 상황을 묻자 그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송 의원은 "지난 8월 말부터 갑자기 확진자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시민들이 감내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경증 확진자가 많아져 병실이 부족해질 경우를 대비해 생활시설을 마련하려고 이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이해해줬다"고 지역구민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원주 민심에 대해선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계층에선 문재인 정부에 굉장히 아쉬움이 많은 상황"이라며 "반면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전했다. 지역구 발전을 위한 우선 과제로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활성화'를 꼽았다. 원주에 새로운 산업으로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이 창업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사람들이 모여 교육과 문화가 발전하도록 선순환 체제를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그가 꼽은 원주의 미래 먹거리는 의료와 건강, 그리고 데이터 산업이다.
송 의원은 "하나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또 하나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이라며 "이번 정기국회 안에 혁신도시, 기업도시 관련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창업 육성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을 만들고, 해당 공공기관과 거래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도록 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추진 계획을 밝혔다. 지역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혁신도시 연구 단지에서 군 복무 대신 일하도록 하는 병역 특례 법안 등도 검토 중이다.
그는 지역구 관리에도 여념이 없다. 주말이면 종종 집 근처에 있는 치악산에 올라 2시간 가량 등산을 즐기는데 이때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 실생활형 민원도 듣는다. 20대 국회 때보다 체중을 줄인 송 의원은 "더 날아다녀야겠다"라며 21대 국회 맹활약을 예고했다.
☞ 송기헌 의원은 누구?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7년간 검사 생활을 하다 퇴직해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어 2005년 열린우리당 당협위원장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낙마한 뒤 20대 총선에서 또 원주시 을에 출마해 이강후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의 리턴 매치에서 당선됐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과 전반기 법사위 민주당 간사, 당 법률위원장 등을 맡았다. 21대 총선에서 53.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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