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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김 비서'는 지금①] 9급 비서 A 씨, 오늘도 커피를 탄다

  • 정치 | 2018-08-20 00:00

 성평등이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2018년 여름, 대한민국 입법을 책임지는 국회에선 여전히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 풍경. /더팩트DB
성평등이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2018년 여름, 대한민국 입법을 책임지는 국회에선 여전히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 풍경. /더팩트DB

최근 '김 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성황리에 종영했다. 드라마 속 여성 비서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상사로부터, 동료직원들로부터 존중받는 모습으로 그려져 호평을 받았다. 현실은 어떨까. 민의의 전당, 국회에도 많은 여성 '김 비서'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실과 드라마의 극명한 차이 때문이다. <더팩트>는 약 한 달간 전·현직 30여 명의 여성 보좌진 및 전문가들을 만나 국회 여성 보좌진들이 느끼는 남성 보좌진과의 ▲업무차별 ▲진급에서의 차별 ▲성추행 실태 ▲대안 등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 내 유리천장 민낯을 들여다봤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의원실과 실명은 배제했다. <편집자 주>

성차별·성희롱에 괴로운 女 보좌진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A 씨, 커피 좀 내다 줘요."

모 의원실 9급 정책 비서로 일하는 30대 초반 여성 A 씨는 질의서(피감기관에 보내는 질문지)를 작성하다 말고 커피를 탄다. 오전에만 벌써 8잔은 탄 것 같다. 국회의원 사무실이란 특성상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민원인, 기자 등 여러 종류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물론 의원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몇 잔의 커피를 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것 또한 의원 보좌 임무 중 하나라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커피를 타 달라고 말하고 있는 이는 B 보좌관이고 손님은 그를 찾아온 사람이다. 스스로 타면 될 텐데 왜 꼭 일하고 있는 사람을 콕 찍어 커피를 타게 할까. 사실 그는 자신이 마실 커피를 타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얼마 전엔 B 보좌관으로부터 "역시 커피는 여비서가 타줘야 맛있어"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민원인들 역시 "커피 좀 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런 민원인들은 대개 남자 비서가 아닌 여성 비서를 찾는다. "아가씨"라는 호칭과 함께. 이렇다 보니 A 씨는 자연스럽게 '내 직무 중 하나가 커피를 타는 것인지, 내가 여자라서 커피를 타는 것인지' 헷갈린다.

다수 여성 보좌진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실 내의 성차별을 볼 때 '민의의 전당'이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국회 전경. /이원석 기자
다수 여성 보좌진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실 내의 성차별을 볼 때 '민의의 전당'이라는 말이 무색하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국회 전경. /이원석 기자

오후가 되자 C비서관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옆 의원실 여비서의 이름을 거론하며 얼굴 평가를 시작했다. "그 비서 예쁘긴 예쁜데, 눈은 (수술)한 거지? 좀 부자연스럽다 했더니... 옷도 좀 짧게 입고 다니는 것 같아." 당황스러운 상황에 A 씨는 옆에 있던 다른 여성 비서들과 서로 눈을 맞춘다. 이런 일이 드문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이런 류의 이야기를 꺼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B 보좌관이 다가와 다른 의원실과 술자리가 잡혔다고 통보한다. 약속이 있다고 했지만 "이런 것도 다 일 중의 하나"라며 압박을 한다. A 씨는 하는 수 없이 약속을 취소했다. 무시하긴 쉽지 않다. 괜히 평판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의원실로 옮길 때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승진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국회 보좌진의 세계는 좁다.

술자리에 도착했더니 다른 의원실에선 남자 직원들만 나와 있다. A 씨만 유일한 여자다. A 씨에게만 질문이 쏟아지고 A 씨더러 분위기를 띄우라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2차로 노래방을 갔더니 이번엔 A 씨에게 자꾸 노래를 시킨다. 하는 수 없이 마이크를 잡는다.

모든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A 씨는 괴로움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만둬야 하나?' 매일 밤 드는 생각이다. '잘하고 싶었는데...' 고통스러운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한 채 A 씨의 밤은 깊어간다.

'별정직 공무원' 국회의원 보좌진 봉급. /법제처 제공
'별정직 공무원' 국회의원 보좌진 봉급. /법제처 제공

◆"국회에서 일하는 여자라 멋지다고요?"

국회의원 보좌직에 대해선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국회의원수당법)이 정하고 있다. 국회의원수당법 제9조는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고 명시한다. 국회의원 한 명 당 총 9명의 보좌직원을 둔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9급 비서 1명씩 4명, 인턴 1명으로 구성된다. '별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국회 보좌진은 일반직 공무원처럼 시험이 따로 있진 않다. 보좌진 인사 권한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에게 있다. 그래서 가끔은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고용해 말썽을 빚기도 한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 중 하나다. 10년 이상 근무하면 연금도 받을 수 있고 봉급 자체도 적지 않다. 보좌진의 봉급은 일반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제공한다. 법제처에서 제공한 별정직 공무원 봉급표에 따르면 4급 보좌관은 월 472만1200원, 5급 비서관은 450만800원, 6급 비서는 298만1000원, 7급 비서는 252만500원, 8급 218만3600원, 9급 189만3700원을 각각 받는다.

정확히 규정된 것은 아니나 통상적으로 급수마다 다른 직무가 주어진다. 의원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보좌관은 총괄, 지역 파견 직무를 맡고 비서관들은 정책 혹은 수행 직무를 맡는다. 6~9급 비서들은 정책 혹은 행정의 직무가 부여된다. 국회의원의 존재 목적이 '입법'인 만큼 정책 직무를 맡는 보좌진이 가장 많다.

