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는 177석 거대 여당의 출현만큼 주목할 점이 있다. 시대전환·기본소득당 등 '원내 1인 정당'의 출현과 소수정당의 변화다. 이전과 달리 이들은 거대 당과의 연대가 아닌 '마이웨이'를 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정책 노선과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국회에서 이들은 1석 그 이상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팩트>가 소수정당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 생존 전략을 살펴봤다. 또한 시대전환·기본소득당·국민의당 의원과 만나 이들이 꿈꾸는 정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소수정당 생존법 '선명성·열린 정당·미래 실험' 성공할까
[더팩트ㅣ국회=박숙현·문혜현 기자]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소수정당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이 정치 세력화하면서 평화통일연구회(평민연), 신민주연합(신민연), 새 정치와 개혁을 위한 민주연합(민연) 등은 보수야당 내로 편입했고, 일부는 독자 정당을 창당하는 흐름이 있었다. 민주화 재야인사 등이 중심이 된 한겨레민주당이 1998년 3월 독자 창당해 1개월 만의 총선에서 1명의 당선자를 배출했지만, 당선자가 곧바로 평민당에 입당하며 와해됐다. 이후 등장한 소수정당도 인물 중심, 지역 중심, 파벌주의의 정치문화로 확장성을 얻지 못하고 탄생과 소멸을 반복했다. 13대 국회부터 계속 존재는 했지만, 다수결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국회에서 영향력은 미미했다.
◆'계파 갈등'으로 탄생·소멸 반복
14대 국회에선 1992년 2월 박찬종 전 의원이 창당한 신정치개혁당(민주당계·보수정당, 신정당)이 1석을 얻었다. 신정당은 노상 토론회, 거리 유세 등으로 2030세대 젊은층의 호감을 얻었다. 하지만 특정 인물에 의존하는 정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통일국민당과 합당해 사라졌다. 17대 국회에서 국민통합21 역시 정몽준 전 의원에만 의존하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와의 단일화 이후 당세가 급격히 약화했다. 창조한국당도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중심으로 창당했다가 문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자 자동 해산 절차를 밟았다.
특정 지역 중심 정당도 시대에 뒤처지면서 기반을 잃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15대 국회를 앞두고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은 김종필 전 총재 중심의 충청도 기반 지역 정당이었다. 15대 국회에서 50석까지 얻었지만,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충청권 4석에 그쳐, 김 전 총재 정계 은퇴의 계기가 됐고 몰락했다. 18대 총선에서 충청권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은 지역구 14석, 비례대표 4석(비례 득표율 6.8%)으로 총 18석을 얻었다. 3석의 창조한국당과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원내교섭단체까지 만들었지만,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의 탈당, 문 의원 의원직 상실로 교섭단체 지위를 잃고 2010년 지방선거 참패,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석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새누리당과 합당하며 자동 소멸됐다.
파벌주의로 떨어져 나온 신생 정당들의 끝도 좋지 않았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체제 공천에 반발해 중진들이 만든 민주국민당은 2002년 뿔뿔이 흩어졌다. 공통된 이념이나 정책이 아닌 눈앞의 금배지를 노렸기에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희망의한국신당도 마찬가지로 16대 총선을 앞두고 자유민주연합 내부 계파 갈등으로 급하게 창당됐다가 2001년 1월 한나라당과 합당하며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를 기반으로 창당한 새정치민주당 역시 2002년 16대 대선에서 집권 여당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탈당, 2004년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9석으로 줄어들었다.
명확한 정책 노선을 가진 소수정당도 있었다. 17대 국회에서 한국 진보정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것이다. 지역구 2석과 비레 8석을 확보해 원내 3당 자리까지 차지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은 사라졌지만 현재 정의당, 민중당이 뒤를 잇고 있다.
◆'정책' 중심·온라인 기반 소수 정당의 탄생
21대 국회에선 거대양당 외에 원내교섭단체 구성(20석)이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한 소수정당이 없다. 국회 운영 과정에서 협상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들 소수당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20년 3월 창당한 시대전환은 이원재 LAB2050 대표와 조정훈 전 아주대학교 통일연구소장이 창당한 실용주의 정당이다. 3040세대 주축으로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생활진보 플랫폼'을 지향한다. 기존 인물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의제 중심 정치로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면서도 혁신적 규제개혁, 계급제 공무원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등 기존과 다른 정치 문법으로 정책을 구상한다. 기본소득당은 올 1월 창당한 당으로, 기본소득이라는 한 가지 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결성됐다. 2만여 명의 당원 중 10대와 20대가 80%를 차지한다.
