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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10> '여자 하키의 전설' 임계숙, A매치 101경기 127골 신화…②편

▶ '女 하키의 전설' 임계숙, 母 리더십? "김연아 자서전도 권해"… ⓛ편

창 밖 햇살을 바라보며 시원한 냉커피 한 모금을 들이킨 임계숙은 자연스레 국가대표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16년의 현역 시절 가운데 14년을 태극 마크와 함께한 그는 불모지인 한국 여자 하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축구, 농구, 배구 등 다른 구기 종목과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운동하는 것 자체가 행복했기에 자기 자신과 싸움을 즐겼고, 스스로 세운 목표를 하나하나 달성해 갔다.





▲ 임계숙(49·KT 여자하키단)은 전설이 돼 돌아왔다.
▲ 임계숙(49·KT 여자하키단)은 전설이 돼 돌아왔다.


◆ 아시아경기대회․올림픽의 꿈★ "정말 힘들게 훈련했죠"

"초등학교 시절 핸드볼을 하기도 했어요. 그저 운동이라면 좋아했죠.(웃음)" 임계숙이 하키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은 온양여상 1학년 때였다. 하키 팀 모집 공고를 보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운동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스틱을 잡는 것부터 매력을 느낀 그는 혹독한 훈련도 거뜬히 이겨 냈다. 160cm 단신이었지만 타고난 지구력과 인내심으로 1981년 국가대표로 뽑혔다.

당시 여자 하키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전략 종목으로 선정돼 적극적으로 육성됐다. 임계숙은 1981년부터 서울 올림픽 때까지 한금실, 이경희, 황금숙 등과 한솥밥을 먹으며 7년 동안 호흡을 맞췄다. 1981년 제1회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이후 국외 전지훈련을 통해 유럽 강팀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대표팀의 전력이 급상승했다.





▲ 국가대표팀 동료 한금실(왼쪽), 이경희(오른쪽)와 포즈를 취한 임계숙.
▲ 국가대표팀 동료 한금실(왼쪽), 이경희(오른쪽)와 포즈를 취한 임계숙.


"당시에는 하키계가 경제적으로 워낙 어려웠어요. 중, 고등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며 훈련했죠.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지옥 훈련을 견뎌 냈던 것 같아요." 호주 전지훈련 때는 현지 클럽 팀과 경기에서 완패해 숙소 주변에 있는 둘레 4km 호수를 뛰는 벌을 받기도 했다. 호수에 풍덩 빠지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지만 자기 자신과 한 약속 및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 낸 임계숙은 대표팀을 이끌고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아시아의 강호 인도, 파키스탄 등을 꺾는 데 한몫을 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대망의 1988년 서울 올림픽 무대를 향해 다시금 2년의 지옥 훈련에 들어갔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박영조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은 정평이 나 있었다. "정말 힘들게 훈련했지만 분명히 체력적으로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 현역 시절 일담을 들려주는 임계숙 감독
▲ 현역 시절 일담을 들려주는 임계숙 감독


◆ '대통령 찾은' 서울 올림픽 결승전, 아쉬운 은메달

서울 올림픽 여자 하키 결승 호주와 경기가 열린 곳은 글쓴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바로 이곳. 성남 종합운동장이었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와 5-5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금메달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호주와 조별 리그 경기에서 임계숙은 혼자 3골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치열했어요. 재미있는 경기였죠. 3골을 기록했지만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웃음)"

결승전이 열린 날 성남 종합운동장에는 3만 관중이 관중석 계단까지 꽉 들어찼다. 대통령까지 찾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조별 리그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호주를 또다시 상대해 0-2로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엄청 울었죠. 평소 내성적인 편이지만 경기장에 나서면 냉정해지곤 했는데 결승전 때는 중압감이 들더라고요. 3만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한 경험이 없었기에 부담이 됐어요."





▲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하키는 '붉은 땅벌'이라 불리며 감동의 투혼을 펼쳤다.
▲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하키는 '붉은 땅벌'이라 불리며 감동의 투혼을 펼쳤다.






▲ 23년이 지난 지금, 성남 종합운동장에 감독으로 다시 선 그는
▲ 23년이 지난 지금, 성남 종합운동장에 감독으로 다시 선 그는 "고향에 온 것같다"며 옛 시절을 회고한다


아쉽게 금메달은 놓쳤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필드를 누빈 여자 하키 대표 팀의 투혼은 연일 화제였다. 특히 임계숙의 활약은 세계 하키 관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기록한 A매치 127골(101경기)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솔직히 기록에 관심이 없었어요.(웃음) 아시아 국가와 상대한 적이 많았거든요. 당시에는 우리와 수준 차이도 있었기에 골도 많이 넣었죠."

