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나자 '꽃놀이'가 시작된 것인가요? '악수'를 둔 정치권 인사는 '칩거'를 하며 화초 가꾸기에 들어갔고, 다시 세를 모으려는 사람은 살랑살랑 향내를 피웠습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장군멍군 집안(당권)싸움도 시작됐습니다. <더팩트> 정치팀은 총선과 여의도 정가를 취재한 기자들의 4월 넷째 주 '방담'을 통해 한 주간 핫 뉴스와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의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국회를 출입하고 있는 이철영·임영무·오경희·신진환·서민지 기자가 참석했고, 명재곤 부국장과 박종권 편집위원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TF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가십 모음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리=오경희·서민지 기자] 총선 직후 '핫'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한구 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과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입니다. 한 사람(이한구)은 공천 칼자루를 쥐고 당의 중심에 섰다가 두문불출하고, 또 한 사람(손학규)은 정계 은퇴 후 칩거를 풀고 세 모으기에 나섰습니다. <더팩트>도 이 두 사람의 행방을 열심히 취재했죠? 그 뒷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 햄버거 먹던 기자, '앗, 이한구다!'…정작 그는 '꽃'만 바라보네
-이한구 전 새누리당 공관위원장이 칩거 중인데요. 마침 지난주 <더팩트> 취재진에게 모습을 보였죠.
-네. 제가 지난주에 이 전 위원장 자택에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진 기자와 같이 동태를 살피고 있었죠.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요. 배가 고파서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사진 기자가 "이한구다!"라고 해서 봤더니 나와 있더라고요.
-햄버거를 '아작아작'하고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 전 위원장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네. 정확히 오전 8시 12분 정도였어요. 순간 저는 취재진을 보는 줄 알았어요. 왜냐면 거기가 고급빌라촌이라 밖에다 주차하지도 않을 뿐더러, 주정차 금지 구간이거든요. '왜 차를 여기 대놨나' 싶어서 보는 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꽃을 보고 있더라고요(웃음). 꽃을 되게 좋아해요. 무표정이었지만 섬세하게 향기를 맡고 있었어요. 한숨도 쉬었다가,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천천히 걸어 다니기도 하다가, 꽃을 보며 한번 웃었다가. 생각이 무척 많아 보였어요.
-아주 멋있네요. 꽃을 보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품성 자체가 고운 건데…. 알려지기론 별칭이 '독불장군'인데 상반되는 모습이네요.
-그런가요(웃음). 그러고선 금방 들어가 버려서 놓친 줄 알았죠. 햄버거를 마저 다 먹으면서 기다렸는데, 30분도 채 안 돼서 이 전 위원장이 다시 나오더라고요. 사람이 보통 정원에서 일을 다 마치면 바로 나오지는 않는데, 나와서 꽃과 정원수를 또 살폈어요. 제가 다가갔을 때도 꽃을 보고 있었어요. "안녕하시냐"고 했더니 "아, 기자들과는 말 안 해"라면서 절 쳐다보지도 않고 꽃에 대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꽃과 대화를(웃음). 무대(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힘겨루기를 하는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인 동시에 꽃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더라고요.
-하하하, 나이를 먹으면 다 그래요.
-집이 되게 좋아 보이던데, 단독 주택이에요?
-빌라예요. 3층 구조였는데 세대수가 많지 않은 고급빌라였거든요. 그런데 정원이 공동 정원 같지는 않았어요. 일단 분당 구미동 동네 자체가 "우와 여긴 부촌이구나"이런 분위기가 물씬 나요. 근처에 임우재 삼성전기 상임고문도 산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꽃을 가꾼 지 20년이 됐다고 했으니까, 빌라에 단독으로 산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요. 정치 관련해서는 "나라가 건들건들하다"고 말하고, 정원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저는 아주 한참 전에 이 전 위원장이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이었을 때 두어 번 인터뷰하고 만나봤어요. 그 당시 이 분이 행정고시 출신이기 때문에 엘리트 의식이 되게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주변 사람들도 많이들 그랬지만, 자기애가 강한 스타일이거든요. 가까이 있었던 아는 사람도 그분을 '실리를 잘 챙긴다'고 하더라고요.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스타일인가 보네요. 공천 파동과 총선 이후 이 전 위원장과 대면 접촉은 <더팩트>가 처음이죠.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가졌다면서요.
