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개헌안 무산 아쉬움..."자치분권, 주민이 주인인 '주민(主民)주권"
[더팩트ㅣ중구 서소문동=이철영 기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 적도 체험한 적도 없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고, 지금에 왔다. 이젠 주민이 주인 되는 자치분권을 통해 주민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1987년 헌법 안에 갇혀있다."
투사(鬪士)의 말처럼 들린다. 김윤식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은 동그란 눈을 부릅뜨며 지방자치 정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개헌안 폐기에 대한 아쉬움과 국회를 향한 비판도 담긴 듯했다. 헌법에 지방자치분권을 명문화할 절호의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개헌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방분권은 세계의 큰 흐름이다. 한국도 그렇게 가야 하는데…"라며 잠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약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이승만 정부가 들어선 당시부터 본다면 지방자치 역사는 더 길다. 김 사무총장은 그런데도 현재 대한민국의 '자치분권', '지방자치'는 1987년에서 한두발짝 나갔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더팩트>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협회에서 김 사무총장을 만나 약 1시간 30분 동안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필요성과 그 이유에 대해 들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전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로서 1999년 1월에 지방자치법 제165조에 근거해 설립됐다. 단체장들의 추대형식으로 선출되는 1년 임기의 회장은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이 맡고 있다. 2005년 4월 7일에 지방분권의 실현과 지방정부의 공동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발족한 사무처는 현재 김윤식 전 시흥시장이 이끌고 있다.
◆지방분권의 '오해와 진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읍면동 자치에서 현재는 시군구 자치체제로 변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를 중단시키고, 중앙집권 행정정치체제를 구축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민주당 총재 당시였던 1990년 10월 단식투쟁을 통해 1991년 지방의회를 부활시켰다. 이후 4년 뒤인 1995년에야 현재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했다. 그렇게 약 30년의 지방자치 역사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김 사무총장은 30년 지방자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면 시민들은 시장, 군수, 지방의원 권한을 더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한다"고 했다. 지방행정,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김 사무총장도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방분권이 안 된 결정적 요인은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분석이다. 또, 지금까지 중앙집권체제에 익숙해진 관성이 작용했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는 지방분권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했고, 지방자치 경험이 일천하다"면서 "유럽은 왕정과 봉건체제를 시민혁명을 통해 무너뜨리고 시민사회가 형성됐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잔재들을 청산하지 못한 채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공화국인지 스스로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좀 다르지만 이전 세대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았던 시기가 있었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이루었다. 하지만 이 세대는 민주주의를 배우지도 체험하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대 상황이 이해되지만, 30년 세월 동안 왜 못했을까. 우리는 해외 출장 중 여성 접대부를 요구하거나, 폭행, 국민 비하 등 일부 지방의원들의 추태 등을 수없이 보았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정치인들의 일탈은 주민들로부터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한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그는 "아직도 시민들의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지방 스스로 반성해야 할 대목이 많다"고 시인했다. 지방자치의 효용성을 체감하지 못한 주민들에게 무조건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행정 앞에서 민원인이 아니고 정치 앞에서 유권자일 뿐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판단이다. 그는 "주민들에게 의사결정 할 기회도,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고, 경험하지도 못했다. 지방자치를 한다고 했지만, 주민자치는 매우 낮은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라며 "지방자치는 시민사회를 성장시켜가는 매우 유용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세계에서 확인됐다. 공동의 실천 과정을 통해 학습하고 체험하면서 성장해 가야 한다. 이런 토양을 제공하는 게 지방자치"라고 말했다.
◆1987년 헌법, 언제까지 강요받아야 하나?
지방분권은 작은 의미로 중앙행정의 권한과 책임, 재정을 지방과 나누자는 뜻이다. 광의의 개념으로 보면 주민에게 권한, 책임, 재정을 주자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이 주장하는 주민자치는 주민(住民)주권 시대가 아니라 주민이 주인인 '주민(主民)주권 시대'이다.
