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속 각 당 조용히 '중진파워'·'대표파워' 적극 활용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면서 각 당이 표심 잡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단체 율동, 대규모 당원 동원 등 떠들썩했던 유세 모습은 사라졌지만, 필승전략의 집합체인 유세단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 더벤저스 가고 라떼가 왔다
"이게 뭡니까...라떼 유세단?"(이용선 후보) "'꼰대 유세단' 그런 말이에요."(원혜영 의원)
지난 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서울어르신복지관에 원 의원과 백재현 의원이 가슴 한쪽에 '라떼는 유세단' 배지를 달고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선거운동에 앞서 평균연령 68세인 '라떼는! 유세단'을 꾸렸다. 총선에 불출마하는 중진 원혜영·백재현·강창일 의원 3명이 참여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차분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이전까지의 대규모 유세단 대신 이들 소수가 지원 유세에 나선다. 한마디로 3년 전 대선 때 활약했던 '꽃할배 유세단'의 소수정예 버전이다.
'라떼는'은 "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면서 자신들의 과거 경험으로 젊은 층을 지적하는 나이 든 사람, 이른바 '꼰대'를 희화화한 말이다. 민주당 '국민지킴유세단' 본부 관계자는 "'라떼는 유세단' 명칭은 회의하면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다. 이 외에 아직 '국민지킴유세단'의 다른 활동은 개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떼는 유세단' 다선 의원들은 연륜을 무기로 정치 신인들의 지역구를 찾아 유세 지원과 함께 지역 현안 해결 노하우도 전수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지난 2일 고민정(광진을)·김성곤(강남갑) 후보부터 3일 이용선(양천을)·강선우(강서갑)·진성준(강서을)·최기상(금천)·이수진(동작을) 후보를 찾아 유세를 도왔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인천 지역을 훑는다.
효과는 어떨까. 원 의원과 백 의원은 이 후보를 도와 복지관 앞에서 10여분간 80여 명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건강하세요" "서민경제 살리는 이용선 기억해주세요"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들을 본 반응은 엇갈렸다. 70대 한 남성은 "코빼기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왜 이럴 때만 오나"라며 여러 의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불편해했다. 반면 다른 60대 남성은 원 의원을 알아보고 "5선 의원 아니신가. 후보 혼자 오는 것보다야 효과가 많이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라떼는 유세단'의 진가는 길가보다 차량 위에서 발휘됐다. 유세 차량에 오른 원 의원은 이 후보에 대해 "코로나를 빨리 극복하고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역 현안인 서부광역철 착공을 위해 집권여당 이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당부했다. 원 의원은 강서갑으로 이동한 뒤 강 후보에 대해서도 "젊고 유능한 인재"라고 주민에게 소개했다. 이에 대해 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후보 입장에서야 사실 너무 큰 힘이 된다. 강 후보가 정치 신인인데 원 의원님이나 중앙유세단에서 와 주면 저희로선 원군을 얻는 느낌이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도 확실히 무게감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대 '더불어 어벤저스(더벤저스)', '더컷유세단', '꽃할배 유세단' 열풍에 비하면 '라떼는 유세단'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영입인재(김정우·김병기·김병관·박주민·조응천·표창원·양향자)들로 꾸려진 더벤저스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더불어 콘서트'로 지방 당원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민주당은 당초 이번에도 설 연휴 이후 이해찬 대표와 영입인재를 중심으로 전국 순회 행사를 검토 중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비례정당 논란 속에서 백지화됐다.
공천에서 떨어지거나 낮은 비례대표 순번에 배정된 의원들이 모여 만든 '더컷유세단'도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공천에서 탈락하면 무소속 출마가 줄을 잇는 정치 관행을 끝내려 한다"며 당시 정청래·김광진·장하나 의원, 비례대표 면접에서 탈락한 김빈 디자이너가 참여한 바 있다. 유세단 명칭은 당시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더 크라'는 의미로 정해줬다. 이들은 신나는 율동과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친근한 콘셉트로 관심을 끌었다.
최근 선거로 올수록 민주당 유세단은 딱딱함을 버리고 점점 과감해졌다. 2017년 대선 때 활약했던 '꽃할배 유세단'은 원 의원에 따르면 당시 임종석, 김민석 등 젊은 의원들이 기획했다. 유세단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 박재동 화백, 사물놀이의 거장 김덕수 교수 등 대중성 있는 인사들로 꾸려져 화제가 됐었다. 나비넥타이나 캬바레 복장 등 망가지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선 '평화철도111 유세단'이 등장했다. 정 전 의원이 단장을 맡고, 안민석, 유은혜, 전현희, 한정애, 진선미, 손혜원, 조응천, 박경미, 기동민, 표창원, 박주민, 이재정 의원 등이 모여 전국 곳곳을 돌며 유세했다. 정 전 의원과 이 의원이 각각 만화 '은하철도999'의 캐릭터 철이와 메텔로 분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5일까지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온라인 유세에 집중한 뒤 오는 6일부터 코로나 사태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현장 유세를 늘려갈 예정이다.
