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부자' 양향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기승전-기술"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이 문재인 정부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 패러다임을 대전환하는 시기에 역량을 갖춘 정치인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1대 국회에서 몇 안 되는 이공계 출신인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서을)은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상무 출신으로, 기술자의 지식과 기업 감각을 체화한 여당 내 대표적인 '실물경제 전문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구보조원으로 시작해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30년간 첨단 산업 현장 최일선에서 일해온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더팩트>는 지난 13일 그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아 코로나19 이후 시대 진단과 앞으로 할 일을 물었다.
21대에서 6선의 천정배 의원을 누르고 재수에 성공한 양 의원은 요즘 24시간이 모자라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떻게 지내시냐'고 묻자 양 의원은 "얼마 못 가서 과로사할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같이 6시쯤 국회에 도착해 의원회관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한 뒤 포럼과 세미나에 참석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업무 전에 하는 일들이다. 양 의원은 "지난 30년간 삼성에서 근무할 때의 패턴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국회 의정활동을 위해 4일은 국회에 있고, 3일은 지역구인 광주로 내려가 현안을 챙긴다. 양 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3광 4국'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부지런한 움직임에 지역구 민심도 후하다고 한다. 양 의원은 "지역 어르신들은 강아지 잃어버리고, 집에 수도꼭지가 고장 나도 양향자에게 얘기하자고 하실 정도다. 그만큼 제가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시나 보다"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부터 3월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에 지역구 한 공원을 돌며 주민들을 만났었다. 당선된 이후에도 선거 전처럼 금요일에 지역구에 내려가 토요일 새벽부터 민원을 듣는다고 한다.
양 의원은 "4년 전 반문재인 정서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고, 이 정권의 승리를 지역민들이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또 호남에서 이렇게 밀어줬으니 더 이상 호남 낙후를 대물림 하지 않게 해달라고, 호남 대통령을 만들어달라고 말들을 하신다"며 호남 민심을 전했다.
양 의원의 '악바리 근성'은 삼성 재직 시절부터 유명했다. 교수를 꿈꿨던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광주여상을 졸업하자마자 삼성반도체 메모리 설계실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했고, 특유의 성실성으로 SRAM 설계팀 책임연구원이 됐다. 사내 대학(삼성전자 기술대학 반도체공학과)에 우여곡절 끝에 꼴찌로 입학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이후 한국디지털대를 거쳐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까지 "죽겠다" 싶을 만큼 공부해 반도체 설계 기술자의 길을 걸어왔다.
첨단산업계에 몸담았던 양 의원은 한국판 뉴딜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친기업 정책으로 가야 한다. 기업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기존 일자리가 다 없어지는 게 4차 산업혁명인데, 새롭게 변화하려면 산업 패러다임에 맞춘 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여야 한다.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이 평생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의 주체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양 의원은 최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내린 불기소 권고 결정을 두고 그를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당 안팎으로부터 호되게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양 의원은 '친기업'이라는 단어 선택에 잠시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하지만 기술인으로서 그런 말은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그러면서 '일자리'와 '인재양성'이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은 기업을 살리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맞는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한국판 뉴딜 정책을 통해 도와야 한다. 글로벌 산업지형을 파악한 다음 대한민국이 강점이 있는 기술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또 인재들이 양성돼야 하고 교육 패러다임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어쩌면 한국판 뉴딜에 비대면 교육 과정도 넣을 필요가 있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입법 계획에 대해선 "예를 들어 지역구인 광주의 경우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는데 법인세를 조정해준다든지, 규제를 완화해 기업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민주당이 제시하는 청사진과 친기업 정책 방향이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정책들을 실행할 필요도 있다"고 답했다.
양 의원은 또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기승전-과학기술 시대'라며 기술 예찬론을 힘주어 말했다. 그는 "기술에 기반을 둔 일자리·복지·교육·정당활동 등 앞으로는 기술을 모르고선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했다.
양 의원은 우선 일자리에 대해 "단순 반복적인 노동은 다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노동의 전문성을 확보해줘야 한다. 잡 시큐리티(직업 전문성)만 있다면 고용이 겁나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 반복적인 일만 하는데, 고용을 보장하라고 하면 사용자 측면에서도 수익구조 모델이 안 나오니 힘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노동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민주당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대신 재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본다. 양 의원은 "재교육할 동안 고용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는 기술이 복지다. 한 국가의 복지는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의료 취약 계층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는 바이오 산업을 예로 들었다.
