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정권에 차별을 둘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각·청각·발달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참정권 행사는 또 하나의 벽이다. 후보자가 누구인지, 공약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등 주권자인 이들에겐 극히 제한적인 정보뿐이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현실은 여전히 '소수자'로 차별받는다. 이에 <더팩트>는 장애인의 투표할 권리 보장을 위한 일환으로 '투게더 6·13-장애인 참정권'을 기획,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발달장애인지원비영리단체 '소소한 소통', '지방선거장애인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현직 국회의원' 등과 함께 장애인 참정권 실태와 대안을 취재했다. 모두 6차례에 걸쳐 ▲투표 체험 ▲선거 공보물 ▲각 당의 장애인 공약의 현실성 ▲인터뷰 ▲전문가 진단 등을 주제로 싣는다. <편집자 주>
지체장애 이종명 의원 인터뷰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장애인들과 관련해 이렇게 인터뷰하고 취재하러 온 것에 굉장히 감사하다."
지난달 30일,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60·비례대표)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두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이 의원은 선 채로 취재진과 악수를 나눴다. 겉으로 보기엔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힘들 정도로 그는 꼿꼿했다. 이 의원은 "(소속 상임위인) 국방위원회라든지 이런 점들에 대해선 많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장애인과 관련해선 이렇게 집중적으로 취재해준 적이 없었다"고 거듭 반가움을 나타냈다.
<더팩트>는 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장애인들의 참정권 개선을 위해 [투게더 6·13-장애인 참정권]을 기획했다. 이 의원 인터뷰는 장애인으로서의 의정활동 어려움과 장애인들의 제한된 정치참여, 참정권 등의 문제를 듣기 위함이었다. 이 의원은 한 시간이 넘게 그동안 의정활동에서 느낀 점들을 가감없이 이야기했다.
육군 대령 출신인 이 의원은 지난 2000년 서부전선 수색대대장(당시 중령)으로서 비무장지대(DMZ) 수색 작전에 임하다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지체장애인이 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때는 이 의원이 수색대대장 임기를 거의 마쳤을 때였다. 그는 후임 대대장에게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직접 수색 작전에 나섰고, 작전 도중 군사분계선(MDL) 부근에서 후임 대대장이 먼저 지뢰를 밟았다. 근처에 있던 중대장도 지뢰 파편에 관통상을 입었다.
추가 사고를 우려해 부상 당한 후임 대대장을 자신이 직접 혼자서 데리고 나오겠단 계획으로 병사들을 뒤로 물리고 혼자 사고 현장으로 접근했다. 이 의원이 다가가 후임 대대장을 부축해 업고 나오려는 순간 이 의원의 발밑에서 무언가 또 터졌다. 지뢰였다.
"처음에는 아까 전에 지뢰가 터진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다리 끝에서 발끝까지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엎어진 채로 뒤를 보니 내 다리도 날아가고 없었다. '아, 나도 다쳤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병사들이 날 구하러 오려고 하더라. 그 순간에 다른 지뢰가 또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들어오지 마라. 내가 나가겠다'고 한 뒤 양손도 다 다쳐서 소총을 끌어안고 팔꿈치로 기어서 나갔다."
이후 병사들의 부축으로 DMZ에서 나온 이 의원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다. 5시간 30분의 큰 수술을 받고 병실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과 사람들의 시선은 '죽을상'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20년 가까이 능력을 인정받으며 꿈을 키워왔던 군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그러나 이 의원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한 얘기는 "제가 해야 될 또 다른 일이 있나 보다"였다고 한다.
