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사천=소미연 기자]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정계은퇴 후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돌아갔다. 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한 그는 다시 목장갑을 끼고, 전지가위를 늘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며 약 1000주에 달하는 매실나무의 가지치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매실 농사는 강 전 대표의 주업이자 생계수단이다. 엑기스를 만들고, 조청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벌이가 시원찮지만 강 전 대표는 묵묵히 매실나무를 벗삼아 일을 하고 있다.
<더팩트> 취재진이 경남 사천을 찾은 지난달 29일에도 강 전 대표는 매실 조청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굴착기로 집 뒷마당을 정리하면서도 이따금씩 가공공장에 들러 불에 졸이고 있는 조청의 상태를 확인했다. 궂은 일로 손이 성할 날이 없지만 강 전 대표의 얼굴은 환했다. 국회에서 보낸 지난 9년여의 시간이 아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강 전 대표는 진보정당의 간판 정치인으로 손에 꼽힌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이명박 정권에 맞서 한미FTA를 반대하고 'MB악법'에 목소리를 높였다. 덕분에 얻은 별칭이 바로 '강달프'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해결사로 등장하는 간달프처럼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도 잘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분당을 막지 못한 그는 결국 지난해 9월 쓸쓸한 퇴장을 맞았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강 전 대표는 어떻게 지냈을까. 그는 작업복 그대로 직격 인터뷰에 응했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많이 아팠다고 들었다.
지난해 9월10일이던가. 정계은퇴를 선언하기 전에 병원에 실려 갔는데, 경동맥에 경직성 경련이 오고 혈당이 50까지 떨어져서 의사들이 깜짝 놀라더라. 응급치료만 간단히 하고 바로 다음날 민간요법으로 전신을 훈증으로 치료했다. 그리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겨우 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엔 강원도로 갔다. 민간요법으로 한 부부가 매일같이 간호해줬다. 저녁에는 산속 골짜기에 혼자 남았지만 그렇게 한 달을 요양했다.
이후 집에 돌아왔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신장이 많이 상했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자꾸 헛발질하는 현상이 일어나서 강원도를 두세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치유에 힘썼다. 그러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경남도지사에 출마할 때 보따리를 싸서 돌아왔다. 그때가 12월 초다. 선거 때 잠깐 공식활동을 했고, 이후 3개월째 집에서 일하고 있다.
- 국회가 그립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아직인가.
그럼. (웃음) 사실 마음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제가 국회를 들어갈 때도 비례대표 등록을 안 하겠다고 난리쳤다가 갑자기 들어간 뒤 8년 만에 원대복귀한 게 아닌가. 농민의 아들로 농민운동을 하다가 국회 파견근무를 마친 셈이다.
지금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매실 농사에 매진해야 한다. 매실 농사해봐야 매실 따고 가공해서 엑기스나 조청을 만들어 파는 게 전부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돈 한 푼 나올 곳이 없다. 그러니 인부를 쓸 수도 없고. 대출 신청을 해놨으니 집사람과 열심히 일해서 갚아가야 한다. 집 앞에 있는 흙집의 지붕 보수도 해야 하고, 축대도 다시 쌓아야 하고, 집안 일 정리하는데 앞으로 1년은 더 걸릴 것 같다.

-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강 전 대표의 정계 은퇴를 '휴지기'라고 설명했다.
휴지기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 인생에서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제 정치인생 8년을 농민운동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사실 제가 비례대표 등록할 때 우리 집이 눈물바다가 됐다. 모두가 반대했다. 결국 장인이 제 대신에 농사짓기로 하고 어렵게 결정한 선택이었다.
18대 총선에 출마할 때도 집사람의 반대가 심했다. 가정을 선택하든 정치를 선택하든 결정하라고. (웃음) 19대 총선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제 원대로, 성질대로 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다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송충이가 솔잎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 정계 은퇴 당시에 많이 울지 않았나.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지 않았나. 땀 흘리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죄송했다. 특히 진보정당의 재시작을 말할 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희생과 헌신이 진보정당의 정체성 내지는 생명이다. 그 희생과 헌신은 법의 정신에 의해서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활용하고 이것이 바로 진보가 해야 할 역할인데, 정작 진보정당이 아웅다웅하다 어떻게 됐나. 분당까지 해버렸다. 너무 참담해서 눈물이 나오더라.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 때 진보에 대한 실망이랄까. 우리의 자화상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굉장히 황당했다. 우리 내부에 이런 자기모순이나 정파적 패권성이 있을 줄 몰랐다.