양 의원은 '과학기술복지국가'로 나아가고 기술패권을 갖추기 위해선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워낙 IT(정보통신기술)기술 정책과 인재육성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여건은 돼 있다고 본다"면서도 "교육은 완전히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 입시를 미래 산업 패러다임에 맞춰 적어도 10년을 내다보고 개혁해야 한다. 수월성 교육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저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 명의 기술자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기술 사회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라며 "다만 불평등 사회가 될 수 있으니 포용국가를 만들어 희망의 사다리를 놔줘야 한다. 어느 한 부분만 보고 결정할 건 아니다"라고 했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치권에서도 기술 이해도를 갖춘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의원은 "예를 들어 인공지능 융합 클러스터 관련 법안을 만들거나 미래자동차 전진기지로 가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때 이와 관련된 기술을 알아야 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서 정책적 뒷받침의 질적 수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연장선상에서 양 의원은 과학기술부총리 부활을 검토해야 한다고 정치권에 화두를 던진 상태다. 과학기술부총리는 과학기술부장관이 제3부총리를 겸임하는 제도로,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신설했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합치면서 폐지됐다. 양 의원은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을 과학기술산업경제 세 분야에서 다뤄야 하는데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과학부총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특허료를 받는 국회의원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40여 건이 넘는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특허를 제일 많이 가진 국회의원이 아마 저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3D 낸드플래시 설계에 따른 검증 방법 특허에 대해 특허료도 받았다"고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이런 그로선 지난 일본 수출규제 1년을 선방했다고 미래를 긍정 전망할 수만은 없다. 플루오린 플루오미드 등 소비·부품·장비(소부장)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다른 영역과 다른 국가에서의 규제 시그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허 분쟁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의원은 "반도체 산업에서 경영과 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 일본 수출규제로 다행히 심장 바로 옆에 칼이 찔린 상태라고 말한다. 이는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죽을 것 같은 위기, 여전히 불확실성과 위기가 내재해 있다는 의미"라며 기존 소부장 산업을 보호하고 새로 만든 특허로 미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기술 특허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소부장 기술을 국산화한다고 해도 후발주자로서 이미 나온 기술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허 분쟁 소지가 많아질 수 있다"며 예산과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 JOLED는 중국과 손잡고 우리 OLED 원천기술(OLED 패널의 회로구조 및 구동기술)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도 들었다.
특히 중소기업은 특허권 비용이 부담돼 지식재산권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양 의원은 이번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 특허 관련 예산이 너무 적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 의원은 포스트 코로시 시대 준비도 지식재산권 보호 등 기술패권을 가지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기술 패권을 외치지 못하고 잃어버리면 제2의 식민지가 올 수도 있다"며 "그래서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고, 재정과 정책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양 의원은 실물경제 전문가로서 21대 국회에서 쓰임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최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책임 연구원 몇 분이 오셔서 친환경 자동차 광반도체 등 사업을 설명하신 뒤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고 호소하셨다. 그분들 말씀이 '이렇게 속 시원하게 대화 가능하고 기술을 이해하면서 말을 들어준 의원은 제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시더라. 이런 데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양 의원은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과학기술 이슈를 던지고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인들과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소부장 분야 경영계의 고충과 기술개발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정치인이 저"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과학기술 영역 인재양성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여성 과학인들이 경력단절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얘기한다. 이런 문제도 해결해줘야 한다"며 "삼성에 있을 때도 젊은 층에 멘토 역할을 했었는데 이제는 국가적 영역으로 커진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 국면에서 여당 지도부에 과학기술산업경제분야 출신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 의원은 8.29 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에 대해 "4년 전에는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위해 호남의 지지를 받는 게 절박했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됐다. 만약 제가 필요하다면 출마하겠다고 밝히겠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저보다 잘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저는 어떤 직을 정해놓고 도전한 적은 없다.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업을 본다"고 덧붙였다.
양 의원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도 "대한민국을 그랜드 플랜으로 디자인해야 할 것 같다"며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반도체 설계자에서 '국가 미래 디자이너'로 성장 중인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 양항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구?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개발 부서에 '연구원 보조'로 입사했다. 2013년 삼성전자에서 처음으로 호남 출신 고졸 여성 임원이 된 그는 2016년 '문재인 키즈'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20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민주당 여성 최고위원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민주당 당내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투입되며 정치적 보폭을 넓혔다. 마침내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당 코로나19극복위원회 비상경제대책본부 기업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는 등 '실물경제통'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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