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큰 별이 떨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1956년 8월 31일~2018년 7월 23일)이 향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루킹 의혹'에 스러졌지만, 노 의원은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의 아이콘'으로 한국 진보정치 지형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을 동료 정치인들과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세대와 진영을 넘어 '기억'하고 있다. <더팩트>는 노 의원과 인연이 있었던 일부 정치인들과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편집자 주>
'정치적 동지'로서 힘 실어…서로 높게 평가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82년생 김지영을), (조난자들을) 안아주십시오."
들불 같은 삶을 살다 떠나간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살아생전 문재인(65) 대통령에게 '두 권'의 책을 선물하며 남긴 메시지다. 당적은 달랐지만 문 대통령과 노 의원은 함께 시대의 아픔을 고민했고, 투쟁했던 한 시절의 '정치적 동지'였다.
문 대통령은 노 의원이 세상을 뒤로한 날인 2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비통한 심정"이라고 애도했다. "당을 함께 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대에 정치하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더 진보적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며 "한국 진보정치를 이끌면서 우리 정치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인 면에서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따로 또 같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걸었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노 의원은 노동운동을 위해 전기용접기능사로서 공장에 위장 취업한 용접공이었다. 진보에 가치를 뒀지만 몸담은 당적은 달랐다. 노동에 방점을 둔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통합진보당·정의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런 문 대통령과 노 의원은 동지로서 정치 행보에 힘을 싣기도 했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당시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 출마한 노 의원(야권 단일후보)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이던 문 대통령이 지원 유세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노 후보는 우리의 후보다. 새누리당,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야권 지지자들의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노 의원의 선거대책위원회 고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대 총선에서도 문 대통령은 여당의 텃밭인 경남 창원성산에 출마한 노 의원(범진보 단일 후보)을 지원사격했다. 2016년 4·13 총선 당시 문 대통령은 지원 유세를 하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위해 노 후보와 같은 대중노선을 걷는 진보정치인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노 의원은 "소중하게 만들어 낸 일(단일화)이다. 이 힘을 헛되이 쓰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1년 뒤, 두 사람은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로서 얼굴을 마주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회동을 가졌다. 노 의원은 "오늘 맛있는 음식을 주신다기에 제가 공짜로 먹을 수가 없어가지고 조금 이따가 전달이 되겠지만 책을 두 권 갖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작가 조남주)'을, 김정숙 여사에게 '밤이 선생이다(작가 황현산)'란 책을 선물했다. 책 첫 장에는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 2016년 10월 출간된 이 책은 아들 먼저, 남학생 먼저, 남편 먼저 등 우선권을 남성이 가진 사회를 살아온 김지영 씨의 '평범한 인생'을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의식을 대중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입소문을 타고 2017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오찬 후 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청와대 오찬 매우 유익했습니다. 국회서도 해보지 못한 솔직한 대화를 깊이있게 나누었습니다"라고 올렸다. 그러면서 "오늘 청와대 오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1.저는 제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2.저는 앞선 두 정부만이 아니라 그 앞의 두 정부까지도 반면교사로 삼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노 의원은 문 대통령에게 한 권의 책을 더 선물했다. 지난 5월 10일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취임 1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에게 '조난자들(작가 주승현)'을, 김 여사에게 '아버지를 찾아서(작가 김창희)'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책 '조난자들'은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인 탈북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노 의원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지난 1년은 이전 10년의 퇴행을 넘어서는 소중한 변화가 시작된 시간이었다. 취임 1주년을 축하하는 뜻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께 책을 선물했다"고 책 사진과 글을 올렸다. 책 첫 장에는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평화와 번영의 길목에서 '조난자들'을 안아 주십시오"라고 썼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다'던 노 의원은 길 위에 멈춰 섰다. 민주당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던 중 23일 오전 동생의 자택에서 투신해 숨을 거뒀다. 그는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청탁 내용은 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노 의원은 떠났지만 동료 정치인들과 많은 사람들은 '진보의 큰 별이 졌다"며 그의 삶을 기억한다. 빈소를 찾은 문희상 국회의장은 "노회찬 의원은 우리 모두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은 국회에서 엄수된다. 영결식을 진행한 뒤, 경기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영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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