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끌려가는 여당?…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다"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진보, 보수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지금껏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성 인식의 문제가 터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이러한 일들을 바로잡아야 하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파문에 제윤경(원내대변인)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대답이다. 제 의원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파문에 "충격적"이라며 "우리 당의 대권 후보였기에 저희는 굉장한 분노와 죄스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제 의원은 당 원내대변인으로 여러 정치 현안들을 최전방에서 다룰 뿐만 아니라 당내 여러 분야의 일들을 도맡아 한다. 빡빡한 일정을 쪼개고 또 쪼개며 소화할 정도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제 의원의 휴대전화는 쉬지 않았다. 매우 급하게 돌아가는 정치 현안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사천 남해 하동 지역위원장', '정무위원회 위원', 이 또한 모두 제 의원이 '현재' 맡고 있는 직책들이다. 그는 '가계부채 전문가', '갑을 관계 전문가' 등의 별명도 갖고 있다. 하나같이 중책들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깊이가 필요한 분야들이다.
기자가 '아주 바쁘겠다'라고 묻자 제 의원은 "제가 유난히 일복이 많은 것 같다. 일복은 복이 아닌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이처럼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을 내려놓는(?) 솔직한 대답들을 여럿 내놓기도 했다. <더팩트>는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제 의원을 직접 만났다. 제 의원은 약 1시간 동안 인터뷰에서 최근 정치권으로 확대된 '미투(#Me too)'운동부터 민주당의 여러 상황 등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다음은 제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Q. 미투 운동의 여파가 거세다. 특히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 성폭행 의혹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어떠한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 다른 내용이어서 굉장한 분노와 참담함, 죄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당의 대권 후보였기에 더더군다나 그렇다. 복잡한 심경이다.
또, 이 문제는 진보 보수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지금껏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성 인식의 문제가 터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이렇게 터지기 시작하면 몸살을 앓으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미 이렇게 고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전과는 다른 하나의 변화이기도 하다.
변화의 과정은 구성원들에게 굉장히 아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우리에게 즐겁기만 한 사건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상처다. 이제 그런 일들을 바로잡아야 하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우리 당이 그렇다. 굉장히 조심스럽다. '미투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만큼 큰 변화의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어떤 형식으로 이 운동이 자라나고, 치유되고 극복되고, 다시 이전과는 다른 더 좋은 사회의 모습을 보일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생각된다.
Q. 미투 운동에 대한 정치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인들이 우선 해야 할 일은 공부와 대화를 통해 성인지를 높이고 본인 주변부터 둘러봐야 한다. 각계 미투 운동에 대해선 고발자들이 2차, 3차 피해를 겪지 않도록 주시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국회가 가진 권한을 이용해 피감기관들이 성범죄에 엄격하게 대응하도록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Q. 민주당 원내대변인직을 맡고 있다. 당 입장을 낼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크게 조심하는 것은 사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과 품격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야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있더라도 될 수 있으면 너무 정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Q. 주로 참고하거나 조언을 얻는 곳이 있는가.
원내대표실과 긴밀히 협의한다. 특히 저는 개별 의원이다 보니 모든 사안에 대해 정답을 알지 못한다. 외교, 안보 등의 분야는 전문성이 없으니 공부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물어물어 접근한다.
Q.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재인 정부는 단순한 정치 일정과는 다른 촛불 혁명이라는 과정을 통해 세워졌다. 그래서 당내 구성원들이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책임감과 막중함이 이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각 의원들은 개인의 정치 이력보다, 정치적 성과보다 전체적인 사회 변화, 국회의 변화, 정치의 변화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고, 그를 위한 토론도 내부에서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여러 각도 면에서 이전보다 많이 성숙해졌다고 본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촛불 혁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Q. 반면 여당이 청와대에 너무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공이 청와대로 집중돼서 그렇지 사실 무수한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정책적으로 당이 주도하고 있는 게 훨씬 많다. 특히 관료 집단에 대해 우리가 끊임없이 경계하고 차단하려고 하는데 우리끼리는 '우리가 집권 야당'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요즘 관료들이 이전보다 힘이 빠져서 상당히 자조 섞인 한탄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듣는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한다면 관료 집단을 장악하지 못할 것이다. 기분이 좀 상한다. 청와대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여당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고분고분한 존재들이 아니다. (웃음)
Q. 민주당에게는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는 사천 남해 하동 지역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유가 있나.