이들은 국회 의원회관에 위치한 각 의원의 사무실 내에서 근무한다. 국회 보좌진들은 보통 사람들이 TV에서나 볼 수 있는 국회의원을 매일 보고 그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다. 국회의원이 마치 회사 '부장님'처럼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상사가 된다. 때로는 밥도 함께 먹는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사람으로 입법부터 지역구 현안 등 의원이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돕는다. 그러나 같은 업무를 하지만, 여성 보좌진들은 진급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DB
보좌진은 국회의원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사람으로 입법부터 지역구 현안 등 의원이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돕는다. 그러나 같은 업무를 하지만, 여성 보좌진들은 진급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DB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보좌진으로 일하는 이들, 특히 여성들 다수에게는 국회가 결코 좋은 직장만은 아닌 듯하다. <더팩트>가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전·현직의 30여 여성 보좌진들은 국회에서 일하며 받았던 여러 고통들에 대해 털어놨다. 성차별, 성희롱 등 다양한 사례가 있었고 직접 겪진 않았더라도 모든 여성 보좌진이 그러한 사례들을 들어봤다고 했다.

우선 국회 내 보좌진들의 남녀성비만 봐도 어느정도 차별을 느낄 수 있다. 올해 7월 기준으로 보좌진 중 여성은 전체 2337명 중 699명(29.9%)에 불과하다. 세부적으로 보면 비율은 더 기형적이다. 9급, 8급 비서는 여성 비율이 더 높다. 9급 비서의 경우 여성이 전체 295명 중 189명(64.1%)이고 8급 비서의 경우엔 전체 289명 중 168명(58.1%)이다. 이 비율은 7급부터 역전된다. 급수가 올라갈수록 여성 보좌진의 수는 급격히 줄더니 4급 보좌관의 경우 여성은 총 581명 중 42명(7.2%)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각 개별 의원실의 성비는 제각각이다. 어떤 의원실은 여성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이 단 한 명밖에 없는 곳도 있다.

특히 성차별 등을 겪는 대상은 주로 6~9급의 여성 하급 비서들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받기도 하고,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많다. 직무와 상관없는 잡일, 차 대접, 정리 등을 도맡는다. 승진에 있어 여자란 이유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고 다수 여성 보좌진들은 전했다.

성희롱·성추행 사례도 많았다. 술자리 '분위기 메이커'로 대동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은근슬쩍 신체접촉이 있을 때도 있다. 눈앞에서 외모 평가를 듣는 경우도 흔하다. 내부에서뿐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성차별 및 성희롱도 있다. 몇몇 민원인들은 꼭 여성 비서들을 지목해 얕잡아 보듯 무시하고 심할 경우 욕설을 한다. 또 "예쁘다", "몇 살이냐"라며 성희롱적 발언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익명으로 국회 직원 및 관계자들이 글을 쓰는 '여의도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국회 내 성차별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익명으로 국회 직원 및 관계자들이 글을 쓰는 '여의도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국회 내 성차별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여성 보좌진도 존중받는 국회 되길"

국회 직원들이 익명으로 글을 남기는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도 여성 비서들이 겪는 성차별 사례 등이 제보된다. 다수 글들에 나온 내용들이 <더팩트>가 만난 여성 보좌진의 호소와 일치했다. 한 제보자는 "왜 손님에게 차를 내고 전화를 받는 건 '여'비서의 주된 일일까요? 힘들게 직급을 달아도 새로운 막내 '남' 비서가 들어와도 차를 내고 전화를 받는 건 '여'비서의 주된 업무죠"라고 꼬집었다.

자신을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보좌진이라고 밝힌 다른 제보자도 "국회 내 성차별을 개선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며 "특히 여성보좌진이라면 누구나 의원실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보거나 듣거나 직접 겪었을 것이다. 제 경험상 보좌진을 찾는 의원실 열이면 일곱, 여덟은 남성만을 대상으로 구인한다. 애초에 남성만 대상으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여성 보좌진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도 거뒀으면 좋겠다. '방에 여성이 많으면 피곤하다', '6급 이상 여성 보좌진은 행정 비서보다 나이가 많아야 기 싸움이 없다'는 말들은 모두 여성에 대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의원실 구성원 간 문제는 남녀 성별에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남성 보좌관은
한 남성 보좌관은 "여성들이 받는 성차별적 고통을 인지하고 커피도 스스로 타고, 언행에 주의하는 등 여러 노력을 쏟고 있다. 다른 의원실도 올바른 인식만 갖는다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변화를 주문했다. 국회 본청 전경. /더팩트DB

<더팩트> 취재에 응한 한 여성 보좌진은 "국회란 곳이 참 모순된다. 성차별, 성추행 등의 큰 이슈가 터지면 마치 가장 정의로운 듯이 관련 법안을 찍어내지만 정작 가장 그런 문제에 있어서 취약한 곳"이라며 "국정감사 등을 통해 누군가를 감시할 자격이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무법(無法)지대이자 부패한 곳"이라고 강하게 꼬집었다.

또 다른 보좌진도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도 누군가의 가족, 동생이고, 딸이고, 아내인데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라며 "사회적으로도 성차별을 없애자는 분위기 아닌가.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스스로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사회의 부조리들을 고쳐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모든 의원실이 같은 상황인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이어오던 성차별적 관습을 깨고 성 평등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의원실도 적지 않았다. 한 여성 8급 비서는 "저희 사무실은 오히려 여성들을 많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라며 "국회가 전체적으로 성차별이 심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인식하고 최대한 고치려 노력하는 곳도 많다"고 전했다. 한 남성 보좌관도 "저희 의원실에선 일찌감치 여성들이 받는 성차별적 고통을 인지하고 커피도 스스로 타고, 언행에 주의하는 등 여러 노력을 쏟고 있다"며 "다른 의원실도 올바른 인식만 갖는다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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