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복귀 요청에 "자기 머리 못 깎는다"… 가능성 열었나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거듭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 부인해온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최근 미묘하게 달라진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유 이사장이 벌써 정치 활동을 재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시각을 보인다.
진보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혀온 유 이사장은 그동안 정계 복귀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사장직 취임하면서 "저는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 출마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 이사장은 올해 초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도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고, 선거에 나가기도 싫다. 무거운 책임을 맡기 싫다"고 못 박았다. 한 달 전인 지난달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준비 기자간담회에서 역시 그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이미 완전히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유 이사장의 발언에 변화가 생겼다. 유 이사장은 지난 14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를 하고 말고는 제 마음이다. 나중에 제가 하게 되면 욕하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정계 복귀설에 불을 붙인 건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의 발언이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방송인 김어준 씨와 함께한 토크콘서트에서 유 이사장은 정계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김어준 : 대선 언제 출마합니까?
양정철 :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셨잖아요. 유시민 선배는 벼슬을 했으면 그에 걸맞은 헌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어준 : 정치는 절대 안 한다고 그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양정철 : 문 대통령 버티시던 거에 비하면 뭐, 본인이 재간이 있겠습니까. 때가 되면 역사 앞에 겸허하게... 이렇게 거침없이 딱 부러지는 분이 왜 자기 앞길을 명확하게 결정을 못 하는지.
유시민 : 원래 자기 머리를 못 깎아요.
'(사람이 스스로) 자기 머리를 못 깎는다'는 유 이사장의 발언은 '남이 깎아줘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김 씨는 유 이사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남이 깎아달라는 것"이라고 거들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간 단호하게 정계 복귀 가능성을 부인해왔던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마음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역 정치인들도 유 이사장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0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유 이사장이 정치를)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발언이 정치를 하는 쪽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는 쪽으로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며 "지난달 팟캐스트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대담할 때 내가 '앞으로 대통령이 돼도 나와 단독 면담을 하자'고 하니 웃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관계자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 이사장이 때가 되면 정치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며 "유 이사장의 본심이 어떤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요구가 크면 본인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유 이사장이 이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고 평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지난 18일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발언을 통해 이미 정치 재개를 선언한 것"이라며 "모든 것엔 '밀당'(밀고 당기기)이란 게 있다. 정치인도 유권자와 밀당을 한다. 유 이사장의 모습은 '안 한다', '안 한다' 하다가 마지못해서 나서는 전형적인 정치 기술"이라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계 복귀에 대한 직접적 발언이 아니더라도 유 이사장의 최근 행보에 답이 있다고 봤다. 신 교수는 "유 이사장이 예전엔 합리적인 발언들을 많이 했는데 최근엔 특정 진영에 치우치는 발언을 한다는 평가가 많다"며 "이런 행보는 유 이사장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선 현재 권력에 반대할 수 없다. 친노(親 노무현)인 유 이사장이 친문(親 문재인) 진영에 적극 가담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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