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국회, '감추고 속이고'…여전한 깜깜이 예산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세금 도둑'을 잡겠다며 국정감사에 나선 국회가 국민을 기망(欺罔)하고 혈세를 '쌈짓돈'처럼 챙겼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혈세를 '쌈짓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의원들은 부랴부랴 반납하고 나섰다. 이름을 올린 의원만 12명에 달한다. 정부를 감사하는 국정감사 기간에 터지면서 자격 논란과 함께 국민의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9일 세금도둑잡아라·좋은예산센터·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뉴스타파는 입법및정책개발비를 빼돌리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 명단을 공개했다.
해당 단체가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20대 국회 초반 입법및정책개발비 지출증빙서류를 검토한 결과, 국회의원이 개별적으로 발주할 수 있는 500만 원 이하의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이 1년간 총 12억 원(151명, 338건) 이상 지출됐다. 이 중에는 전문성을 검증할 수 없는 이들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한 사례는 물론 범죄혐의가 있어서 수사가 필요한 경우도 발견됐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은재(한국당), 백재현(민주당), 황주홍(민주평화당) 의원 등은 연구용역비를 제3자에게 지급했다가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석진(한국당), 서청원(무소속), 김영진(민주당), 김학용(한국당), 김광수(민주평화당), 심상정(정의당), 인재근(민주당) 의원 등은 전·현직, 보좌진, 지인 등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특수관계자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정종섭(한국당) 의원은 연구용역보고서를 표절한 의혹을 받는다.
해당 단체는 앞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4일 이은재·백재현·황주홍·강석진 의원 등 4명을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하고 서청원 의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백재현·이은재·황주홍 논란 커지자 사과…"돈 반납하면 범죄 사라지나"
해당 문제에 대해 함구하던 의원들은 논란이 커지자 한발 늦은 대처에 나섰다. 백재현 의원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물의를 일으켜 드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최근 언론에서 지적된 표절 및 명의도용과 관련된 정책개발비 2500만 원과 입법보조원이 대리 수령하여 전달한 금액 500만 원을 반납 조치했다"고 밝혔다.
백 의원 측 관계자는 이날 <더팩트>와 통화에서 "오늘 오전 모든 금액을 '선 반납'했다"며, "논란을 빚은 관계자에게 직접 환수를 하기에는 사안이 시급해 먼저 정책개발비를 반납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재 의원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그는 '보좌진의 친구에게 연구용역 3건(1220만 원)을 발주해 가로챈 혐의'에 대해 "지적된 정책개발비를 이미 국회사무처에 반납했다"며 "국민들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황주홍 의원은 지난 18일 "저희 의원실에서 발생한 일이니 제가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말씀 외에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도 "부적절한 사용 의혹이 제기된 것들은 불과 한 달 전 세상을 뜬 옛 보좌관이 한 일"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황 의원은 "입법적 미비 사항들을 바로 잡고, 정책 개발비 사용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제출하도록 했다"며 제도 개선을 약속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 고발을 예고한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하승수 공동대표는 이에 대해 "돈만 반납한다고 범죄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일반 국민이 사기·횡령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데, 국회의원의 경우라면 당연히 수사는 불가피하다"며 "해명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검찰의 몫"이라 강조했다.
법률전문가 역시 "해당 비용을 다시 반납하면 정상참작 사유가 될 수 있지만, 완전히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익명의 한 변호사는 "타인을 속여(기망)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며 "자신은 물론 제3자가 자산을 취득하게 하는 것도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불투명' 고수하는 국회…"부정행위 비호·은폐"
국회사무처는 그동안 "의원실의 입법 및 정책개발활동을 제약하고 공정한 업무 수행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소규모정책용역 보고서 원문 공개 요청을 거부해왔다.
범죄 혐의를 받는 의원들이 국감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국회 사무처는 "의원들의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국회사무처는 명확히 규정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국민 정서나 윤리적인 부분만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추가적인 범죄혐의나 표절 여부 등을 밝히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연구용역보고서 원문을 즉시 공개할 것을 요구, 행정심판·행정소송 등의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시민단체 측은 "이미 많은 부정행위들이 드러난 상황에서 국회사무처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이는 부정행위를 비호하고 은폐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국회는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예비금 등 지금도 비공개하고 있는 모든 예산항목들에 대해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하 대표는 이에 대해 "이제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뿐"이라며 "국회라는 곳이 워낙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국회가 공개를 거부하는 정책연구용역보고서 등의 자료는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미 대체로 공개하고 있는 영역이다. 고발은 수사의 근거를 제공하는 일이다. 검찰이 이번 기회에 국회를 엄정히 수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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