-네. 일부 매체 같은 경우에는 중계차까지 동원해서 집 앞에서 뻗치기를 했다더군요.
-이 전 위원장 집 앞이 핫플레이스인가요. 아, 이 전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나라가 건들건들하다"고 했고, 이 의미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했잖아요. 이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죠. 다만 지인들은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상황에서 '건들건들'하다고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위험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말하더라고요. 이 전 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공천했는데, 그게 잘 안 됐고 후반기 국정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석들을 하더군요.
-음…. 우선 이 전 위원장이 말하는 '나라'가 무엇인가를 두고 주변에서 의견이 분분하더라고요. 새누리당이냐, 박근혜 대통령이냐, 본인이냐, 자기가 말하는 기득권 세력이냐. 여기에 '건들건들하다'는 부분까지. 지난달 24일 공천 소회를 밝히는 기자회견 때 워딩을 분석해보면 '유승민 의원 꽃신 이야기,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 일본에 잃어버린 20년' 크게 3가지 의미가 나와요. 이런 부분을 비춰봤을 때 나라를 건들건들하게 하는 사람은 본인이 아니었느냐는 지적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도 주변에서 "건들건들한 게 누군데, 지금 누구한테 건들건들하다고 하느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새누리당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건들건들의 표상'이 아니냐는 말이 많던데요. 여유롭게 꽃을 돌보고 있었으니…. 또 '건들건들'이 풍기는 뉘앙스 자체가 보통 '건달들이 건들건들하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언어 선택에서 본인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 러브콜 거절한 손학규가 달라졌다…'내 뒤로 헤쳐모여~'
-이번엔 손학규 전 더민주 고문 이야기 좀 해 봅시다. 요즘 '정계를 은퇴했으면 서울에도 집이 있는데, 왜 굳이 강진에 있느냐. 그 자체가 정치 행위'라는 말이 많던데요. 이번에 또 서울에 올라오셨다고요?
-제가 연이어서 손 전 고문 취재를 여러 번 갔어요. 총선 직전이었던 지난 7일 이후 12일 만에 상경했어요. 그런데 총선 전후로 태도가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총선 직전에는 아무래도 뭐든 조심하고, 외부와 접촉도 꺼리고, 밀실에서만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장시간 대기한 취재진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총선 이후에는 도착하자마자 당선자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면서 소위 '그림'을 만들어주는 '쇼맨십'을 보이더라고요. 표정도 좋고 말도 좀 많아졌습니다. 이번에 본인 세력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력을 이끄는 '보스' 느낌이랄까. 4·19 민주묘지에서 130여 명 정도가 손 전 고문을 뒤따라 오는데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손학규계' 중 인상 깊은 사람은 누가 있었는데요.
-주로 더민주에 많이 있었죠. 이날은 임종성·김병욱·고용진·전혜숙·양승조·정춘숙·이언주·조정식·김민기·이찬열·이훈·강훈식 의원과 당선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건 김성식 국민의당 당선자였어요. 김 당선자는 이날 국민의당 대표 자격으로 10시에 국가행사에 참석했는데, 11시에 손 전 고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참배를 두 번 하더라고요.
-김 당선자도 막 껴안고 이름도 거론하고 그랬다는 거죠. 그럼 손 전 고문은 더민주예요? 국민의당인 거예요? 좌고우면 속에서 자기중심을 제대로 못 잡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손 전 고문이 도리어 입지가 좁아져 애가 타기 때문에 위세를 보여주려는 것 아닌가'라는 해석도 많던데요. 현재 더민주는 김종인 대표가 당권을 확실히 잡으려는 상황이고, '친노(친노무현)계'와 '친문(친문재인)계'가 있는 마당에 손 전 고문이 들어설 입지가 없는 상황 아닌가 생각하는 거죠. 국민의당 역시 러브콜을 열심히 보내긴 했지만, 총선 다 끝나고 이제 와서 손 전 고문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안철수 대표 이미지가 급상승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세 결집은 '나 손학규야~'라고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측근들에 힘을 실어주려는 목적이라고 정치권은 보고 있습니다.