◆"유세단 명칭 없다" 야당은 각개전투·대표 마케팅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도 개인 SNS나 유튜브 활동을 독려하며 차분한 유세 중이다. 또, 현장 유세 지원보다 개인 후보자의 선거사무소를 찾아 힘을 싣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홍보본부 관계자는 "별도의 유세단 명칭은 따로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핑크 혁명' 선거전이 될 거로 생각한다. 아무래도 지금 코로나 분위기 때문에 예전처럼 대대적인 거리유세나 지원은 힘든 상황이라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차분한 유세를 하고 있다. 중앙당에서 기본 매뉴얼과 홍보전략을 내려보내고 각 지역 특색을 살려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장동혁(유성구 갑) 후보는 '행복기원 핑크 자전거'로 이름 붙인 자전거 유세단과 거리 유세 중이다.
이 관계자는 향후 유세 지원에 대해 "당장은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 대표의 지원이 어렵다. 선거운동 중반 이후부터 황 대표가 지역 유세를 할 예정이다. 지금은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 메시지나 페이스북 메시지로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대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수도권 위주로 돌고 있다. 조만간 지방에도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 중심으로 '뚜벅이 유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른바 '희망과 통합의 천리길 국토대종주'다. 안 대표가 "국토를 종주하면서 만나는 국민 한분 한분의 마음을 읽고 말씀을 듣고, 국민과 함께 그(희망과 통합의 정치) 방법을 찾아내겠다"며 지난 1일부터 매일 달리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우리는 비례대표만 추천해서 지역구 유세차로 하는 전통적 방식은 못 한다. 그래서 유세단을 따로 꾸리진 않았다. 다만 총 234명의 한정된 선거운동원을 전국적으로 팀을 나눠 운영해 길거리에서 피켓이나 선거 운동복을 입고 인사하는 식으로 유세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지난 19대 대선 때는 안 대표 청년 지지 당원으로 구성된 '안심청년 유세단'을 꾸린 바 있다. 20대~30대 청년들 중심으로 서울 지역에서만 활동하며 아재개그, 청년율동, 분장 등을 통해 청년층을 공략했었다.
이 관계자는 달리기 유세와 관련해 "열린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들이 몰려다니는데 저희는 대선주자가 계셔서 안 대표 달리기에 각 지역에 연고 있는 비례 후보들이 그때그때 합류하는 방식으로 유세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당의 이번 총선 유세단 명칭은 '노란 우산 유세단'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코로나 국면에서 별도의 유세단 출범식 등은 없고 대면 접촉과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유세하기로 정했다"고 했다. 정의당은 19대 대선 당시에도 서울 대학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세그웨이(2륜 전동기구) 유세단', 지지자들로 구성된 '심쿵유세단', '노란 우산 유세단' 등으로 홍보한 바 있다. 선거비용과 동원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정의당만의 맞춤형 홍보 방식이었다.
민생당은 지도부가 분산 유세를 하며 낮은 인지도 높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민생당 콘셉트는 '오로지 민생'이다. 명칭도 가까운 시일 내 나올 것"이라며 "유세단은 출범했다. 손학규 공동상임선대위원장과 김정화 위원장이 각자 팀을 꾸려서 분산 유세를 하고 있다. 지금 제일 심각한 게 우리가 선거를 앞두고 합당해 이름을 정해서 많은 분이 민생당이 무슨 당인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공식 선거 초반에는 각자 흩어져서 김 위원장은 수도권, 손 위원장은 호남과 부산·울산·경남 쪽을 더 가는 식으로 나눠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눈 가리고 아웅' 꼼수 범벅 황당 선거운동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건가요? 국민들은 다 아는데 선관위만 모르고 있는 거죠? 대체 뭐 하는 건지."
지난 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홈페이지에는 거대 양당과 비례위성정당간 선거연대 꼼수를 선관위가 사실상 직무유기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정치권에선 "선거법 개정으로 비례정당이 만들어지면서 선거운동까지 황당해졌다"는 말들이 나온다.
현재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각각 선대위 회의를 함께 열고 있다. 선관위가 공동 선대위 구성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막았지만, 합동회의나 공동 유세는 사실상 용인하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다. 민주당은 시민당과 함께 지난 1일 수원과 3일 제주를 시작으로 6일 부산, 8일 광주, 10일 대전 순으로 권역별 연석회의를 갖는다. 통합당도 지난 1일 한국당과 선거연대와 정책협약을 맺었다.
지나친 꼼수에 선관위도 칼을 빼 들었다. 선관위는 지난 3일 민주당과 시민당의 쌍둥이 유세 버스에 새겨진 숫자 '1'과 '5'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두 당은 '15일'이라는 선거일을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선관위는 정당 업무용 차량에 들어가선 안 되는 정당 기호가 들어갔다고 봤다.
선거운동의 꽃인 유세전은 예상보다 싱겁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여당의 '코로나 극복론'과 야당의 '정권심판론' 메시지가 충돌하면서 어느 쪽도 압승을 예측할 수 없는 팽팽한 접전이 진행 중이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 생기는 돌발 상황에 따라 각 당은 울고 웃을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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