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국회=서민지 기자]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한마디에 1일 국회 정론관은 술렁였다. 반 전 총장의 갑작스런 '대선 불출마' 선언에 취재진이 몰리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반 전 총장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헌신하겠다. 국민 여러분 가정에 부디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마무리하며,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반 전 총장은 '갑자기 왜 결심이 섰느냐'고 수차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꾹 다문 채 차에 올라탔다.
앞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예방할 때까지만 해도 반 전 총장은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반 전 총장은 평소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심 대표가 '쓴소리'를 이어가자, 종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참모진들 또한 '반 전 총장의 기자회견 주제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인사를 하고 싶어하셨다"면서 인사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때문에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에 모두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심 대표는 반 전 총장을 만나자마자 "반 총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반 후보라고 불러야 하나. 여당 대선 후보가 정의당에 입당 노크를 할 것 같진 않고, 총장 퇴임 인사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심 대표는 이어 "귀국시 촛불이 자랑스럽다고 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어제(1일) 보도에선 'TV 보니까 촛불 변질됐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이 출연한) '정규재TV'를 보고 그런거냐"라면서 "대통령 꿈도 가지고 계시니까 이번 주말에 광장에 직접 나가서 살펴보라"고 직격타를 날렸다.
심 대표는 반 전 총장이 전날 '개헌협의체'를 정치지도자들에게 제안한 것과 관련해서도 "정치권에서 그동안 개헌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가 있었다. 대체로 '대선 전에는 어렵다. 개헌특위를 통해서 국민과 함께 공론화 하는 과정을 거치자'고 일단락 됐다. 우리 총장님이 제안한 것에 이런 것들이 반영되지 않아 제가 놀랐다"고 또한번 꼬집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주도하는 빅텐트를 구축하려는 반 전 총장에게 "빨리 당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정당에 들어가면 보고도 받고, 국회의 당을 통해 입장을 개진해서 토론도 하고. 이렇게 고생스럽게 다닐 이유가 없어 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심 대표의 발언에 "그게 아니다"라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역변한 촛불민심'에 대해서 "당초 시작했던 순수한 뜻에서 벗어나 다른 사안들이 게재된 면을 보고 변질된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으며, '개헌협의체'와 관련해서도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국민이 지금 바꿔야할 때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개헌은 의지 문제"라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이 심 대표 예방을 마친 뒤 불출마 선언을 한 데 대해 심 대표는 "저랑 만나고 헤어지자마자 불출마 회견을 해서 매우 당혹스럽다. 그러나 반 전 총장 개인에게도,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심 대표가 "꽃가마 대령하겠다는 사람 절대 믿지 마시라. 외람된 말씀이지만, 총장님을 위한 꽃방석은 마련돼 있지 않다. 총장님이 스스로 확신을 갖는 만큼 중심을 잡으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자, "요즘 절감하고 있다"면서 공감했다고 한다.
실제로 반 전 총장은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사무실인 마포 트라팰리스에서 참모진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정치인들의 눈에서 사람을 미워하는게 보이고 자꾸만 사람을 가르려고 하더라.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쪽이다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 말하자면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토로했다.
그는 갑작스런 발표에 놀란 참모진에게도 "여러분을 너무 허탈하게 만들고 실망시켜 드려 너무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오늘 새벽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발표문을 만들었다.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여러분과 미리 상의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면서 대권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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