-손 전 고문과 측근들이 밥을 뭐 먹었나요.
-육개장과 갈비탕 그리고 들국화주를 곁들였습니다. 그 장소가 거리상 가깝고 규모도 커서 매년 거기서 먹는다고 하네요.
-들국화주를 선택한 별다른 이유가 있나요? 손 전 고문과 잘 어울리는데요. 야생 들판에서 살아남는 이미지랄까. 하하. 봄이라 꽃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그러네요. 한 분은 화단 관리, 한 분은 들국화주. 술 한 잔 기울이면서는 어떤 말을 하던가요.
-밥상머리 취재는 할 수 없었고요. 밥 먹기 전에 길게 이야기했는데, "4·19 혁명 정신이 4·13 총선에서 드러났다"면서 "당선자들 고생 많이 했고, 20대 국회에서 새판을 짜달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어요.
-아, 당내에서 '친노계'처럼 계파를 만들어달라는, '날 좀 봐달라'는 신호인가요.
-사실 4·19 행사 이후에 손 전 고문이 어떻게 시선을 가져오느냐가 관건입니다. 그 시점이 전당대회를 하기 전후가 아닐까 싶네요. 전대 때 누군가를 내세워서 힘을 실어주든지 하지 않겠어요.
◆ 총선 직후 여권 테마주 헐값, 아군마저 "야권으로 갈아타라"
-손 전 고문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다 내년 대선으로 가는 길 아니겠어요. '물밑 샅바 싸움'이랄까, 모든 것이 대권의 전초전으로 이뤄지고 있잖아요.
-새누리당이 제일 곤란한 것이 김문수 전 지사, 오세훈 전 시장, 김무성 전 대표 등이 모두 총선 후 대권에서 멀어지면서 잠룡으로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전날 새누리당 사람과 만났는데 "다 필요 없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나오면 게임 끝"이라고 하더라고요. 여전히 '반기문 카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맞아요. 테마주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권 대선후보 때문에 많이 잃었다고, 야권 대선후보 떠오른 사람들한테 투자해서 메꿔야겠다고 했어요.(웃음) 김무성 전 대표 테마주는 8000원에서 3000원으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야권으로 눈을 돌려서 테마주를 미리 사놔야겠다고 해요.
-당권을 잡은 자가 대권을 밀어줄 수 있잖아요. 더민주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은 누가 있나요.
-당권은 김종인 대표 합의추대론이 나오는 와중에 김부겸 전 의원 이야기도 나오고요. 다만 김부겸 전 의원 본인은 고사했어요.
-김부겸 전 의원은 대권을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정세균 의원은 국회의장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종로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에 대한 야망이 생긴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과거 대권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전력도 있고, 아직 전국 지지도가 대권 후보로는 미미하니까요. 당 대표의 경우에는 이미 여러 번 해봐서 그런지 별로 메리트를 안 느끼는 것 같아요.
-합의추대를 하는 게 맞는 건가요? 경선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렇죠. 한 명이라도 일단 나오게 되면 경선을 치러야 하거든요. 그러나 김종인 대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꼭 해주십시오"라는 분위기가 돼야 해주겠다는 거죠.
-국민의당은 어때요. 안철수 대표 본인이 나서서 주도하나요?
-아뇨. 안 대표는 절대 나서지 않죠. 주변에 이상돈 교수 등 안철수계 사람들이 "신생정당인데 당 대표를 바꿔서 어쩌자는 거냐. 당헌·당규도 고쳐야 하는 부분들도 있고" 이런 이유로 올해 12월까지 '전당대회 연기론'이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안철수 vs 호남, 그리고 호남 내에선 본인들끼리 당권 싸움 이런 구도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당 의원과 통화를 했는데요. 안 대표가 당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모든 국민이 국민의당은 '안철수당'이라고 알고 있는데, 박지원 의원이 당선되면 '박지원당'이라고 사람들이 하겠냐고요. 중심이 없는 거죠. 중심이. 그래서 당헌·당규를 바꾸더라고 안 대표가 20대 국회 개원하고 9월 정기국회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내부에서 많이 한다고 합니다.
-춘사월, '꽃놀이패'에 취해 정치권이 '건들건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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