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조광조가 출사하기 전이다. 사림(士林) 선배들과 교우하다 남곤을 만난다. 그의 학식과 경륜에 반한 조광조는 어머니에게 토로한다. "세상은 넓고 인재 또한 많다더니 제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어머니 여흥 민 씨가 짐짓 묻는다. "남곤이란 청년, 너와 견주어 어느 정도냐?" 조광조가 답한다. "남곤이 저 하늘에 보름달이라면, 저는 개똥벌레 형광쯤이지요."
민 씨는 아들을 위해 조촐한 술상을 마련하고 남곤을 초청한다. 때는 봄날, 동백꽃잎 봉오리째 떨어져 뒹구는 너머로 두견화가 붉은 얼굴을 내민다. 물 오른 수양버들 가지가 살랑거리고, 짝 찾는 두견새의 지저귐은 한층 달떠 있다.
대청에서는 조광조와 남곤이 술잔을 권하거니 따르거니, 때론 천하를 논하고 때론 시조창을 주고받으며 흥겨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천문지리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는 남곤은 술에도, 시조창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어느덧 해거름 판, 술상을 물리고 초옥을 나선 남곤을 조광조가 배웅한다.
그런데 마침 동구 밖 채전(菜田)에 한 섹시한 여인이 찬거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 새하얀 무명수건을 둘러쓰고 치맛자락을 움켜 올렸는데, 치맛단과 버선목 사이로 희멀건 종아리가 드러나 보인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옆 걸음을 치는데, 호미 든 손조차 밀랍처럼 하얀 섬섬옥수다. 소매 들어 땀을 훔치자 발그레한 볼이 금빛 노을에 물든다.
조광조는 바야흐로 20대 청춘. 이런 섹시한 광경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흘깃거리며 걷다가 밭두렁 아래로 미끄러지기를 여러 차례. 그런데 남곤은 쥘부채를 꺼내 좍 펼치더니 얼굴에 붙인다. 그리고는 이 외면할 수 없는 광경을 가린 채 반듯이 걸어가는 것이다.
이를 먼발치에서 지켜 본 조광조 어머니가 침중한 빛으로 타이른다. "한창 청춘이 어찌 아름다운 여인네 모습에 한눈을 팔지 않을 수 있느냐. 만일 남곤이 목석이라면 피도 차갑고 성정이 모질 것이다. 혹여 수양이 깊은 척 자신을 속인 것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자신을 속이는 자가 어찌 친구인들 속이지 못하리요. 멀리 하거라."
그럼에도 조광조는 남곤을 좋아했다. 남곤도 조광조를 챙겼다. 이해를 다툴 일 없을 때에는 상대의 본심을 알기 힘들다. 항상 부드럽게 미소 짓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결국 조광조는 남곤 등의 '주초위왕(走肖爲王)' 모함에 걸려 사약을 받게 된다. 어머니 민 씨의 눈이 정확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고의 카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는 초점을 잘못 맞췄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탓하는 것은 아직 사람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일까.
친구가 적이 되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 한번 틀어진 관계는 되돌리기 어렵다. 발등을 찍은 도끼는 고물상에 팔아버린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그런데, 정치판은 다르다. 친구가 적이 됐다가 다시 친구가 된다. 발등을 찍은 도끼로 다시 장작을 팬다. 영원도 불변도 없다. 그저 '나'만이 중요할 뿐이다. 나에게 이로우면 동지요, 해로우면 적이다. 해롭다가도 문득 이로우면 다시 동지가 된다. 나의 뒤통수를 쳤더라도 웃으며 손을 잡는다. 왜 그럴까.
어차피 믿지 않는 것이다. "불신이야말로 외교의 출발선이다." 그렇다. 불신은 국제외교(International Relation)에서만 기초가 아니다. 정치(Politics)도 관계(Relation)설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인들도 역시 불신을 기초로 신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다 면종복배(面從腹背)로,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척하다가 소리장도(笑裏藏刀), 즉 비수 품은 미소를 흘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솥발 같은 정립(鼎立)형세요, 달리 보면 2인3각이다. 앞으로 구성될 국회의 정당 모습이 그렇다. 그런데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를 보는 것 같다. 선한 자, 악한 자, 추한 자가 서로 쌍권총을 들고 상대들을 겨누는 형국이다. 이런 때 '담합'은 쉽지 않다. 나도 위태롭지만, 잘 하면 단 한방에 국면을 장악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 어른거리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늘 그렇듯이 권선징악, 선한 자가 돈주머니를 챙긴다. 그러나 누가 선한 자인지 모를 정치판에서, 오히려 누가 상대적으로 덜 악한지 '최악'을 피해 '차악'의 자리를 다투는, 권력 부스러기에 눈이 먼 추한 자들의 ‘배신의 춤판’에서 결말을 예측하기란 쉽지가 않다.
원(院) 구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이지만, 앞으로 당권과 대권을 향한 비수 품은 악수가 난무하겠지만, 상당수는 결말조차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국민 관객은 영화관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모순적 부조리 상황이 아니겠나.
지난번의 막장 드라마는 국민 관객 힘으로 조기 종영됐지만, 사람이 변하랴. 타성에 젖은 감독과 작가와 출연자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또다시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고, 관객은 손가락질하고, 그래도 시청률(지지율)이 좋다며 막장으로 치닫는 상황이 재연될까 사뭇 걱정이다. 정부가, 국회가 시청료(세금)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면 제발 납세자 국민의 심기를 제대로 살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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