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충격파가 블랙홀처럼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4.15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 선거로 여당은 남은 임기의 안정적 운영과 차기 정권 재창출 기틀 마련을 위해, 야권은 정권 심판과 차기 정권 탈환을 목표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벼르고 있다. 후보들은 한 표를 위해 전통시장부터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한다. 후보들이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후보와 마주한 시민은 억지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렇게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빠지기 일쑤다. 선거운동의 기본 패턴이다. <더팩트>는 총선 정국에서 각 후보들이 거쳐 간 장소를 다시 찾는 [후보의 맛] 기획시리즈를 통해 '플레이팅(첫인상)' '레시피(정책능력, 숙련도)', '리오더(추가주문, A/S)' 등 음식 맛으로 진짜 민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옅은 호불호·직전 총리 프리미엄·의외의 '인싸력'
[더팩트ㅣ종로구=박숙현 기자] 4·15총선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후보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존재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펜을 들고 다가가면서 팬층을 생성 중이다. 진중하면서도 농담을 곧잘 하는 성격은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다. 정치 성향이 다른 이들조차도 "똑똑하고 말 잘 하더라"라며 인정한다. 직전 총리를 지낸 그는 유권자들에게 '힘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 청와대가 위치한 서울 종로는 거물급 정치인의 지역구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3명의 대통령(윤보선, 이명박, 노무현)을 배출한 곳이다. 민주화 이후 보수진영에서 4명, 진보진영에서 2명의 후보가 당선된 전통적 보수 강세 지역 중 한 곳이지만, 최근 두 번의 선거에선 진보진영의 정세균 총리가 당선돼 어느 진영도 승리는 장담하기는 힘들다. 종로구는 평창동과 창신동, 동대문시장 등 소득 상위 1%와 하위 1% 가 한데 섞여 있으면서 보수성향을 띄는 서부지역과 진보성향의 동부지역 유권자 수도 엇비슷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불린다. 21대 총선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여야 대표 인사가 맞붙는 곳으로 세간의 관심이 높다.
<더팩트>는 지난달 18~19일, 25일 이 전 총리가 다녀간 창신동 다문화센터, 창신숭인도시재생구역, 낙원상가, 광장시장 등을 찾아 그를 직접 만난 이들의 속마음을 확인했다.
◆ "무게 있어...꼭 아버지 같아요" ㅣ플레이팅 ★★★★☆
낮은 중저음, 느리지만 분명한 말투. 큰 덩치에 손에 쥐고 있는 펜과 수첩. 이 전 총리 실물을 접한 이들이 말하는 첫인상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음식은 멋스런 그릇에 예쁘게 담길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가끔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지난달 25일 광장시장에서 만난 만둣집 사장 A씨(60대·여)와 손님 B씨(50대·여)에게 이 후보자를 대한 소감을 들었다. 그들에게 이 후보는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듬직함 그 자체였다.
A씨는 "그분은 TV에서 봐도 딱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딱 부러질 거 같은 성격이야"라고 했다. 옆에 있던 B씨는 이 전 총리의 팬이라고 자처하며 "일단은 가볍지가 않고 무게가 있잖아요. 국무총리 할 때도 함부로 말 안 하시고 그런 게 매력"이라며 팬심을 드러냈다. 그를 사로잡은 포인트는 또 있었다. B씨는 "항상 요만한 수첩을 갖고 다니시잖아요. 그렇게 하면 그냥 말 듣기만 하는 것보다 저녁에 가서 한번 돌아볼 수 있잖아. 그게 난 좋더라"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평상시에도 얇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메모한다. 그의 메모 습관은 동아일보 취재기자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B씨는 "국무총리 하시는 걸 보며 '이 사람 믿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집으로 말하면 아버지 있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이번에 저 고려대 교수한테도 이낙연 씨가 먼저 사과했잖아요"라고 했다.
지난달 15일 부채에 이 전 총리의 사인을 받았던 홍삼가게 주인 이병환 씨도 "인상이 너무 좋으시고 성격이 차분하시더라. 말씀도 조리있게 딱딱딱딱 하시고"라며 그의 진중함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광장시장 13개 번영회 가운데 가장 큰 상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C씨도 "괜찮지. 사람이 얌전하잖아. 조리있게 얘기하더라"라고 했다.
옆에선 상가를 함께 운영하는 C씨의 누이도 "공부도 많이 한 것 같애"하고 덧붙였다. C씨와 누이가 쏟아낸 말에서 절반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에 대해서만은 달랐다. 보수 지지자 마음까지 훔친 이 전 총리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음식으로 치자면 구수한 된장국이다.
