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자' 박정희
지난 23일 국회 시사회로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이하 유신의 추억, 감독 이정황)'에서 박 전 대통령은 독재자를 넘어선 '암살자'로 표현된다. 박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국민을 '종신 대통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죽인 사람인 것이다. 특히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집행 된 피해자의 유족이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은 박 전 대통령의 면모에 잔인함을 더한다.
동시에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롤모델'로 나오기도 한다. 영화 말미 10·26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전 전 대통령이 신군부를 세운 내용이 그려진다. 이 때 내레이션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메이지유신과 소화유신을 모델로 삼았다면,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모델로 삼았다"는 내용이 귓가에 울려 퍼진다. 12·12사태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역할도 적지 않았던 셈이다.
외형적 성장 뒤에 숨겨진 사회의 뒷면을 조명한 '유신의 추억'은 유신 정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인혁당 사건 등 긴급조치 1호부터 9호까지가 자행되면서 탄압된 과정들을 기록필름과 관계자의 증언으로 전달하고 있다.
◆ '평범한 남성' 박정희
2005년 개봉 당시 논란이 일었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감독 임상수)'에서 박 전 대통령은 한 없이 여리다. 먼저 박 전 대통령을 배우 송재호씨로 캐스팅한 것부터가 그 단서다. 국민이 떠올리는 박 전 대통령은 강한 이미지에 속한다. 반면 송재호씨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다. 이에 대해 임상수 감독은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송재호 선생을 캐스팅하고 나서 계속 그렇게 요구했다. 우아하면서도 나이스하게 보여 달라. 마치 박정희가 천상의 인물이었던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여린' 박 전 대통령은 동시에 '평범한 남성'일 뿐이다. 당시 잘나가던 가수 심수봉씨를 불러 연회를 즐기는 장면으로 '남자 박정희'를 묘사했다. 극 중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이 앞에 앉아있음에도 심수봉씨와 함께 연회에 참석한 여대생 조씨의 손을 어루만지고 조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등의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 또 영화 앞부분에서 참모들과 음담패설을 즐기는 장면에서도 '남자 박정희'를 찾을 수 있다.
'그때 그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이 피살당한 1979년 10월26일, 단 하루만을 그린 영화다. 사건의 골격과 김재규, 차지철, 김재규의 수행비서인 박흥주, 김재규의 오른팔 박선호 등 주요 출연진의 대사는 실제 알려진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극 중에서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총 한 발을 맞고 "한 방 맞았다 아이가, 또 쏠라고"라고 하는 장면, 김재규가 박 전 대통령을 "다카키 마사오"라고 부르는 장면, 심수봉씨가 일본 가요를 부르는 장면 등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총에 맞은 뒤에도 "난 괜찮아"라고 말했고, 당시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한국 노래만 불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은 '그때 그사람들'을 대상으로 명예훼손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사실과 다른 점들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박 전 대통령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법원의 가처분결정으로 영화 앞뒤에 그려진 박 전 대통령의 성생활이나 장례식 장면이 삭제됐다. 하지만 영화제작사인 MK픽처스가 가처분 이의 신청을 하면서 소송은 계속됐고, 3년여 만에 '조정'으로 종결됐다.
올해 12월 개봉을 앞둔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이하 퍼스트레이디)'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의 남편 박정희'로 그려진다. 육 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퍼스트레이디'는 육 여사 곁에 머문 보좌관의 눈을 통해 바라 본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 감우성씨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대통령 박정희가 아닌 다른 모습의 '인간 박정희'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퍼스트레이디'는 육 여사의 88번째 생일인 오는 11월29일에 맞춰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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