두 정당 모두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주창하면서, 온라인 기반을 두고 있다. 거대정당이 경직된 조직으로 다수 시민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반면, 이들 신생 소수정당들은 국민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해외에선 이와 유사하게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대안당)'이 소수정당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정부 정책에 불만 있는 유권자들을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그러나 의회에 진출한 이후 강력한 리더십 부재, 주요 의제 지속적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소수정당의 한계를 미리 맛본 기존 정당들은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총선 이후 4월 26일 당 혁신준비위를 출범시켜 당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논의한 바 있다. 안철수 대표는 "혁신 경쟁을 통해 야권 전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혁신적으로 변화한 야권이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마음을 선도해 나갈 때만이 국민은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대 국회에서 정책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전략이다. 매주 정책세미나를 열어 '윤리특위 상설화', '기본소득제 도입', '청년 관련 법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6석을 확보한 정의당도 혁신위 체제에 돌입했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과 입법간담회를 열고 전국민고용보험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전태일법(근로기준법·노조법) 입법화에 집중하고 있다.
◆소수정당은 민주주의 위해 필수..."여론 주목도 끌어 올려야"
윤정인 헌법이론실무학회 박사는 '더 많은 소수정당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담보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에 있어 국민의 의사는 정당을 통해 정치 과정으로 전달되므로, 다양한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배제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간의 상호경쟁이 보장돼야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정당의 존재는 필수라는 것이다. 소수정당은 정책을 결정하고 입법하는 과정에서 거대양당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제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고, 소외된 국민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
거대양당이 다수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려 할 때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실제 지난 2018년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의 공동교섭단체로 출범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에서 노회찬 원내대표는 수령한 특수활동비를 전액 반납하며 폐지 운동을 벌였다. 이는 국회가 국회의장단·상임위원장, 교섭단체 몫의 특활비를 모두 폐지토록 하는 자극제가 됐다.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기존 소수정당은 인물 중심적이고 정책이 비현실적이며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중적 기반이 취약해 이를 극복하는 것도 과제로 거론된다.
21대 국회에서 여러 소수정당은 한계 극복을 위해 노선의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의당이 원래 가진 정체성에 더 집중하고, 깊고 아래로 내려가는 게 정의당이 넓어지는 길이다. 그것이 소수정당의 전략이면서 정의당이 있어야 할 이유"라고 했다. 예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차별금지법 등 진보적 이슈에 보다 좌클릭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안 발의부터 의정활동에 한계가 있지만 여론을 주도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강 대변인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경우 운동본부를 꾸려 국민청원을 따로 준비하고 있다. 이런 의제는 소수지만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법안 발의는 개별적으로 동의해줄 수 있는 다른 당 의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다만 소수정당은 국회가 언제 개원할지 등 국회 운영 논의 테이블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 안에 들어가 얘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봉주 전 의원이 주도하고 손혜원 전 의원이 합류해 만든 친문 정당 열린민주당도 '주도성'을 21대 국회 전략으로 고려하고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통화에서 "여러 차례 등대 정당, 쇄빙선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장애물이 있는 목적지를 향해 맨 앞에서 가겠다, 앞장서서 중요한 의제를 제안하고 빛을 비추겠다는 의미"라며 "큰 정당이 쉽게 제기할 수 없는 개혁 과제를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어 "다수당에 속해 있는 한두 명보다는, 별개 정당에서 독자적으로 정치력을 가진 정당으로서 문제 제기하고 타당성을 설득하는 게 큰 정당들도 움직이기 쉬울 거다. 그런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계가 명확한 소수정당으로선 국민의 지지 확보가 필수 전략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통화에서 "소수정당이 정책을 주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야당이 입법을 통해 활동할 영역이 많지 않다. 입법 준비를 많이 하더라도 10명 이상이 있어야 발의도 된다. 그 참여부터 끌어내야 하고, 유사 법률이 나올 경우 여당 쪽이 채택될 것이다. 소수정당뿐만 아니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도 마찬가지다"라고 소수당의 활약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이어 그는 소수정당의 '플랫폼 구축', '발 빠른 의제 발굴' 전략 등에 대해선 "결국 국민의 주목을 받게 하는 전략인데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것"이라며 "원내에 기반을 둔 시민운동, 국민운동 전략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다당제보다 정치 다수파에 유리한 정당 관련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은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 3% 봉쇄조항 등 원내 진입 문턱 자체가 높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 총수의 2% 이상 득표하지 못한 정당은 등록이 취소된다는 정당설립 요건이 위헌 결정이 난 것도 최근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정당 등록취소 요건과 정당법 개정 논의' 보고서에서 효력을 상실한 해당 조항에 대한 입법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군소정당 등록 요건을 별도로 두고 있고, 미국과 프랑스는 정당 등록이나 등록 취소에 대한 법률도 없다. 원내에 들어와도 의석 20석 이상 교섭단체 위주로 국회가 운영돼 소수정당은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 의제 공론화에서 빠지는 점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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