그의 큰 키와 덩치도 '호감형' 이미지에 한몫했다. 김규동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이하 '창신 조합') 기획운영팀장은 지난 10일 기관을 찾은 이 전 총리를 직접 본 느낌을 묻자 고민하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인상이 좋으시고 얼굴이 되게 크시더라. 저희들도 덩치가 큰 편인데 안 밀리시더라"라며 웃었다. 이 전 총리는 수필집 '어머니의 추억'에서 어린 시절 별명으로 얼굴이 길면서 통통해 '메주',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낮고 굵어서 '생영감'이라고 소개했던 게 떠올랐다.
창신동 골목시장에서도 그의 푸근한 인상은 먹혔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김모(75세·여) 씨는 "이 후보하고 악수 했지. 직접 보니 겸손하고 믿음직스러웠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마트를 운영하는 김모(64세·남) 씨도 "(이 전 총리가) 인상은 좋았지"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좋은 인상만으로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를 지지한다는 그는 "와서 인사하길래 얼떨결에 악수하면서 '고생하시라'고 말하긴 했는데 마음이 안 간다"고 답했다. '어떤 점이 아쉽나'하고 물으니 정부와 여당 욕을 늘어놨다. 과연 이 전 총리가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꼭 다시 찾아 확인해야 할 것 같다.
겉모습을 떠나 현안을 챙기는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꼈다는 이도 있었다. 지난달 11일 이 전 총리에게 직접 창신동 쪽방촌 현안 브리핑을 했던 이도희 쪽방촌상담센터 소장은 이 전 총리가 브리핑 뒤 직접 주민이 사는 곳에도 인사를 갔다고 전했다. 그는 "말씀을 길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냥 '요즘 잘 지내시냐'하고 안부만 물으시더라"라고 했다.
창신동 쪽방촌은 선거철 후보들의 단골 방문 코스라고 한다. 그래서 통상 카메라와 취재진을 몰고오지만, 이 전 총리는 비공개로 이곳을 찾았다. 이 때문일까. 이 소장은 "(이 전 총리가) 쪽방 주민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8일 '낙원상가-돈화문로 문화보존회-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 협의체 간담회에서 이 전 총리와 대화한 D씨 역시 "사람이 진실되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라고 했다. 역시나 '수첩'과 '비공개 만남'이 이유였다.
그는 "오신 날이 황 대표 출마 선언 다음 날이라 취재진도 무지하게 많이 오겠구나 했는데 한 팀만 오더라"라며 "(비공개로 만나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아"라고 평가했다. 이 전 총리가 유권자들을 대하는 모습에선 무림 고수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는 정치 초보 황 대표와 달리 4차례 국회의원 선거, 1차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모두 압승했다. 이 때문인지 출근길과 퇴근길 인사, 현장 방문이 요란스럽지 않다. 비공개 행보가 유권자 마음을 더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는 모양이다.
이 전 총리 '인싸력(?)'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지난달 13일 종로구 숭인동 일대 한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큰 아들처럼 대해달라"며 다가가는가 하면 "며느리 얼굴이 좀 어두우면 아들이 미워진다", "제가 선거를 많이 하다보니 동생이 모자랐다. 기왕 낳으신 김에 더 낳아주시지" 등 농담도 곧잘 던졌다. 호랑이 선생님 같이 엄할 것 같지만 농담할 때 보면 능글스러움이 타고난 듯하다.
◆ 그 후보에겐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 직전 총리 프리미엄 ㅣ 레시피 ★★★☆☆
선거철 후보들은 사진만 찍고 말 몇 마디만 나누다 간다는 쓴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던지는 질문에 후보의 철학과 정책방향, 진정성이 보이는 법이다. 이 전 총리는 약 15분 내외의 짧은 방문에도 핵심을 물었다. 현안을 말하면 '척하면 척' 알아듣고 의견을 냈다고 한다. 특히 2년 7개월간 국정 전반을 조율한 직전 총리 프리미엄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광장시장 상인 C씨는 "좌담회 할 때 사람들이 자꾸 주차장 얘기만 해서 대화가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낙연 씨가 '그럼 준비해놓고 보시죠'하고 정리를 하더라"라고 했다. 그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주차장 설치 문제의 복잡함을 단박에 파악한 이 전 총리의 상황파악능력을 높게 쳐줬다. C씨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이 전 총리는 앞에선 다 해결하겠다고 하고 뒤에서 감감무소식인 여느 정치인처럼 빈말은 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또 "상가 연합회 쪽에서 상인회 건물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이 전 총리가 정부 쪽 사람한테 전화하더라고. 그만큼 힘있는 사람이야"라고 설명했다. C씨에게 이 전 총리는 전화 한 통 넣으면 한달 임대료 170만 원을 깎아줄 수 있는 '힘있는 사람'으로 인식된 듯 했다.
