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관리사·국회경비대·청소노동자들의 여름 나기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원래 이 시기엔 사람이 없어."
2일, 낮 최고기온 37.9도를 기록한 국회는 유난히 한산했습니다. 7월 임시국회가 끝난 '휴지기'인지라 당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들은 휴식에 들어갔고, 국회 내 직원들도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휴가철을 맞았죠. 모기가 살지 못할 정도의 폭염이라니, 사람에게도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묵묵히 국회를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턴기자가 이날 하루 국회 곳곳에서 만난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울 때도 추울 때도, 남들이 휴가를 가든 말든, 언제나 국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분들입니다.
오전 8시께 출근길,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에서부터 본청까지 걷는 10여 분 사이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작열하는 태양과 바람 한 줄기 불지 않는 날씨에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야속할 정도였습니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 후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는 상상을 하던 인턴기자의 눈에 저 멀리서 맑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습니다.
시원함에 이끌려 다가가니 스프링클러가 뱅글뱅글 돌아가며 잔디와 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편리한 전자동 시스템인 것 같지만, 사실 스프링클러 뒤에는 언제나 물의 방향과 범위를 관찰하고 조정하는 조경관리사가 있습니다. 그들의 섬세한 관리가 있어야만 식물들이 파릇파릇함을 유지할 수 있죠.
작업 중인 조경관리사 한 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자외선이 닿지 않도록 긴 팔 긴바지에 큰 챙모자 차림을 하고서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폭염 때문에 비도 안 오고. 스프링클러를 자꾸 옮겨줘야 해 물이 골고루 들어가게."
그는 "휴가철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어 오히려 조경관리가 수월하다"고 말했습니다. '완전 자동 시스템이 아니라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에이, 이건 사람이 해야지. 이걸 방향 조절을 다 해가지고. 봐봐. 여기가 잔디가 이렇게 탔는데, 그러면 여기 물을 먹이고, 또 옮겨서 먹이고. 저기 금강송하고, 여기 야생화하고 다 잘 키워야지."
높은 기온과 습도에 짜증스러울 만도 한데,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여긴 야생화가 자라니까 중요하고, 저쪽이 또 중요한 자리야. 왜냐하면 의원님들이 항상 저리로 다니거든."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날씨였지만 그의 농담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국회 각 출입문에는 근사한 제복을 입은 의무경찰이 경비를 섭니다. 언제나 도로 정중앙에 서서 출입 차량을 살피죠.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은 뒤 방문 목적이 확인되면 경례로 손님을 맞이하는데요, 이날도 역시 의경들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면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른 분들에겐 무서워 보일 수도 있으니까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는 거예요."
부드러운 말투에 깜짝 놀라고 친절한 눈빛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평소 국회에 출입할 때 의경들을 보면 괜히 긴장하곤 했는데,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영락없이 착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자꾸 뭔가를 캐묻는 제가 귀찮을 법도 한데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들이 속한 105중대의 이름은 '국회 경비대'라고 합니다. 오로지 국회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입니다. 하나의 문에서 3명이 번갈아 가며 보초를 섭니다. 두 명은 밖에서, 나머지 한 명은 안내소에서 시민을 응대합니다. 그렇게 2시간을 일하면 4시간 휴식하고 또 2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하루 최대 8시간까지 근무합니다.
밖을 담당하는 의경의 근무 장소는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 설치된 작은 투명 구역. 그 안에 달린 낡은 선풍기가 유일한 냉방시설이지만 바깥보다 더 뜨거운 바람을 내뿜습니다. 최 수경은 "요즘 같이 더울 때는 저 안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밖에 서 있는 게 낫다"며 "원래는 20분씩 교대했는데 지금은 10분씩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기 국회 바깥을 지키는 (다른 중대 소속) 의경은 셔츠에서 티로 복장이 좀 편해졌다. 그런데 사실 뭘 입어도 더운 날씨라 별로 부럽진 않다"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시원한 물도 마시기 어렵고, 뜨거운 선풍기 바람은 안 쐬느니만 못했지만, 불평이나 불만은 없었습니다. 물이야 멀리서 개인 물병에 떠오면 될 일이고 생활관에서는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겁니다. 의젓한 분대장, 최 수경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셋입니다.
이윽고 최 수경이 안내소 밖으로 나가고 박 상경이 그와 교대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의경에 생소한 제가 박 상경에게 "계급이 높아지면 좀 덜 더운 곳에서 일하는 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모든 계급이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박 상경은 선풍기 가까이 다가가 땀에 젖은 옷을 열심히 말렸습니다. 더는 일을 방해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번엔 막 일과를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가는 청소노동자 박 씨를 붙잡았습니다. 박 씨에게 왜 휴가를 떠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박 씨는 "휴가를 가는 대신 그만큼 수당을 받으려고 한다. 집에서 쉬어봤자 뭐 하겠느냐"면서도 "미화원들이 매일 국회를 깨끗이 관리하기 때문에 직원들도 안심하고 휴가를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옛날엔 짐을 많이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든가 하면 좀 싫은 눈치를 준다던 뉴스가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우리의 일도 국회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에 '편하게 이용하시라'는 쪽지가 붙어있기도 했다니까요."
박 씨는 "정규직 전환 이후 우리도 국회의 한 식구가 됐다"며 뿌듯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국회 한 식구'로서 모두가 자리를 비운다 해도 이곳의 위생과 청결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회 내 정원을 가꾸고, 사람들을 보호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모두가 기꺼이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직업도 나이도 업무도 달랐지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품고 소임을 다하는 모습은 같았습니다.
국민이 이토록 국회를 지키며 의원님들의 휴식을 도왔으니, 휴가에서 돌아온 의원님들 역시 민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주시겠지요? 의원님들의 마음이 국회를 아끼는 이들과 다르지 않기를, 국민을 위해 묵직한 책임감을 가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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