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오방(五方)은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의 다섯 방위를 뜻한다. 전후좌우(前後左右)와 중심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방색(五方色)은 오행(五行)의 기운을 상징하는 다섯 색깔, 즉 청-백-적-흑-황을 가리킨다. 오방과 오행은 뿌리가 같다. 예컨대 좌(左) 청룡, 우(右) 백호, 전(前) 주작, 후(後) 현무가 그렇다.
남쪽을 바라보고 서서 팔을 좌우로 벌려보자. 왼손은 동쪽을 가리킨다. 동쪽은 '좌청룡'에서 알 수 있듯이 청색이다. 서쪽은 '우백호'에서 보듯 백색이다. 앞이 남쪽인데, 붉은 주작의 형상이다. 뒤는 북쪽으로 검은 현무이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중심은 대지, 즉 누런 흙이다.
이 오방색은 순수하고 섞이지 않은 정색(正色)이다. 무채색인 흑색과 백색, 여기에 삼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을 더한 오채(五彩)이다. 만물을 생성하는 양(陽)의 색깔로, 우주 삼라만상의 기운을 뜻한다.
이는 한민족의 우주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천지의 운행이 음양과 오행이 서로 어우러지며 이뤄진다는 관념이다. 지극한 도(道) 역시 한번은 음, 한번은 양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이다. 공자(孔子)도 말했다. 이러한 도(道)를 이어가는 것이 선(善)이며, 도(道)를 이룬 것이 성(性)이라고.
"한번은 음이고 한번은 양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일컬어 도라고 한다"는 관념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태극'이다. 우리의 태극기를 보자. 위쪽에는 붉은 양(陽)의 기운이 휘돌아 내려오고, 아래쪽에서선 파란 음(陰)의 기운이 솟구쳐 올라간다. 서로 꼬리를 물고 영원히 순환하는 형상이다.
태극기에는 괘(卦)도 있다.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사괘이다. '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과 달, '이'는 불과 해를 상징한다. 쉼 없이 운행하는 음양의 도(道)와 해와 달이 번갈아 뜨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을 뜻하는 것이다.
일월(日月)의 한자도 음과 양을 상징하는 기호가 들어있다. 일(一)과 이(二)이다. 괘(卦)는 효(爻)로 표현되는데, 효는 양(陽)을 의미하는 선분(ㅡ)과 음(陰)을 의미하는 끊어진 선(--)으로 나뉜다. 선분은 한자로 일(一)이고, 끊어진 선은 좌우가 아닌 상하로 배치하면 이(二)이다.
해를 나타내는 일(日)은 네모 안에 양의 기운을 담은 '한 일(一)'자가 들어있다. 달을 나타내는 월(月)은 초승달 모양 안에 음의 기운을 담은 ‘두 이(二)’자가 들어있는 배경이다. 1, 3, 5, 7, 9의 홀수가 양의 수이며 2, 4, 6, 8,의 짝수가 음의 수인 것도 이런 의식에서 비롯됐다.
양의 수가 겹친 1월1일과 3월3일(삼짓날), 5월5일(단오)과 7월7일(칠석)을 기념하는 이유이다. 중국에서는 9월9일을 중양절(重陽節)로 기념한다. 양의 최고봉인 9가 두개 겹쳐 있다는 뜻이다. 특히 중국어 발음으로 아홉 구(九)는 오랠 구(久)와 발음이 jiu로 똑같다. 성조도 3성으로 같다. 양의 극인 '9'와 영원히 간다는 장구(長久)가 겹쳐 있으니 중양절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1881~1882년에 만들어진 초창기 태극기는 태극의 문양이 세로 방향 반홍반흑(半紅半黑)이었다. 이것이 조정의 논의를 거쳐 반홍반청(半紅半靑)으로 변화한다. 오늘날의 태극기는 1948년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에 법령으로 정해졌다. 가로와 세로, 괘의 긴 변과 짧은 변의 길이가 3대2의 비율인 것은 이른바 '황금분할(1대1.618)'에 가장 가까운 정수 비율이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의 이름처럼이나 태극기에도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1895년 맺은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가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조선이 사실상 청국의 속국이었다는 뜻이다.
사실 조선이란 이름도 중국 명나라가 점지한 것이다. 고려를 무너뜨린 태조 이성계가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이란 국호 두 가지를 올렸고, 명나라 황제가 결정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것을 일본이 "이제 중국으로부터 독립했으니 고유의 국호를 만들 때가 됐다"고 종용해 고종이 한(韓)이란 이름으로 대한국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고는 1910년에 '자주독립국' 대한국을 병탄한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는 이 명칭에 민국(民國)을 붙여 오늘날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붙여 "(일본으로부터)독립국임과 자주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국기도 원래 중국의 북양대신 리훙장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처음엔 중국의 용기(龍旗)를 차용하려 했다. 그런데 중국 실무진이 '천자의 기'라며 반대해 용기(龍旗)와 색깔을 달리한 백저청운홍룡기(白底靑雲紅龍旗)가 검토됐다. 이마저도 논란을 빚다가 결국 용 그림이 빠진 현재의 태극기의 원형이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의 태극기는 '음양'과 '오행'을 담고 있다. 오방색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하얀 천 위에 검은 괘, 빨강과 파랑의 태극문양이 바로 그것이다. 헌데, 노란색이 안 보인다고? 국기의 깃봉이 바로 노란색이다.
오방색은 서낭당이나 금줄에서도 보인다. 금줄에는 하얀 종이, 검은 숯, 빨간 고추, 파란 청솔가지가 끼워져 있다. 바로 노란색 새끼줄에 말이다. 예로부터 신성시돼 왔으며, 우주 삼라만상의 운행 이치를 담아낸 색깔이다.
이런 오방색이 수난이다. 최순실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오방낭 행사를 열었다고 비난한다. 무속이자 미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태도이다.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오방'은 고운 최치원이 '풍류'를 일컬어 말한 우리 전래의 '도(道)'와 맥락이 닿아있는 우주관이다.
그 누군가 밉다고 죄 없는 '오방색'을 손가락질 말라. 오방색을 손가락질하는 이는 '태극기'를 손가락질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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