우선은 고향이다. 또한 여러 측면에서 저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이 지역엔 우리 당 현역 국회의원이 아예 없고 이전에도 없었다. 제가 지역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그 지역 전체에 주는 영향이 있다고 본다. 사천 남해 하동 뿐만 아니라 서부 경남 전체에 당이 이 지역에 조금 더 많은 의지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도 있다. 또한 제가 재선만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 게 맞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보탬이 되는 거만으로도 저한텐 좋은 성과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개인 성향이 경쟁을 싫어하는 면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다른 지역에 간다면 동료들과 경선을 치러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제가 내기를 걸고 포켓볼을 치거나 가족들이 모여서 고스톱을 치거나 하면 잘 못 한다. 제 이해관계에서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선 아주 공격적인데 이해관계와 결합해 있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제가 보기보다 굉장히 샤이한 편이다.(웃음) 이런 면도 있는데 (사천 남해 하동 지역위원장을 맡은 것에 대해) 생각보다 너무 후하게 과대평가를 해주는 것 아닌가 싶어서 송구스럽기도 하다.
Q. 굉장히 바쁜 것 같다.
제가 일복이 유난히 많다. 일복은 복이 아닌 것 같다(웃음).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일정에 없던 탄핵이 있었고 그게 끝나자마자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선을 돕게 됐다. 또 이후 원내대변인이란 직책을 줬고 임기를 마쳐가니 지역위원장을 맡게 됐다
Q. 국회의원 임기 절반을 향해서 가는 중이다. 임기 동안 잘했다고 자평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나.
정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채권시장의 상당히 불합리한 구조가 결국 정치를 통해 입법이나 제도개선으로 해결됨과 동시에 채권시장이 얼마나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국민들이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당에 들어오자마자 당내에서 제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지지를 많이 해줬고 국회 입성 후 300만 명의 45조 부실채권을 소각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정부가 갖고 있는 장기 연채 채권에 대해 이전과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전엔 주로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도 자산으로 여기는 측면이 있어서 그 회수율에 대한 지적이 집중됐지만 지금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채무자들의 인권, 사람의 문제를 좀 더 중점적으로 보는 시각이 형성됐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또 상가 임대차와 관련해서도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보단 편견이 많았다. 저는 임대인들과 임차인들 사이의 갈등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임대인의 일방적 폭력에 의거한 강제집행이어선 안 된다는 문제 제기를 많이 했다. 아직 개운하게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런데도 개별 사안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합의가 이뤄지는 사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법원행정처를 통해 강제집행의 폭력성 문제를 지적하고 양자 간의 대화를 통한 타협과 협상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해왔다. 이제 이게 어느 정도 수용이 돼서 정부 차원에서 집행관에 대한 관리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사실 실현된 것보다는 남은 과제가 더 많지만 그런데도 당장 변화의 조짐이 있단 것만으로 작게나마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평가하고 있고 그 외에도 소비자 관련 문제 제기, 갑을 관계에서 을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문제제기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Q. 반대로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
법안 통과에 대한 답답함이 좀 있다. 국회에 들어와 느낀 것은 입법, 법률 개정의 과정, 구조가 상당히 경직돼 있다는 것이었다.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누구나 다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고 있는 내용조차도 국회 시스템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발목 잡혀 있는 부분들이 많다고 본다. 충분한 토론의 기회가 없다. 반대 의견이 없는 법안들만 통과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한 토론을 거쳐 생각의 차이가 있다면 조정해서 그 내용을 법안에 담는 것이 입법 기관으로서의 위상에 맞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국회의원을 평가할 때 법안 심사의 실적에 주목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법안 발의, 통과 숫자만 주요 잣대로 삼다 보니, 기술적으로 통과가 가능한 간단한 법들만 발의하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저의 경우도 법안 발의는 꽤 했으나 통과 실적이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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