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김종인 전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대구=신진환 기자] 4일 아침, 대구로 향한다. 서울에서 대구광역시 서문시장까지의 거리는 290km. 참 멀기도 하다. 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마크맨'이다. 이른 아침 대구 서문시장으로 향하는 이유다. 선배와 함께 고속도로를 달렸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여전히 고속도로다. 참, 멀다.
휴대전화로 홍 후보의 일정을 다시 한번 봤다. 가는 곳이 어디인가 확인하니 시장이다. 오늘 볼 수 있는 장면을 예상해봤다. '어묵, 어묵'하는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문득 지난 4월 총선 당시 취재 현장이 떠올랐다. 딱 1년 전쯤이다. 당시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국회에 입성하기 위한 후보들이 활발하게 유세를 펼칠 시기였다. 정치부 기자로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유명 후보를 따라다니며 똑같이 일정을 소화했다. 전국의 격전지를 찾아다니면서.
운전석 선배와의 잡담도 멈추면 안 된다. 뭔가를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보조석에 앉은 탑승자의 역할이니까.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봤다. 후보들을 따라다니던 전통시장 장면이 떠오른다. 진영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후암시장을, 정종섭 새누리당 후보는 대구 동구 평화시장을 찾았을 때였다. 현재 이 두 사람은 모두 '금배지'를 달고 있다.
일단 선거는 당 차원에서 후보를 지원 사격하기 위해 나선다. 규모가 상당하다. 가뜩이나 시장 통로가 좁은 곳을 후보와 보좌진, 지원수행단, 취재진까지 우르르 몰려다니면 몸싸움 탓에 위험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빵' 터지는 장면 때문에 그나마 웃었다. 후보가 상인에게 "와~ 이거 맛있겠네"라며 다소 과장된 행동으로 어묵 꼬치를 덥석 쥐고 입속으로 들이밀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웃음이 나왔다. 왜냐면 취재 전부터 대충 예상했던 행동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에서 수십년 동안 정치인들의 빠지지 않는 쇼맨십이다. 좋게 말하면 서민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고 그냥 말하면 서민 체험기 정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후 2시, 드디어 대구에 도착했다. 제발 '어묵, 어묵'만은 하지말기를 기대했다. 너무 뻔하니까. 홍 후보가 서문시장에 들어섰다. 어묵은 아니어야 한다. 대구에 도착하기 전 사진기자 선배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특별한 '건 수'가 있기를 희망했다. 보통은 너무나 뻔하고, 획일적 일정이 소화되기 때문이다. 선배가 말했다.
"홍 후보, 서문시장에서 어묵을 먹지 않겠냐?"
"아마도요?"
문득 '아…. 역시나. 정치인→시장 방문→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은 보편적 생각이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런 예상은 기자의 경력과는 무관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이다.
아직도 내 머릿속엔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국밥을 먹던 광고가 남아 있다. 가끔 국밥을 먹으면 그 광고가 떠오르면서 웃음이 난다. 'MB는 그 국밥집을 다시 가봤을까? 국밥을 또 먹어보긴 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어쨌든, 홍 후보가 서문시장에 발을 디뎠다. 그를 좋아하는 시민들은 "홍준표"를 연호했다. 누군가는 "준표 오빠!"라며 소리질렀다. 홍 후보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이다. 웃음꽃이 핀 홍 후보는 시민의 손을 잡고 인사하면서 시장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홍 후보 특유의 말투와 걸음걸이로 시장을 유유히 웃음꽃을 피운채 걸으며 눈인사와 넉살 좋게 손을 내민다.
윤기가 좔좔 흐르고 맛깔나게 생긴 음식점이 보였다. 그 가운데 홍 후보는 한 분식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묵'인가?
여지없이 어묵을 집어 들었다. 큰 접시에 가득 담긴 떡볶이도 함께 먹었다. 이를 놓칠 새라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 어묵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290km를 달려 왔단 말인가.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데 정치는 변함이 없다. 시장에 방문해서 한다는 것이 아직도 '어묵! 어묵!'만 하고 있으니.
홍 후보는 서문시장에서 20~30분 동안 머물렀다.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눈을 마주치고 '어묵'했다. 서문시장 동문 초입으로 빠져나왔을 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 편의 영화를 마치 여러 번 본 것처럼 전혀 새롭지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본 느낌이랄까.
홍 후보는 말했다. "선거법 위반 소지 때문에 말을 다 할 수가 없다. 10일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올라오면 그 때는 이야기를 좀 더 할 수 있고 대구경북 사람들이 내 가슴에 불을 한 번 질러야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여기 출신이 아니다. 이회창 총재도 여기 출신이 아니다. 홍준표만이 유일하게 대구 출신이다. 대구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이 있을 때보다 홍준표가 있을 때가 훨씬 친근감이 갈 것이다."
차별화를 극대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굳이 직역하자면 '아직은 내가 도지사라 말을 잘 못해. 그런데 박근혜, 이명박, 이회창은 대구 출신이 아니야. 나는 대구 출신이니까 도와줘'라는 정도? 홍 후보가 시장에서 20~30분 머무르면서 보인 모습 가운데 '난 대구출신' '어묵' 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시 한번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선거 유세 혹은 정치인의 시장 방문이 필수코스라지만, 무미건조 그 자체가 아닌가.
물론 서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나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보여주기 식'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는 점이다. 수많은 당직자와 캠프 관계자에 둘러 싸여 무얼 제대로 살펴볼 수 있겠나. 홍 후보의 공식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290km를 달려 '어묵'을 맛깔나게 먹는 장면을 보고 끝났다. 허무했다.
홍 후보의 시장방문 취재를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성 정치인이 전통시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고단한 서민과 상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자리라기보다는 '서민 코스프레'라는 지적이 왜 나왔는지.
늦은 오후 다시 서울로 향한다. 5일 일정이 있었지만, 데스크는 철수를 지시했다. 한국당은 애초 부산과 울산을 아우르는 1박 2일 일정을 알렸다가 다시 당일 일정으로 바꿨고, 또다시 부산·울산 일정을 재공지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장소 섭외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데스크에 보고하고 출장 절차를 밟아야하는 나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 '정치인에게 어묵은 필수 코스인가? 개당 가격은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선배, 맞추셨네요"라고 말했다. 함께 나직이 웃었지만, 입맛은 쓸쓸하고 개운치가 않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뇌였다. '또, 어묵 먹겠지?' 늦은밤 서울에 도착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홍준표 손석희'가 떴다.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홍 후보가 보인 태도 때문이다. 홍 후보는 특유의 능글 능글한 자세로 손석희 아나운서를 쥐락펴락했다. 태극기를 앞세운 일부 보수 진영의 손석희 아나운서와 JTBC를 향한 불쾌한 감정이 떠오른다. 역시 홍 후보다. '어묵'을 먹던 모습은 왜 이렇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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