임계숙은 서울 올림픽을 마치고 은퇴를 고려했다. 후배들의 앞길을 열어 주고자 했다. 하지만 하키협회는 강력하게 만류했다. 결국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해 금메달을 이끌었다. 절치부심, 생애 마지막 올림픽 무대로 나선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금메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예상 밖의 준결승전 탈락으로 4위에 머물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많이 났어요.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 1992년 임계숙은 은퇴를 선언했다.
▲ 1992년 임계숙은 은퇴를 선언했다.


◆ 은퇴…KT 고객컨설팅 과장으로 변신

임계숙은 1992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척추분리증을 겪는 등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은퇴 후 결혼했고, 1994년부터 친정팀이었던 KT 하키 구단의 추천으로 KT 천안지사 고객 컨설팅팀 과장 직급을 받고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운동선수 출신이니까 다른 업무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잘 맞을 것으로 보고, 구단 측에서 연결을 해 주셨죠."

스틱을 잡고 세계 여자 하키계를 호령했던 그에게 회사 생활을 하고 결재 서류 도장을 찍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어색했다. 고객을 상담하는 일인지라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쓴소리와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역 시절 보여 줬던 특유의 근성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조금씩 자기 영역을 확보해 갔다. 동료들도 그의 성실성과 친근한 리더십에 호감을 보이며 어울렸다.

이후 16년 넘게 평범한 직장인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산 임계숙은 간혹 생활체육에서 하키를 만났을 뿐, 하키계로 돌아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국내 여자 하키의 강자 KT가 임계숙을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연히 고민했죠. 무엇보다 오랜 공백이 있었기에 하키계 동향을 잘 모르고 있었고요. 연구해야 할 내용도 많았으니까요."

"가족의 응원이 컸고, 제 자신도 ‘한번 해 보자’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부임 이후 들여다보니 확실히 기술, 전술이 상당히 변했더라고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죠. 또 대외적으로도 하키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전설’은 돌아왔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스틱을 잡고 선수들과 미니 경기를 하는 등 귀중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 18년 만에 하키계 복귀를 선언한 임계숙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18년 만에 하키계 복귀를 선언한 임계숙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하키는 비인기 종목? "남이 알아 주든, 안 알아 주든…"

한국 여자 하키는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중국과 치른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0-0으로 비긴 뒤 승부때리기에서 4-5로 졌다.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12년 만의 우승 꿈이 좌절됐다. 하지만 대회 2위까지 주어지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 티켓은 거머쥐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또 다른 신화 창조를 준비하고 있다. "‘참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올림픽 은메달을 다시 봐도 참 값지고요."

"우리 팀 뿐 아니라 후배 선수들에게 늘 하는 말은 하키를 좋아해서 선택했고, 앞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다면 인기, 비인기 종목의 구분을 짓지 말라고 말해요. 남이 알아 주든 안 알아 주든 최선을 다하고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관심도 자연스레 받게 되거든요. 주변의 무관심으로 서운한 마음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으면 해요. 태극 마크에 대한 책임감도 갖고요."

"제가 대표팀 생활을 할 때보다 경기장 시설이나 운동 환경은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대표팀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열악해졌어요.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우리보다 강한 국가들을 상대로 A매치를 많이 치러야 해요. 내년 런던 올림픽은 우리 하키의 전환점이 될 겁니다. 저 역시 국가대표 선수들을 잘 키워 내서 올림픽 메달을 따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어요."





▲ 임계숙은 자신이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후배들이 풀어 주기를 바란다.
▲ 임계숙은 자신이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후배들이 풀어 주기를 바란다.


임계숙의 삶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이었다. 타고난 지구력과 인내심은 그를 이 시대 개척자의 본보기로 만들었다. 여자 하키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세계적인 강호로 만는 주역이었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했다.

"여자 하키가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도 다른 종목 못지않게 커다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림픽 뿐 아니라 평소에도 하키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 드립니다. 저 역시 18년 만에 다시 돌아온 만큼 하키 발전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더팩트 독자 여러분, 건강하세요."

글쓴이는 임계숙을 선구자의 느낌으로 바라봤다. 현역 시절 경기력 뿐 아니라 빼어난 정신력과 자기 관리 능력에 감탄했다. '전설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임계숙은 찬란했던 현역 시절의 영광과 알토란 같은 직장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여자 하키의 전설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 [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 11번째 주인공은 '등반의 대가' 엄홍길 편 입니다.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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