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지은 시 진술 신빙성 흔들리고 구체적 물증 뒷받침 부족 판단
[더팩트ㅣ서울서부지법=신진환 기자]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33) 씨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는 왜 안 전 지사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안 전 지사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김 씨를 상대로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다.
우선 재판부가 안 전 지사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이유 중 하나는 '증거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에 혐의와 관련해선 "피고인이 차기 대권 주자로 거명되는 유력 정치인이고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어 위력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개별 공소사실을 두고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우리 헌법과 법정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검사 측은 증거를 제시해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 사건은 확실한 물증 없이 대체로 김 씨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어 검사 측이 혐의의 구체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한 셈이다.
김 씨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점도 무죄 선고에 작용했다. 재판부는 범행 전후의 언행에 다소 모순된 비합리성이 있더라도 김 씨의 심리적 수치심 등을 고려했음에도 김 씨가 성폭력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등 사정을 볼 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하는 게 2차 피해의 충격 때문인지 신중히 고민했다"며 "그루밍 상태에 있었던 건 아닌지 혐오 사건에 직면해 학습된 무기력 심리상태가 된 것은 아닌지 봤는데 피해자가 이런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판단 배경에는 김 씨가 사건 당일 안 전 지사와 와인바를 가거나 해외 출장에서 귀국한 뒤 안 전 지사가 갔던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고, 피해자로서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하거나 최소한 회피·저항하지 않은 점, 텔래그램 대화 일부 내용이 삭제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즉, 김 씨의 일련의 행동을 비춰볼 때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위력'이 있었다는 데 합리적 의심이 있다는 것이다.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도 무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관측된다. 안 전 지사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아닌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며 성접촉 여부를 부인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폭행과 협박을 사용한 성폭력 범죄와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거절했다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에서는 성폭력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형사법 대원칙에 따른 죄형법정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 측이 항소 의사를 밝히면서 양 측의 법정 다툼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관련 의혹은 김 씨가 지난 3월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김 씨는 그 이튿날 안 전 지사를 검찰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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