이 전 총리의 '직전 총리 프리미엄'을 느낀 이는 또 있었다. 지난달 8일 '낙원상가-돈화문로 일대' 현안 관련 비공개 간담회에선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일대는 낙원상가의 350여 개의 상가 소유권 이전문제와 보상 문제, 서울시와 도로 점용료 부과 문제 등으로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두고 이 전 총리는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D씨는 "이 후보가 아파트 대표자 말씀을 듣더니 '이런 건 시의회에서 할 수 있지 않느냐'하면서 배석한 시의회 의원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총리를 해서 그런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아는 것 같더라"고 했다. 다만 그는 "후보가 공약을 발굴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결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 측에서 방안을 제시한다면 그의 열혈 지지자가 될 것만 같다.
짧은 방문 탓에 이 전 총리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창신 조합에서 브리핑을 듣고 의견을 나눈 시간은 약 15분. 김 팀장은 "사실 (이 전 총리가) 오시는 줄 몰랐다"고 했다.
갑작스런 방문에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간단한 의견 전달 정도만 오갔다. 다만 질문들은 꽤 날카로웠다. 창신동은 한때 봉제·의류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세월이 지나 일대가 활기를 잃은 곳이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짓는 대신 도시재생지구의 길을 택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여전히 발전에서 먼 동네가 됐다. '도시재생사업 재추진'을 주축으로 공약 발굴 중인 이 전 총리에게 창신동은 관심이 가는 곳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들은 이 전 총리는 '사업을 연장하거나 변경할 계획이 있는지' '주민들의 주거안정이 흔들리면 어떻게 하나' '집 수리에 집중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안 하는 건가' 등을 물었다.
◆ "창신시장 봉제업 현장 꼭 와달라"ㅣ 리오더 ★★★★☆
이 전 총리는 선거철이야말로 국민이 주권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농밀하고 거침없는 얘기를 하게 된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어쩌면 현장의 쓴소리는 '선거'라는 시험을 앞둔 이 전 총리에게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게 해줄 답안지일지도 모른다. 이 전 총리를 만났거나 만나고 싶은 이들이 건넨 희망사항들을 여과없이 전해본다.
광장시장 C씨는 이 후보와의 좌담회에 참석했지만 도중에 자리를 떴다. 그는 "좋은 얘기는 안해줄 거야"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세균(의원)한테 (광장시장 현안을) 얘기 들었을 거 아냐. 체크를 해서 광장 시장에 여럿 모였을 때 '오기 전에 공부하고 왔습니다' 했어야지"라고 했다. 그에겐 옆 동네 남대문 시장처럼 임대료 인하 방안이 절실했다. 그는 "여기에서 55년 장사했는데 요즘엔 먹자골목도 안돼"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식자재 등 배달 차량에 주차 딱지 떼는 일이라도 없게 해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광장시장 한 상인(40대·남)은 "종로구청에 물어보면 서울시 방침이 그래서 모른다고 하고, 서울시에선 구청하고 잘 얘기해봐라 하니 잘 안 되는 거에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전 총리의 수첩에 "광장시장 주차 딱지X"라고 적혀야 할 것만 같다.
창신 조합 김 팀장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때) 실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애정을 갖고 (사업 현장을) 관리 유지할 수 있도록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과정이 추가되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다문화센터 이 사무국장은 "지금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방문 서비스는 한국어 교육은 최대 12개월, 부모자녀생활지도서비스는 6개월 정도"라며 정부 지침으로 서비스를 연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쉽다고 했다.
창신골목시장 마트 운영자 김씨는 이 전 총리가 공들이고 있는 도시재생사업 재추진에 대해 "현실은 만만치 않아. 막상 하려면 하고 싶어도 안 될 것"이라며 "표 계산상으론 (추진)하려고 움직일 순 있어도 재개발은 대통령이 해도 안 될 거다"라고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창신 시장에서 원단 제작업을 하는 임모씨(53세·여)는 "문재인 정부 때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세금을 없애버려서 여기에서 의류 원단을 취급하는 곳 10군데 중 8곳이 문을 닫았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지지자였다는 그는 "살기가 너무 바쁘니 이제는 여기 사람들이 과연 (이 전 총리를) 뽑아야 하나 라고들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이 전 총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안 오는지 답답하다.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꼭 다시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다음 [후보의 맛] 주인공은 종로구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맞대결을 펼치는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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