이 의원은 긴 재활을 견디고 군에 복귀해 10년 이상 복무하며 후배 양성 등에 힘을 쏟았다. 대령으로 전역한 이 의원은 곧바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요청을 받아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하게 됐다. 이 의원은 당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지뢰 사고 이후) 군과 나라, 국민들이 많이 성원하고 격려해줬다. 이제는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갚아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고, 정치도 그 한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수술 직후 깨어나 가장 먼저 자신이 꺼낸 말대로 '해야 될 또 다른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군 전문가로서, 또 장애를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 "비례대표 10명 중 1명은 장애인을 넣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제가 직접 여기(국회)에 와서 보니까 장애인 대표가 좀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장애인이 등록되지 않은 수까지 합치면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체 인구의 8% 정도다. 그렇다는 건 10명 중의 1명은 장애인 대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장애인에 대해선 여야 할 것없이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의원은 냉정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사실 이 의원은 장애인 대표로 할당된 비례대표는 아니다. 19대 국회에선 김정록 전 의원(당시 새누리당)과 최동익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장애인 몫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일했지만, 20대 국회에선 장애인 대표로 비례를 받아 당선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이와 관련 이 의원은 장애인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 부족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만 봐도 경선할 때 여성 우대, 청년 우대라며 몇 퍼센트씩 가산점을 줬다. 만약 그들에게 10%의 가산점을 줬다면 장애인들에게도 5%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또, 비례대표에 대해서도 50%를 여성 몫으로 줬으면 인구 비례로 따졌을 때 장애인들에게도 8% 내지 10%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적어도 각 당에서 비례대표에게 순번을 줄 때 10번 안에 적어도 한 명씩은 장애인을 넣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랬다면 이번 국회에 적어도 3명은 있었을 것이다. 8%도 안 되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넣어줘야 타당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제가 와서 활동해보니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라"라며 "이렇게 장애인 당사자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의원은 과거 아파트 12층 자택에 혼자 있을 때 화재경보기가 울려 매우 당황했었던 경험을 언급했다. 아내가 외출 중일 때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이 의원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의족을 끼우는 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기에 휠체어를 탄 이 의원은 내려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당시 화재경보는 오작동으로 울린 것이었다. 다만 그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에 들어와 가장 먼저 장애인과 어린이, 노인 등 취약자들을 최우선 안전 취약계층으로 분류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이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을 만한 내용이었다.
◆ "장애인들, 정치 참여 의지 높아…하지만 '문턱' 여전히 높아"
이 의원은 6·13 지방선거가 다가온 것과 관련해 "실제로 장애인들의 (투표 및 정치에 대한) 참여도가 굉장히 높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권리를 찾겠다는 의식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과 달리 (장애인들이) 자신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냥 숨기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도 정치 활동뿐만 아니라 여러 생산적인 활동 등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장애인들의 정치·사회 참여에 대한 '턱'이 아직 높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들이 정치·사회 참여를 위해선 집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아직 여러 가지 부분에서 '턱'이 높다. 건물의 BF(Barrier Free·장애인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 인증 이런 것들이 요즘은 건축 기준이 강화돼서 하게 돼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장애인들의 이동이 굉장히 힘들고, 도로, 이동수단 등에 더 배려가 있어야 한다."
특히 이 의원은 장애인들의 참정권과 관련해서도 "투표소 기표소에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해야 한다. 대부분은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투표소를 배치하지만, 아직 어떤 곳은 승강기도 없고 지체장애인 등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하, 2,3,4층에 위치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의 장애인 유권자 인식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을까, 점자 홍보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의무가 아니어서 권장해도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우리 전반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의원은 "우리나라는 정부든, 행정기관이든, 입법기관이든 어디든 간에 장애인들에 관해 아직까지 관심이 굉장히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미국은 백악관에도 장애인위원회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 기관에 장애인위원회가 없다"며 "장애인들이 자기들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나와 거리에서 시위하고 이런 장면을 볼 때 굉장히 마음이 아픈데 그런 방식이 아니라 공식적 채널로 정상적으로 자기들 권리를 주장하고 얘기할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불편한 몸으로 나가서 시위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갖는데, 그런 것들이 아니라 장애인들도 그들과 똑같은 국민으로서 정당하게 국가에 요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국회의원 활동의 절반은 장애인들을 위해"
이 의원은 20대 국회 첫 상임위로 국방위원회를 선택했다가 장애계의 질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이 의원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새누리당이 이 의원에게 정계 입문을 요청할 때 장애인 비례대표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당에선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 의원의 스토리를 강조했다. 애매했다.
30년 이상의 군 생활과 DMZ 작전 중 다리를 잃은 군인으로서의 타이틀인가, 장애를 극복하고 군에 복귀해 10년 넘게 복무한 장애인으로서의 타이틀인가. 그러나 이 의원은 처음 상임위를 정할 때 '국방위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고 고민 끝에 국방위를 선택했다.
장애계에선 즉각 반발이 일었다. 장애계는 처음엔 장애인 대표로서 당선된 이가 없어 실망했다가 이 의원이 비례대표로 선출된 것을 알고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의원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욕하더라. 장애인이면 장애계를 대표해 보건복지위원회에 가서 활동을 해야지 국방위를 가냐는 것이었다. 조금 억울했다(웃음). 하지만 (안 좋은) 소문을 들은 뒤 각 장애인 단체 대표들을 직접 찾아갔다. 이래저래 해서 국방위를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 내 의원 활동의 절반은 국방 쪽에, 절반은 장애인들을 위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그분들과 계속 접촉하고, 면담하고, 간담회도 하니 이젠 장애계에서 저를 많이 반긴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난 장애인 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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