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 어려운 세 가지 요구…'단식 명분' 대신 '개인 실리' 챙길 듯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리더십' 논란이 제기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승부수'를 던졌다. 황 대표는 지난 20일 단식 투쟁을 선언하며, 단식을 끝낼 명분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를 요구했다.
황 대표는 단식 이틀째인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개최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단식 투쟁을 이어가겠다"며 "지소미아 파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공수처법은 '3대 정치악법'으로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개개인의 문제, 나의 문제"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당 대표의 첫 단식…명분 논란
한국당 대표가 단식 투쟁을 하는 것은 새누리당에서 간판을 바꾼 후 처음이다. 새누리당 시절에는 이정현 대표가 지난 2016년 9월 당시 김재수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에 반발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7일간 단식 투쟁을 한 바 있다.
일각에선 황 대표의 '단식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소미아의 경우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가 우선"이라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수처법·선거제 개혁안은 여야 4당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국회의 일'이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리더십에 도전을 받고 있던 당내 상황도 단식의 진정성에 의문을 더하고 있다. 황 대표가 직접 추진했던 1호 인재영입 대상자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공관병 갑질' 의혹에 따른 당 안팎의 반발로 무산됐고, 갑자기 꺼내든 '보수 통합' 카드는 대상자인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과 우리공화당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김세연 의원 등 소속 의원의 잇따른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과 당 쇄신 요구도 거셌다.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단식'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단식은 시작을 결심하기도 어렵지만, 끝내는 것은 더 어렵다. 단식의 명분이 충족돼야 하는데, 황 대표가 내세운 조건을 문 대통령이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지난 20일 보수단체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야당을 얕잡아보고 있는데, 단식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라며 "문 대통령은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황 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낮게 봤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1일 국회 브리핑에서 "황 대표 취임 이후 장외 투쟁에서 삭발로, 다시 단식까지 하겠다고 하는데, 황 대표가 아무리 원외 인사라지만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게 야당 대표의 역할은 아니지 않냐"며 "민생과 직결된 국회는 외면한 채 장외 투쟁에만 임하겠다는 것은 국민들께 제1야당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로 비칠 뿐"이라고 혹평했다.
◆박상병 "단식 종료, 병원행 말고는 답 없다"
그렇다면 황 대표의 출구 전략은 어떻게 하면 될까.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소미아 종료 포기, 패스트트랙 법안 철회 등이 어렵다는 것은 황 대표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단식을 끝내는 길은 병원에 가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정치평론가는 이어 "황 대표의 요구 조건은 친보수 성향 인사들의 목소리와 같은데, 지소미아가 종료되고, 패스트트랙 법안을 여야 4당이 통과시키면 엄청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며 "황 대표는 단식을 명분으로 (정치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단식 끝에) 황 대표가 병원으로 실려 가면 당내에서 '물러나라'는 말을 할 수 없다"며 "개인의 정치생명과 이익을 위해서 국정을 빌미로 명분 없는 황당한 싸움을 하고 있는데, 국민들의 눈으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소미아, 패스트트랙 법안들에 대한 야당의 요구에 눈도 깜짝 안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몸을 던지는 것 말고 방법이 있나"라며 "누군가가 나서 이 시기에 몸을 던져 투쟁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목숨을 건 단식을 하는 것으로 정치공학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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