주민이 '주인' 되는 지방분권이 30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여건 속에 있다. 개헌을 한다면 모를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개헌안에 지방분권을 명문화했다. 헌법 제1조 3항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내용이다. 김 사무총장은 "개헌안이 통과됐더라면…"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사무총장은 "결국 무산됐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획기적인 헌법안이었다. 이미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1970~80년대 자치를 강화하고 분권형으로 바꿔왔다. 우리는 여전히 1987년 초보적인 헌법으로 살고 있다"라며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자치분권 관점으로 보면 정말 시대적 요구를 잘 담아낸 헌법안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세상은 시민의 삶은 시민의 행정과 정치에 대한 이해와 요구는 시시각각 변해가고, 국민의 정치적 스펙트럼도 굉장히 다양해졌다. 여전히 1987년 체제를 강요받으면서 그 틀 안에 갇혀 있다 보니 법 제도의 개선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을 보면 김 사무총장의 주장이 이해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국가 사무 일부는 지방으로 넘긴다고 했다. 당시 안 된 것을 모아 지방이양일괄법(571개 사무)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는 2018년 처리를 약속해놓고 현재까지 처리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역시 국회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치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단적인 예이다.
김 사무총장이나 지방자치단체는 국회 처리만 기다리며 속을 태우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개헌안이 통과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그는 "중앙 관료나 중앙정치인들의 저항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개헌이다. 헌법에 명시하면 되니까. 새로운 헌법에 맞춰 모든 법령을 바꿔야 하니까"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방자치·지방분권 본질은 '주민주권' 강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지방자치 30년 역사에도 왜 제자리 걸음인지 알 것 같다. 국회의 무책임, 중앙행정부의 저항, 지방자치 실현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 사무총장과 지자체장들이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건 자칫 지방소멸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김 사무총장은 "자치분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모든 것에서 분권화하는 시스템, 자치의 강화가 정답이라고 생각을 안 한다"라며 "우리 사회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격차이다. 국토개발, 인구, 재정 모든 면에서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심각하다. 균형 발전은 국정의 중요한 좌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 때부터 균형 발전과 자치분권은 국가 경영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정부도 강조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 화두는 한 번도 버려진 적이 없다. 형식적으로라도 유지했다. 즉, 정파 논리가 아니라 국가 운명과 미래의 중요한 화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문제는 최종적으로 '지방소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전망이다. 그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계속 현재 시스템으로 운영해 지방은 피폐해지고, 소멸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라며 "세계적 경제 불황 등 외부요인도 있지만, 정치 행정이 중앙에 몰린 탓이기도 하다. 중앙집권을 분권해야 대한민국의 살길이 나오고, 지방소멸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성토했다.
지역 간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이 재정적으로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 사무총장 역시 법제도적 분권도 중요하지만, 지방분권을 위한 첫 번째로 '재정분권'을 꼽았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세입구조는 8대2이다. 지방의 재정분권을 위해서는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6대4까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도 재정분권 추진을 위한 단계별 방안을 마련했다. 물론 실질적 지방재정 확충과는 괴리감이 있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재정분권 추진방안은 지방소비세율을 현재 11%에서 2020년 21%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또, 소방안전교부세도 현재 20%를 2020년까지 45%로 하겠다는 계획"이라며 "대통령은 진정성을 가지고 국세와 지방세 세입 구조를 현재 8대2에서 7대3을 거쳐 6대4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전보다는 진일보한 거다. 그래도 미흡한 게 사실이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방분권,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앞서 짚어본 것처럼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언제 이 많은 숙제를 다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풀뿌리 민주주의, 주민주권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지방분권, 지방자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김 사무총장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공화제를 표방하는 나라라면 마땅히 자치를 확대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지방자치, 지방분권은 뿔뿌리 민주주의 주민주권을 강화하자는 게 본질이다"라며 "표면적으로 권한과, 돈을 더 달라는 것으로 비치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의 레토릭이 아니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재정이 지역으로 이양하자는 것이다. 본질은 뿔뿌리 민주주의, 주민주권 강화라고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이해를 당부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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