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靑, 철벽 방어에 한국당 공격 흐지부지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유의미한 진전없는 공방이 오간다. 근거가 불충분한 질의를 하고, 답변을 듣는 것보다 본인의 일방적 주장을 펼치는 데 집중한다.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말다툼을 한다. 일부 질의자도, 답변자도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2018년 마지막 날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풍경이다.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불러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시도했다. 오전부터 시작해 네 차례 정회하며 하루 종일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상반된 주장만 되풀이했다. 공격수로 나섰던 자유한국당은 전날 운영위 위원 9명을 교체하며 날카로운 질의를 예고했지만, 공격의 칼날은 무뎠다.
◆장면1=시작부터 예고된 '정쟁의 장'
시작부터 여야의 거센 공방이 오갔다.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은 운영위 위원 사보임,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출석 여부를 놓고 장시간 공방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임 실장과 12년 만에 국회에 출석한 민정수석이라는 꼬리표를 단 조 수석은 회의 시작 50여 분이 지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국회 운영위원은 각 당 원내대표단을 임명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한국당은 이날 국회 운영위를 대비해 나경원 원내대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를 제외한 7인을 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멤버(김도읍, 송언석, 이만희, 이양수, 최교일, 강효상, 전희경 의원)로 새롭게 꾸렸고, 비공개 대책 회의까지 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에 맞서 방어전을 준비한 민주당도 두 명의 선수를 교체했다. 강병원, 권미혁 의원이 운영위원직에서 사임하고 법률가 출신 박범계, 박주민 의원을 보임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회의 시작에 앞서 한국당 새 위원들을 겨냥해 "새로운 분들이 왔네, 운영위가 아닌데 왔다"고 견제구를 날린 것을 시작으로 양당은 위원 사보임의 적절성을 놓고 한참 논쟁을 벌였다.
또한, 조 수석의 아래에 있는 민정수석실 비서관 출석 여부도 논쟁의 대상이 됐다. 정양석 한국당 의원은 "운영위에 조 수석과 더불어 산하 4명의 비서관이 모두 출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기대했다"며 "(지금처럼) 민정수석만 혼자 나와서 진실 규명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오후에라도 출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운영위원장)는 "오늘 운영위 출석 대상자는 여야 간 합의를 통해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 합의가 된 부분인데 지금 와서 다른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반박했다. 결국 한국당이 요구한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은 끝내 운영위에 출석하지 않았다.
◆장면2=근거 빈약한 공격, 철벽 방어 못 뚫어
이날 운영위의 전체적 분위기는 의혹을 키우려는 한국당과 확산을 막으려는 민주당, 임 실장, 조 수석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근무하다 비리 혐의로 지난달 파견이 해제됐고, 최근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해임' 징계를 요구한 김태우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의 주장을 주공격수단으로 사용했다.
반면 방어하는 쪽은 "국정농단 사태를 경험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에선 모든 업무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며 "전 특감반원의 비위 행위가 발생해 국민에게 송구하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 전 특감반원이 과거 방식으로 첩보를 수집하면서 비리를 저지르다 적발되자 본인의 구명을 위해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비리 행위자자의 근거 없는 주장이 보수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이를 한국당이 받아서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확산시키고 있는 게 이 사안의 본질"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막으려는 적폐세력의 반격"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한국당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했다. 일례로 이만희 한국당 의원은 "(김 전 특감반원에 따르면) 정부 부처 산하 수많은 공공기관장이 임기를 남기고 사퇴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공기관장, 감사 등의 성향을 정리한 청와대 문건이 있는데, 강제 사퇴시킨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조 수석은 "비리행위자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관련 지시를 한 적도 없고, 보고를 받지도 않았다. 관련 사건은 검찰에 고발돼 있고, 검찰 수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환경부 산하기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다 도중 사퇴한 사람 중 한 명의 증언이 있다"며 음성파일을 공개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음성파일의 주인공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본부장은 "저는 환경부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피해자다. 환경 분야에서 20년 이상 종사한 전문가였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의원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괴롭힘, 인격모독,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정든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때 충격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본부장은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23번을 배정받은 인사이며, 3년의 임기를 모두 채운 뒤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장면3=논지 벗어난 이력 비판…제3자도 '발끈'
전희경 한국당 의원은 이날 운영위에서 다루기로 한 사안과 무관한 조 수석의 이력을 비꼬는 질의로 여당 의원들뿐 아니라 제3자인 정의당 의원의 거센 반발을 야기하기도 했다.
전 의원은 "조 수석은 이전에 청와대 인사 참사가 문제 될 때 오래 그 자리에 못 있을 것 같았는데, 민간인 사찰,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된 채로 이 자리에 왔다"며 조 수석이 인사 검증을 맡았던 청문회 낙마자,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인사들의 명단을 제시했다.
이에 홍 위원장이 "이 자리의 취지와 질의가 다르다.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의 지원사격 속 전 의원은 본인의 발언을 이어갔다.
홍 위원장의 이런 발언에 전 의원은 "위원장의 필사적이고 절박함이 느껴진다. 국민들은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부인하는 조 수석의 능력과 도덕성을 궁금해한다"며 "낙마자들은 참여연대, 민변 출신으로 조 수석과 인연이 있고, 그는 서울대 법대, 참여연대 출신, 사노맹 사건 연루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된 '전참시'(전대협, 참여연대로 구성된 시대착오적 좌파) 정권의 척수"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인사청문회 관련 저희 검증 시스템에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청문결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장관 7명 중 7대 비리 원천배제 기준에 포함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검증팀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검증 결과를 제출했고, 그에 기초해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 수석의 발언에 전 의원이 "거짓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위장전입을 했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조 수석의 발언은 거짓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만들어진 청와대의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7대 기준'은 ▲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적 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운전 ▲성 관련 범죄자에 대한 인사 배제를 적시하고 있다.
다만 위장전입의 경우 인사청문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부동산 투기 또는 자녀의 선호학교 배정 등을 위한 목적으로 2회 이상 위장전입을 한 경우라고 특정 조건을 명시하고 있어 강 장관의 경우(2000년 딸의 고교진학을 위해 위장전입)는 7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전 의원의 '전참시' 발언에 대해선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대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의원이 운영위에 출석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에 대해 개인적 판단을 얘기할 수는 있다"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방송을 보고 있고, 속기록에도 남는데 참여연대, 민변, 전대협 출신 부분을 극렬 좌파로 얘기하는 부분은 묵과할 수 없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고통받아온 이들에 대한 명예훼손이고 모독이다. 사과해야 한다"고 전 의원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전 의원은 "진실을 말했는데, 뭘 사과해야 하냐"며 윤 원내대표의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운영위 회의 내내 답답한 표정을 자주 지었던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은 "오늘 상임위를 보면서 현 국회의 얼굴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현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으로 보나, 12월 31일이라는 시기적 특성으로 보나 실망스럽다. 유감의 뜻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2018년의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가 열렸지만, 언론에 보도된 의혹제기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며 "일방적 모욕주기, 낙인찍기, 개인적 화풀이 등 국회 운영위가 이런 식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 회의를 몰상식하게 운영할 것이라면 운영위를 소집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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