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회 이상 北 공개처형지 보고서 발표… "북한, 공포심 위해 공개처형 유지"
[더팩트ㅣ종로=박재우 기자] "북한 형법에는 규정이 없지만, 살아있는 소든 죽은 소든 국가 소유인 소를 먹었다고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국내 북한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관계자의 말이다.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 남북 긴장 완화와 북미정상회담 등에서 보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들의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들을수록 놀라웠다. TJWG 지난 11일 '살해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북한 정권의 처형과 암매장' 보고서를 냈다. 탈북자 610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참혹한 처형 문화 실태를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공개처형을 300회 이상 자행했다. 북한 각 지역과 마을들의 사정을 상세히 조사(위성사진을 활용)하고, 북한 전역에 걸쳐 인권유린 피해 사망·실종자들의 시신 또는 유해가 매장되었거나 추정되는 위치를 중점적으로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외신을 통해 190건 이상 보도될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이영환 대표는 북한의 '공개처형'에 대해 집중한 이유에 대해서 "심각성의 규모와 잔혹성 때문"이라며 "수백, 수천 명이 처형당했다. 공개처형의 목표는 북한 사회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개처형 죄목이 '생계형 범죄'(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생계를 위해 저지르는 범죄)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더팩트>는 종로구에 위치한 TJWG 사무실을 찾아 이영환 TJWG 대표, 댄 빌레펠드 기술팀장, 탈북민들과 심층 면담을 담당한 연구원 양혜린 박사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약 1시간 동안 들어보았다. 21세기 북한의 인권 실상은 어느 정도일까.
다음은 TJWG 직원들과 진행한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인권단체 TJWG에 대해 소개해달라.
이영환 대표: 가끔 미국의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북한으로 방송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소개한다. 북한은 70년 독재 국가인데, 역사상 안 무너진 독재가 없었다. 단지, 언제 무너질지 예측할 수 없을 뿐이다. 그 독재가 무너지는 시기가 '전환기'인데, 체제가 전환된 그 시기가 오면 과거 정권의 불법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대전환기이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되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실무자로서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다른 인권 유린 사례도 있을 텐데, 공개처형에 집중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영환 대표: 공개처형은 다른 인권유린 사례보다 국제적으로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사안이다. 북한, 이란과 같은 나라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공개처형은 현대도 아니고 근대도 아닌 전근대, 중세시대 수준에 버금간다.
우리가 진행한 탈북민 조사 중 공개처형 피해자 가족들도 60여명이나 된다. 이분들은 실종된 가족들 생사확인도 못하고 있어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단체로서는 공개처형에 대해 국내에서 더 많은 공감대를 만들고 더 많이 알리고 싶었던 것도 있다.
공개처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심각성의 규모와 잔혹성 때문이다. 우리 조사에서 탈북민들이 얘기하듯 수백, 수천 명이 처형당했다. 공개처형의 목표는 북한 사회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 전체에 대한 정신적인 피해를 야기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 542건 중 200건으로 함경북도 지역이다. 유독 함경북도 지역에서 공개처형이 많은 이유는?
이영환 대표: 이에 대해 아직 전반적인 데이터를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함경북도 지역에서 유독 많이 자행된 이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국경을 넘기 쉽고 경제적으로 척박한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함경북도는 강폭이 좁은 두만강이 있고 양강도는 백두산이 위치한 산지라 탈북이 상대적으로 쉽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써온 1호 열차가 달리고 중국과 북한간 평양행 물자를 수송하는 길목인 신의주가 있는 평안북도는 경계가 삼엄해 탈북이 쉽지 않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공개처형이 자행됐던 지역을 찾는 조사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개처형이 북한 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다고 한다면, 북한 정권은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유독 함경북도 지역에만 많다면, 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처형죄목에서는 715건 중 절도 및 재산 침해죄가 23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영환 대표·양혜린 연구원: 처형 이유에 대해서는 '생계형범죄'가 대부분이다. 탈북민들의 진술에 따르면 공개처형 처벌자들은 공장 부속품들, 전기선, 구리선 등을 몰래 팔아 식사를 하거나 생활에 보탰다. 또, 살아있는 소든 죽은 소든 북한 형법에는 규정이 없지만, 국가 소유인 소를 먹었다고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체계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책임을 묻는다면서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공개처형을 내렸다.
또한, 한 증언자에 따르면 같은 죄목을 저질렀지만, 출신성분에 따라 성분이 좋은 이들은 풀려났고, 성분이 좋지 않은 자들은 공개처형을 당했다. 북한 사회도 돈이 있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전무죄·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와 같은 사회라고 전했다.
-이 보고서가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들었다고 했는데, 인터뷰 과정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양혜린 연구원: 최근 1년 동안 85명의 인터뷰를 직접 진행했다.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자 대부분은 목격자다. 그중에 안전부(북한의 경찰기관) 전직 직원도 있었다. 그분은 직접 공개처형 이후에 시체를 처리하거나 동원된 적도 있었다.
인터뷰 참가자 모집은 탈북민들의 인맥을 통해 리스트를 구성하는 '눈덩이 표집법(Snowball Sampling)‘을 사용한다. 이를 시작으로 인터뷰 참여자들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또, 참여자 분들께서 자신들이 속해있는 커뮤니티에 가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면, 그걸 보고 우리에게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경우도 있다.
참여자들이 오면 먼저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거주지역, 공개처형 경험, 가장 어렸을 때 목격한 나이 등에 대해 묻고 이를 기반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거주지역을 시작으로 이를 중심으로 근처 안전부, 당 위원회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공개처형장을 찾기 전에 스케치한다. 그다음에 공개처형장에 도착한 상황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신기했던 것은 나중에 참여자들이 그린 스케치와 위성사진을 비교해보면 대부분 일치했다.
-2017년에도 보고서를 공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보고서(2019)와 지난번 보고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영환 대표: 이번 보고서의 초점은 김정은 시대(2011~현재)에 중점을 주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현재 북한에 살아있는 정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시대의 사례들을 찾아 조사했다. 김정은 시대의 국제적인 인권 범죄가 지속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확인하기 위해서 계속 조사하고 있다.
한 언론 보도에서 공개처형이 줄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는데, 아직 그것을 판단할 만큼 탈북민들 사이에 데이터가 모이지 않았다. 탈북 과정이 보통 1년반에서 2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은 확인할 수 없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대내적으로 공개처형을 줄여나간다는 얘기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개처형과 비공개처형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난 탈북민 중에 아직도 84%가 목격했다고 하고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족들이 처형됐다는 분들도 아직 많이 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는가? 또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댄 빌레펠드 기술팀장: 지난 2년간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쉬지 않고 일했다. 증언 인터뷰를 다 마치고 올해 중순부터 보고서 작성에만 집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4개월 동안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 분석만 진행했다. 다시 팩트체크를 하고 녹음파일을 듣고 그렇게 집중해서 진행했다.
양혜린 연구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탈북민들의 기억이 왜곡되기도 하고 미화되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본인이 경험했던 것을 복기하면서 찾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중심을 잡고 찾아 나가야 했다.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어렵고 잘 진행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또한, 워낙 힘든 이야기다 보니 본인이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 가족들이 아직 북한에 있으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아니면 그 당시의 슬픔과 고통을 느껴 인터뷰를 중단하기도 한다. 보고서 작성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헤아리는 일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중심을 잡는 게 제일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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