-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의 핵심 인물인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자격심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제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나. 농사짓는 사람이 판단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늘도 이런 질문이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웃음) 요즘엔 정치에 대해서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다. 컴퓨터도 애들이나 하니까. 다만,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본다. 종북문제가 아니라 정파성 패권문제다.
결국 분당이 불가피해졌지만, 당시 안팎으로 분당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절충안도 나왔다. 국민들이 용서할 때까지 의정활동을 접고 자숙한 뒤 대선이 끝난 이후 '지금부터 열심히 일 할 테니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하자는 내용이었다. 혁신을 요구했던 우리 쪽도 모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권을 가진 제가 결단을 내려서 추진하고 경기동부연합 측과 조율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못 받아들였다.
- 누가 거부한 건가.
모른다. 그쪽 구조를 지금도 파악을 못하니까.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손발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제가 처음 민주노동당 대표를 할 때 이 대표가 원내부대표를 맡았는데, 학식이 뛰어나고 논리정연해서 설득력이 좋았다. 때문에 부드럽고 따뜻한 진보의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당시 저는 작아져야 하고 이 대표는 커야 할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차기 민노당 대표에 이 대표를 추천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말이 많았다. 진보대통합 추진과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하기 위해선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제가 당시 당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간곡한 청이 많았다. 고민을 했지만 결단을 내렸다. 그 만큼 이 대표를 많이 아꼈다.

- 그만큼 실망도 컸을 것 같은데.
이 대표의 개인적 영향이나 생각이 결정적일 순 없다. 정파적 패권성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 대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 이후 이 대표와 연락을 하고 지내는가.
안한다. 당시 사태로 그쪽에선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안 그렇겠나. 패권성을 뿌리 뽑지 않으면 진보를 말아먹는 것이라 생각하고 강하게 쳤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경기동부연합 사람들이 패권을 가진 강자가 아니라 속으로는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온 국민이 종북이라 몰아붙이고, 언론이 매도하고, 보수진영은 물론 민주진영에서도 등을 돌린 상황이었다. 올바른 심판도 중요하지만 이들과 같이 괴로워하고 울고 손잡고 위로하면서 쇄신을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간 물리칠 강자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의 아픔과 서러움에 대해선 이해하지 못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여러모로 저는 진보역사 속에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제 부족으로 분당뿐 아니라 진보의 재분열까지 낳았다. 저를 중심으로 혁신을 말하던 사람들이 진보정의당을 창당한 만큼 애정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 지난 9년여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별명을 많이 얻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다면.
트위터에 '강달프'로 한 번씩 글을 올린다. (웃음) 영화 '반지의 제왕'은 텔레비전에서 영화로 방영할 때 봤는데, 워낙 극이 길어서 한두 편을 봐선 그 인물에 대한 특성을 모르겠더라. 의롭다는 것 정도만 알겠던데, 국민 일부는 저를 의롭게 봤다는 게 아닌가. 반대로 제 의정활동에 대해 돌팔매질 안할 국민이 몇 프로나 될까 싶지만. 그래서 자조적인 의미에서 '강달프'라는 별칭을 자주 쓰고 있다.

- 강용석 전 무소속 의원이 최근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강 전 대표와의 몸싸움 벌였던 당시를 설명하면서 '살짝 밀었다'고 말하더라.
아니다. 아주 패대기를 쳤다. (웃음) 앞에서 잡아끌면 그리 당하지 않았다. 뒤에서 어깨를 잡고 확 잡아 치니까 쓰러질 수밖에. 저도 당황해서 경황이 없었다. 쓰러지고 나서 앞에 보니 누가 한 사람 서 있더라고. 그래서 저를 잡아 넘어뜨린 사람이 그 사람인 줄 알고 일어서면서 다리를 확 잡아 쓰러뜨렸는데, 가만 보니 당시 무소속이던 유성엽 민주통합당 의원이었다. (웃음) 유 의원이 황당해하며 '강 의원'이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아차 실수했구나' 싶어서 사과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는데, 그 모습이 MBC에 그대로 나왔다, 덕분에 동료도 모르고 설쳤다며 욕을 먹었다. 저를 뒤에서 잡아 넘어뜨린 사람이 강 전 의원이란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 18대·19대 총선에서 사천 안방을 놓고 'MB맨'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격돌하지 않았나. 이 전 사무총장에 대한 소식은 알고 있는가.
주변 사람들을 얘기로는 사천시장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도 이 전 사무총장이 상당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와는 허물없이 농담도 하고 지내는 사이다. 제가 19대 총선에서 떨어진 이후에 전화해서 밥 한 그릇 사달라고 해서 만났다. (웃음) 이전 사무총장이 집사람과도 친하게 지내는데, 얼마 전 전화를 해서 그런 말을 하더라. 사모님이 매실 좀 준다던데 왜 답이 없냐고. 그래서 언제든지 오시라고 했다. 이 전 사무총장이 곧 찾아올 것 같다. (웃음)
<사진=임영무·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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