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국회 보좌진 역할 왜곡되지 않았으면"
[더팩트ㅣ국회=이원석·문혜현 기자] "어유. 진짜 저희는 오글거린다니까요. 미화되거나 아니면 너무 안 좋게 표현되는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근데 드라마 자체는 '웰메이드'에요. 사소한 부분도 많이 신경 쓴 것 같습니다. 현실엔 이정재 같은 보좌관, 신민아 같은 국회의원이 없지만요."
야당 소속 모 의원실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보좌관 A 씨는 지난 14일 첫방송된 JTBC 드라마 '보좌관'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오글거린다'고 했지만, A 씨는 방송된 1, 2화를 모두 본 모양이었다.
드라마는 송희섭(김갑수) 의원실의 유능한 수석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의 실현을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장태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송 의원을 보좌하고, 자신 또한 다음 총선 출마를 꿈꾼다. 장태준의 연인은 변호사 출신 비례대표 초선의원인 강선영(신민아)이다.
드라마 '보좌관' 방영 후 국회 보좌진이나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심지어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드라마는 첫 회 4.4%로 JTBC 드라마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더팩트>는 17~18일 이틀간 국회 보좌관들이 본 드라마 '보좌관'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이런 보좌관, 의원실이 있을까요?"
여러 보좌진에게 '드라마와 현실이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가장 먼저 돌아온 대답은 거의 같았다. 보좌진들은 "국회엔 이정재나 그 사무실 식구들처럼 미남미녀만 모인 의원실이 없다"며 웃었다. 극 중 장태준과 호흡을 맞추는 의원실 식구는 윤혜원(이엘리야), 노다정(도은비), 김종욱(전승빈), 한도경(김동준) 등인데 보좌진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겼다. 현실과는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보좌진들은 장태준이 송희섭 의원의 경쟁상대인 조갑영(김홍파) 의원과 직접 상대하고, 기업 회장을 찾아가 상임위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협박하는 모습 등에서 괴리감이 크다고 했다. 국회 생활 6년 차 보좌관인 B 씨는 "드라마니까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실제로 저랬다가는 당장 국회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라며 "생각보다 보좌관은 힘이 없다"며 웃었다.
아울러 보좌진들은 장태준과 동료들이 필요한 자료들이 있을 때마다 척척 찾아 확인하는 부분이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여당 소속 의원실의 8급 비서관 C 씨는 "의원실 일 중 대부분이 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아내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게 가장 어렵다"며 "드라마 속에선 자료 찾는 속도가 어마어마한데 실제로는 기관 자료를 요청해도 며칠 걸리는 건 기본이고, 자료가 와도 불완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보좌관과 국회의원의 연애 역시 다소 파격적인 설정이란 견해가 많다. 한 보좌진은 "연애를 하더라도 비밀로 할 테니 어차피 우린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좌관과 국회의원이 사귀는 일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다른 보좌진도 "드라마에서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몰래 사귀고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여긴(국회는) 보는 눈이 많아 사실상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다. 눈치를 안 챌 수가 없다"며 "더군다나 몰래 만나는 장소가 국회 근처라는 장면은 극적 효과를 위한 것이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의원 부를 때 "영감"… 디테일 살아있네
드라마와 현실이 동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의외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는 평도 많았다. 예를 들어 보좌진들이 의원을 부를 때 '영감'이라고 호칭한다거나, 출입기자들이 보좌관에게 '선배'라고 부르는 모습이다. 또, 장태준 차 앞 유리에 붙은 주차카드, 기자 출신 보좌진, 의원 양복 재킷에 달린 배지,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 공무원들로 가득 찬 국회 풍경 등도 현실과 매우 흡사하다.
한 보좌진은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 디테일하게 실제 국회 모습을 묘사하려고 애썼다는 걸 알겠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잘못된 모습을 풍자하는 의도가 담긴 듯한 장면들에 대한 호평도 나왔다. 20대 한국당 소속 의원실 비서 D 씨는 "인턴이 원래는 떨어졌었는데 의원의 한 마디로 보좌진이 되는 장면은 다소 극적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현실을 잘 반영했다"며 "의원님이 최종 결정권자기 때문에 아무리 스펙이 빵빵해도 의원님이 '노' 하면 수용이 안 되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보좌진도 "의원실에 면접 보러 온 인턴이 책상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는 부분이 실제와 비슷했다. '떨어진 거 아니었어?', '몰라~ 의원님이 부르셨대'라고 언급하는 부분도 웃프(웃기다와 슬프다)더라"고 말했다.
여당 소속 7급 비서 E 씨는 "여성 비서에게 커피를 타라고 시키는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실제로 문제점으로 많이 지적되던 부분들"이라며 "대부분 의원실이 요즘은 그런 문화를 없애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아직도 그런 문화가 남아있는 곳도 분명 있다고 한다"고 했다.
◆"'국회 보좌진' 왜곡되지 않았으면"
다수 보좌진들은 드라마로 인해 '국회 보좌진'의 역할이 왜곡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우려 혹은 바람을 나타냈다. D 씨는 "일반 시민들은 국회를 좋게 보지만은 않지 않나. 옛날처럼 가방을 딸랑딸랑 들고 다니는 속칭 '시다바리(곁꾼: 일하는 사람의 곁에서 그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 역할로만 묘사될까 걱정했었다. 우리가 정책도 만들고 민원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며 "1화를 보니 (보좌진의 역할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 같았다. 동료 보좌진들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장태준은 극 속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바람을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실제로 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보좌진들은 "그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이고, 드라마가 그쪽으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국당 보좌진협의회장인 고광철 보좌관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드라마 속 이정재가 연기하는 보좌관의 모습은 현실과는 상당히 다르다"라며 "그런 쪽으로 너무 비치지 않고 보좌진들의 애환을 담는 그런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 보좌관은 "정치권이 평소 욕을 많이 먹지만 그 뒤엔 묵묵히 일하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보좌진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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