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언제 이뤄질까. 온다면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는 올라갈까. 한라산, 제주도는 김 위원장의 외조부 고 고경택 씨의 고향이다.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다. 김 위원장의 외조부와 친모 고용희 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지난 2014년 고경택 씨의 묘비가 발견된 것이 전부다. 고경택 씨의 흔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더팩트>는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김 위원장의 '한라혈통'을 취재, '고경택의 묘비' '고용희의 사촌들의 흔적' '고용희의 출생지' '고용희의 모친'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 반응'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김정은 온다면 어떨 것 같아요?" 한라산에서 직접 물어보니
[더팩트ㅣ제주=이철영·박재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에 갔으니, 김정은 위원장이 한라산에 오면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외지 관광객)
"제주도에도 (6.25전쟁으로) 피해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오기도 그럴 것이고 (우리가)맞아주기도 그렇다."(제주도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제주도 한라산 방문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김 위원장의 답방 시 유력하게 거론되는 백록담 등정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듣기 위해 <더팩트> 취재진은 지난 11일부터 3일 동안 제주시와 한라산 등지를 돌며 외지 관광객과 주민들을 만났다. 13일에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인 한라산 1100고지에서 관광객들과 마주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졌던 예상과 달리 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다양했다. 오히려 복잡한 심경을 엿본 느낌에 가까웠다.
한라산 1100고지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산 아래와 달리 설산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무도 도로도 하얗게 내려앉은 눈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뤘다. 취재진이 1100고지에 도착하자 추운 날씨에도 이미 많은 관광객이 한라산의 설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눈이 쌓인 절경 때문인지 "이곳에 온다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다만, 외지인과 현지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경북에서 온 60대 부부는 취재진이 '김 위원장 방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환영한다. 빨리 통일이 오면 좋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에 갔으니 이번엔 김정은 위원장이 한라산에 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100고지에서 한라산 설경을 배경삼아 즐거워하는 중년의 여성들을 만났다. 김포에서 동창들과 제주도 관광을 온 이들은 취재진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취재진은 사진촬영 후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에 대해 물었다. 이모(58) 씨는 "(김 위원장이)오면 좋겠다"며 "이 곳에 오는 것만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방을 희망했다. 이어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오면 그 사람(김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일 것 같다. 많은 어려움도 있겠지만, 꼭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길을 걷던 노년의 부부에게 다가갔다. 서울에서 온 김모(67) 씨는 김 위원장과 제주도의 관계도 알고 있었다.
김 씨는 "김 위원장의 방문을 환영한다"며 "헬기를 타고 백록담을 방문한다고 하는데 좋게 생각한다. (제주에) 내려와서 자신의 친척 묘까지 가면 더 인간다운 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에 대해선 "처음에 잘 되간다고 믿고 있었는데 (핵 시설을) 감추고 있다고 하니 답답하다"며 "뉴스에서 50%로 비핵화된다면 제재를 푼다고 했는데, 양이 문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북한 사회는 쉽게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방문이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김 위원장이 서울·제주도를 방문한다면 경호·안전 등의 문제를 가장 큰 과제로 꼽는 사람도 많았다.
신변 안전을 걱정하는 쪽은 주로 제주 주민들이란 점도 이색적이었다. 고 씨 종문회 총본부 고창실 회장은 "우리 생각에는 신변 문제 때문에 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에 갔다가 습격당해 1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의 방문이 어렵다는 소식에도 여전히 답방과 관련한 소문은 무성한 상황이다. 제주동부경찰서 정보과의 학 경찰도 <더팩트>와 대화에서 "김 위원장의 연내 방문 가능성은 없다고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태극기 집회도 열려 이를 파악하고 있다. 정보과가 경호를 담당하지 않지만, 만약의 위협요소가 있을지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은 김 위원장의 외가 고 씨 종문회 총본부와 먼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도 취재 과정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 故 고경택 씨에 대해 취재하면서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의 친모 고용희의 먼 친척 고모(80) 씨는 "김정은을 만나면 (외조부 고경택의) 고향이면서 외가 땅이지만, 실망시키지 않는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해주고 싶다"며 "자기만 잘 살고 백성들 굶기지 말고 정말로 실망하지 않게끔 사람다운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말했다.
제주 고 씨 고창실 회장은 "김정은 할아버지(김일성)의 업보가 있다"며 "6.25를 일으킨 업보"라고 꼬집으며 "제주도에도 피해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오기도 그렇고 맞아주기도 그렇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제주가 평화의 섬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의미로만 본다면 김 위원장이 오는 게 좋다고 본다. 만약 어머니(고용희)가 살아있으면 당연히 오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은 취재 마지막 날 제주 서귀포시를 지역구로 하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역 사무소에서 만났다. 위 의원은 여당 소속 의원인 만큼 "지역구 입장에서 꼭 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에 대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남쪽 대통령이 가셨고, 북쪽의 정상인 국무위원장이 남쪽의 영산 한라산에 온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 내부에도 의미가 있지만, 세계에도 한반도 평화의 메세지를 보낼 수 있다"면서 "올해는 못 오겠지만 김 위원장 서울 답방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북미 협상과정에서 중요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협상카드로 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에 대한 의견들은 다양했다. 이런 국내 여론을 인식하고 있는지 김 위원장은 섣불리 공식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환영하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혹시모를 신변의 위험 가능성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들도 나온다.
취재진은 한라산 1100고지를 내려오며 지난 9월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김 위원장 부부와 백두산 천지에 함께 오른 장면을 떠올렸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장면이다. 특히 김 여사가 즉석에서 한라산 생수와 백두산 천지의 물을 합수하는 장면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김 위원장이 백두산 천지 물을 한라산 백록담 물과 합수하는 장면은 과연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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