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은 4년마다 '정치 토박이'들을 교체했다. 20대 총선에선 44.0%, 19대 49.3%, 18대 44.8%가 초선 의원으로 물갈이됐다. 오는 21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키려는 의원과 이에 도전장을 던진 신인 정치인들의 경쟁은 앞으로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더팩트>도 이에 발맞춰 '21대 총선 새 얼굴' 시리즈를 통해 세대교체의 신진 주역들을 미리 알아본다. <편집자 주>
"국민과 괴리 큰 한국당, 청년 역할 중요"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내년 총선에서 울산 출마를 준비 중인 장능인(30) 자유한국당 상근부대변인은 10년 전 스무 살 때 처음 한국당(당시 한나라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던 젊은 보수주의자다. 청년이 보수정당에 가입해 오랫동안 활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교육 관련 사회적 기업 미담장학회 대표로, 당 부대변인 역할까지 겸하면서 지역구 출마까지 준비 중인 장 부대변인을 지난 9일 국회에서 만났다. 정치를 하게 된 이유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2010년대 한국당 변천사를 내부에서 지켜본 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무 살에 '보수 정당' 택한 젊은 보수주의자
장 부대변인은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재학 시절인 지난 2009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후 입대를 위해 탈당했다가 2012년 제대 직후 복당해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전지역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에는 6개월가량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2017년 19대 대선 때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의장도 역임했다. 올 1~3월에는 당 대변인도 맡아 나이에 비해 화려한 정치 이력을 보유했다.
젊은 공학도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물었다. 장 부대변인은 "어릴 때부터 정치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며 "정치는 순간을 바꾸고, 공학(과학)은 지속해서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공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당면한 문제도 해결 못 하면서 전 세계와 후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부대변인의 '가르치는 일'은 미담장학회 활동을 의미한다. 그는 "(카이스트) 대학 1학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워 돈을 벌어야 했는데, 막노동도 하고 편의점에서도 일했는데 월급이 너무 짰다"라며 "우연한 기회에 과외를 하게 됐고, 돈이 좀 됐다. 그때 교육 기회가 다 균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시 열 명이 넘는 학생을 동시에 가르쳤는데, 교육 기회뿐 아니라 학생들의 꿈의 크기도 부모님의 소득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았다"며 "서울 강남, 대전 서구, 울산 남구 등에서 소위 잘 사는 지역에서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90% 이상이 손을 들고 얘기를 하는데 지방, 특히 시골에선 절반도 손을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교육 불평등 개선 위해 '미담장학회' 설립·활동
장 부대변인은 교육의 불평등한 기회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지 않았다. 공부하고픈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고, 이왕이면 그 공간이 대학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미담장학회를 구상해 실행했다고 했다.
그는 "대학은 상아탑의 역할도 있지만, 국민과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카이스트에 강의를 열어 주말에 학생들을 가르쳤다"며 "당시 총장님도 지원을 많이 해줬고, 함께 한 동료들도 가르치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교육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봉사로 시작한 일을 사회적 기업으로 일구는 데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함마드 유누스 유누스센터 교수(그라민은행 설립자)의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2008년)라는 책이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유누스 교수가 만든 그라민은행의 빈민구제사업과 사회적 기업 설립을 위한 노력과 빈민구제에 대한 그의 철학을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장 부대변인은 "이 책을 읽고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저도 사회적 기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일반 청소년은 무료로 가르치고, 잘 사는 학생들은 돈을 받고 가르치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교육 관련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고 했다.
카이스트에서 시작한 사회적 기업을 전국 규모로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울산과학기술원, 대구 경북대 등 전국의 대학교에 배낭을 메고 다니면서 함께할 동료를 모았다"며 "지금은 전국 12개 대학에서 연간 5000명 정도의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중 무료 수강생은 절반이 넘는 3000여 명이다. 나머지 2000여 명은 방과후학교, 자유학기제, 과학 캠프, 돌봄교실 등의 방식으로 유료로 가르친다.
◆궁극적 목표는 '평화 통일' 기여
미담장학회 활동은 장 부대변인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활동이다. 궁극적으로 그가 꿈꾸는 정치는 무엇일까. 장 부대변인은 "제가 공부는 열심히 해봤으니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궁극적으로는 평화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쟁을 겪지 않은 본인 또래 세대만이 평화적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장 부대변인은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북한은 원수여서 통일이 어렵다"며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가 정치를 통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에 들어간 것은 궁극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2009년 한국당(당시 한나라당)에 가입했는데, 당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나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다. 1년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군대에 가기 위해 탈당해 최전방에서 군 복무를 했다"며 "제대 후에 돌아와 대전지역 선대위 위원장을 하면서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통일에 기여하는 게 목표라는 젊은 정치인이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한국당을 택했다는 게 의아했다.이에 대해 장 부대변인은 "제가 현실 정치를 하려 마음을 먹었을 때 현실적인 선택지는 한국당 아니면 민주당 두 개였다"며 "통일을 위해선 북한 정권은 대한민국의 적이면서 평화 통일의 대상이라는 모순을 극복해야 하는데, 급진적 정책은 안 된다고 봤다. 모순을 아우르며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선 한국당 방식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안보부터 튼튼히 한 뒤 통일로 가야하는데, 이 부분에서 한국당의 방식이 옳다고 본 것이다.
◆"한국당, 국민께 실망 많이 드려…노력하는데, 충분치 않아"
2010년대는 유독 한국당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두 명의 대통령(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재임 시절 비위 혐의로 구속됐고, 한 명은 임기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당명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다시 한국당으로 바뀌었다.
한국당의 2010년대를 처음부터 지켜본 내부의 젊은 보수주의자는 이를 어떻게 봤을까. 그는 "최근 집권했던 정당으로서 책임이 있고, 국민에게 실망을 많이 드렸다"며 "한국당이 지금 여당과 비교하면 국민과의 괴리도 크다"고 했다.
이어 그는 "특히 청년들이 한국당을 안 좋게 본다. 얘기해도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청년의 삶과 거리도 있다고 봐서 그렇다"며 "이 괴리를 청년 정치인이 좁힐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변혁기·혁명기에는 청년의 역할이 컸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청년이 역할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당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 물음에 장 부대변인은 "나름의 노력은 하는데, 충분치는 않은 것 같다"며 "속 시원하게 (정치를) 했다면 국민들이 (한국당의) 정치를 더 좋아했을 것"이라고 했다.
◆"위기의 울산 경제, 4차 산업혁명 접목해 해결"
울산에서 21대 총선에 나설 채비를 하는 장 부대변인은 일차적으로 지역구에서 신임을 얻어야 한다. 울산을 택한 이유와 비전을 물었다.
장 부대변인은 "울산은 제가 초(화정초)·중(현대중)·고(신정고)를 나온 고향"이라며 "원래는 지역내총생산(GRDP)이 4만~5만 달러가량 됐지만, 요즘은 아주 어렵다. 현대가 있던 지역은 해고 인원이 수만 명에 달해 가족까지 합치면 울산시민 100만 명 중 10%가량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업 사이클을 지켜서 살릴 수도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에 멈춰있는 것을 다시 움직여 경제를 회생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 부분에서 제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향 울산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는 "헌법 제7조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돼 있는데 그게 안 돼 정치고, 정부가 엉망"이라며 "훗날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국회의원 임금도 국민 중임금으로 낮춰야 하고, 회기 중에는 지역구보다 국회 일에 집중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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