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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4·13 총선 투표, 이래도 포기(暴棄)하시겠습니까?

  • 정치 | 2016-04-11 10:55
그룹 AOA 설현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청담동 주민센터에서 2016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그룹 AOA 설현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청담동 주민센터에서 2016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흐르는 시냇물에 멈춰 있는 송사리는 결연하다. 마주쳐 오는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이윽고 물줄기를 거슬러 오른다. 동그란 눈에는 핏발도 없다. 송사리 한 마리가 물을 거스른다고 흐름이 바뀌겠나. 그럼에도 묵묵히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송사리에게서 시지프스를 본다. 산꼭대기를 향해 바위를 굴려 올리는. 번연히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한걸음씩 밀어 올리는.

한 조간신문의 칼럼이 눈에 와 박혔다. '밀림에 큰 불이 나서 동물들이 모두 달아나는데, 벌새 한 마리가 불을 향해 날아갔다. 작은 부리에 물 한 모금 물고서. 코끼리가 물었다. 그 정도로 불을 끌 수 있겠느냐고. 벌새가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그 역시 투표 이야기이다. 폭포로 보면 물방울 하나는 너무나 미미하지만, 그 폭포조차도 물방울이 모여 이뤄진 것이 아니던가. 수적천석(水滴穿石),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끝내 바위도 뚫는 것이다. 두꺼운 얼음을 깨는 것도 묵직한 망치가 아니라 작고 예리한 송곳이다.

그럼에도 요즘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힘들다고, 귀찮다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포기'한다. 기권(棄權)도 권리이듯이 포기(暴棄)도 선택이라면서.

하지만 포기라는 말의 본디 뜻을 알면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출전은 맹자(孟子)이다.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더불어 행동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자신을 해친다는 표현이 자포(自暴)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표현은 자기(自棄)이다.

 서울시설관리위원회는 서울 청계천 모전교와 광통교 사이에 서울지역 출마 후보 포스터와 기표 용구 모양, 서울의 주요 상징물을 표현한 대형 현판 등을 설치해 시민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서울시설관리위원회는 서울 청계천 모전교와 광통교 사이에 서울지역 출마 후보 포스터와 기표 용구 모양, 서울의 주요 상징물을 표현한 대형 현판 등을 설치해 시민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자포(自暴)는 말이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기(自棄)는 능히 어진 일을 할 수가 없고, 옳은 길로 갈 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를 합친 표현이 자포자기(自暴自棄)이다. 포기(暴棄)는 이를 줄인 것이다.

따라서 '포기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함께 말하려 하지 않고, 누구도 함께 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스스로 사회적 '왕따'가 되겠다는 뜻이 아니겠나. 관계의 단절 속에서 동굴 안에 웅크리고 있겠다는 것이다. 포기라는 말의 뜻이 이럴진대, 쉽게 "걍 포기하지, 뭐~."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독불장군(獨不將軍)이다.

맹자는 말했다. 어짐(仁)은 편안한 집이며, 올바름(義)은 바른 길이라고. 그런데 옛날에도 자포자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듯하다. 그가 "사람들이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바른 길을 가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고 탄식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군가 투표를 "내 뜻을 나타내는 짱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오불관언(吾不關焉) 기득권에, 우이독경(牛耳讀經) 기성체제에 던지는 돌멩이라는 뜻일 게다. 예수님도 말했다. 시대의 부름에 외면한다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한다면 "돌멩이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라고. 그런데 소리 지르는 돌멩이는, 아우성치는 '짱돌'은 어디 있을까.

지난 9월 1일 국회 정현관 앞 계단에서 19대 국회의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지난 9월 1일 국회 정현관 앞 계단에서 19대 국회의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어쩌면 폭풍 전의 고요함인가, 깊은 물의 묵묵함인가. 폭풍은 미구에 닥치고, 깊은 물은 둑을 무너뜨릴 터인데 눈앞에 현실도 펼쳐지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가 앞으로 대지를 삼킬 40일간의 폭우의 전조라는 것도, 외로운 외침 하나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리라는 것도 말이다.

닥치고 나서야 "그래서 그랬군. 그런 것 이었군"하는 것이다. 역사는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되풀이된다지만, 최소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어제 있었던 일들이 오늘 또 일어난다"지만, 그럼에도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일까.

돌멩이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고, 파문들이 모여 물결이 된다. 물결은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는 파도로 밀려오고, 쓰나미로 휩쓸어 버린다. 바위는 꿈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방울 하나에 부서진다. 바다는 동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돌멩이 하나에 일렁인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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