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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안 돼'와 '안돼', 그리고 '안, 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박종권 편집위원] 우리 말이 어렵다. 자음이 접하면 변하고(자음접변), 모음은 조화를 이루며(모음조화), 디귿과 티읕이 ‘ㅣ’와 만나면 구개음이 된다(구개음화). 뿐이랴. 격음화, 경음화에 원순모음화, 전설모음화까지 더하면, 말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아나운서를 ‘언어운사(言語運師)’로 부르는 이유이다.

말만 어려운가. 쓰기도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띄어쓰기 때문이다. 한글맞춤법 총칙은 간단명료하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잘 모르겠으면 띄어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사(助詞)’가 어렵다. 말로는 ‘돕는 품사’인데, 조사인지 의존명사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 중에서도 ‘안’의 쓰임새가 묘하다. 명사로는 ‘밖’의 상대 개념으로 안쪽을 뜻한다. ‘안’과 ‘밖’을 붙여 쓸 때는 ‘안팎’이 된다. 읽을 때는 ‘안파끄로’이다. 최근 야당에서 ‘문-안-박’ 연대 주장이 제기됐을 때, ‘문’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냐는 우스개가 나왔다. 그런데 돌아가는 사정으로 보면 ‘안’이 ‘밖’이고, ‘박’은 ‘문-안’과 등거리를 유지하며 ‘무난’하게 대처하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안’이 부사(副詞)로 쓰일 때다. 부정(否定)을 뜻하는 ‘아니’의 준말인데, 띄어쓰기에 헷갈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먼저 ‘안 되다’를 보자. 이는 ‘되다’의 부정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치 혁신이 뜻대로 됐다’를 부정할 때 ‘정치 혁신이 뜻대로 안 됐다’라고 쓴다. ‘그는 당 대표가 됐다’의 부정은 ‘그는 당 대표가 안 됐다’이다. 여기에서 ‘희망한 대로’를 넣으면 뜻이 아리송해진다. ‘그가 희망한 대로 당 대표가 됐다’와 ‘그가 희망한 대로 당 대표가 안 됐다’는 어떻게 읽히는가.

안철수 의원이 13일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하면서 문재인 대표와 결별하게 됐다. /더팩트DB
안철수 의원이 13일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하면서 문재인 대표와 결별하게 됐다. /더팩트DB

다음 ‘안되다’이다. 여기에서 ‘안-‘은 부사가 아니다. ‘-되다’와 붙어서 하나의 동사(動詞)이다. 대부분 ‘잘되다’의 반대 의미이다. 첫째, 일이나 현상 따위가 좋게 이뤄지지 않다는 뜻이다. ‘정치 공부가 안돼서 자칫 정치시험(선거)에서 낙제할 판이다’거나 ‘정치인 장사가 안돼서 정계에 외로운 스라소니가 될 수 있겠다’는 쓰임새이다.

둘째, 사람이 훌륭하게 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가 안되기를 바라는 시민이나 유권자는 없다’거나 ‘그가 안된 인물이었다면, 그런 폭발적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쓸 때이다.

셋째, 일정한 수준이나 정도에 이르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그의 능력이 비록 안되더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거나 ‘그를 따라 나설 정치인은 안돼도 대여섯 명은 될 것이다’로 표현할 때이다.

넷째, 섭섭하거나 가엾어 마음이 언짢다는 의미이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 안됐다’라거나 ‘작금의 정치상황에 염증을 느끼고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나 새로운 인물에 의한 정계 개편과 정치 혁신을 기대한 시민들의 안색이 안돼 보인다’라고 쓰는 경우이다.

‘안 돼’와 ‘안돼’의 쓰임새를 확실히 짚어봤다. 이 기회에 ‘안 돼!’와 ‘안, 돼!’도 보자. 쉼표 하나에 뜻이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다. 전자는 ‘그러지 마!’라는 뜻이지만, 후자는 ‘안(安), 돼!’의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국회의원 이야기다.

지지 성향에 따라서는 안철수 의원의 ‘철수(撤收)’에 ‘안 돼!’하고 반대 의사를 표현하거나, 반대로 ‘안(安), 돼!’하며 희망과 기대감을 보일 것이다. 야권 분열을 우려하는 층에서는 낙담을 넘어 분노와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그러나 여(與)든, 야(野)든 기존 정치권에 절망하던 층은 중도(中道)의 가능성을 기대할 것이다. 이른바 ‘수꼴’과 ‘좌빨’을 제외한 ‘중도 보수’에서 ‘중도 진보’까지 대 연합 말이다.

문재인 대표는 안 의원의 탈당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문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며 혁신전당대회를 역으로 제안했지만,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13일 끝내 탈당했다. /더팩트DB
문재인 대표는 안 의원의 탈당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문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며 혁신전당대회를 역으로 제안했지만,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13일 끝내 탈당했다. /더팩트DB

다시 ‘문-안-박’으로 돌아가 보자. 일각에서는 ‘문(門)’을 가운데로 ‘안’과 ‘밖’이 공존하는 그림을 그린다. ‘문(門)’은 바로 정권교체의 대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있다. ‘문(門)’은 당기든 밀든 열리느냐 빗장을 거느냐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안’과 ‘밖’ 사이의 경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캐스팅 보트처럼 어느 쪽을 끌고(Pull) 미는(Push) 역할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대도무문’을 예언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얼마 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아니다. ‘문(門)’ 대신 ‘문(文)’을 써 ‘대도무문(大道無文)이다. 정권교체를 향한 대권가도에 ‘문(文)’은 안 된다, 그래서 안됐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안’이란 말이냐. 사실 ‘문(門)’이 있는 경계에서 어느 쪽이 안이고 밖인지는 보기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구중궁궐은 왕을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안’이지만, ‘민심(民心)’의 척도로 보면 ‘안’이 아니라 ‘밖’일 수 있지 않겠는가. 창살에 갇혀 있어도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면, 자유가 억압된 창살의 ‘밖’이 진정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안과 밖은 이처럼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마치 ‘안(安)’과 ‘박(朴)’처럼 말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 즈음해 ‘언어의 유희’ 형식으로 짚어봤다. 그럼 야당은, 우리의 정치 지형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예측과 예상과 예언이 난무한다. 분명한 것은 그 시대, 그 공간에 사는 이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열쇠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이 ‘혁신’이든 ‘시민’이든 '이대로'든 말이다. 독일의 시인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Im Nebel)’처럼, 숲에 안개가 내리면 모두가 개별적으로, 독립적으로 드러난다. 안개가 걷히면 나무와 바위와 꽃 사이에 난 오솔길이 선연히 보이지만 말이다.

ps.team@tf.co.kr

문재인 대표는 안 의원의 탈당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문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며 혁신전당대회를 역으로 제안했지만,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13일 끝내 탈당했다. /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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