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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Story] 구단 첫 여성 CEO 임은주 "강원FC는 임자 만났다!"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여성 구단 CEO인 임은주 강원FC 대표이사가 강릉에 있는 강원 사무국대표이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릉 = 김용일 기자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여성 구단 CEO인 임은주 강원FC 대표이사가 강릉에 있는 강원 사무국대표이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릉 = 김용일 기자


[강릉 = 김용일 기자] '최초'라는 수식어만큼 잊히지 않는 말도 없다. 시행착오는 있을지라도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디뎠기에 중간과 끝이 있게 된다. 최초는 그만큼 특별한 말이다. 우리 축구계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이처럼 많은 이가 또 있을까. 임은주(47) 강원FC 신임 대표이사는 또 한 번 '금녀의 문'을 깼다.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구단의 여성 CEO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국내 최초의 여성 축구 심판이자 여자월드컵 아시아 주심,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국제대회 여자 주심, 월드컵 여성 해설위원, FIFA 심판강사까지…. 하나라도 벅찬 타이틀을 모두 지닌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재정파탄 위기와 성적 부진에 따른 관중감소 등 난파선에 비유된 강원의 수장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오직 축구에 대한 진정성에서 비롯됐다. 항상 한계에 맞서 정면돌파 인생을 살아온 임 대표는 더는 내려갈 게 없는 강원을 두고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기회가 더 많은 법"이라는 각오로 엉킨 실타래를 풀겠다고 나선 것이다. 2년 전 그를 반대했던 이사진 역시 경기인 출신이자 기업 경영까지 두루 경험한 임 대표의 강한 결단력과 온화한 리더십에 두 손을 들었다. '도원결의'에 버금가는 힘으로 강원을 구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지난 7일 강원 사무국에서 만난 임 대표는 이미 두려워하기 보다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5월 29일 구단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된 임은주.
지난 5월 29일 구단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된 임은주.

◆ "가족의 만류에도 '일단 구하고 보자!' 결심"

- 5월 29일 취임 이후 어떻게 지냈나.

강릉 사무실로 와서 호텔을 잡았다. 재무제표를 비롯해 감사 자료를 모두 요청했다. 이전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으나 정확하게 상황을 알아야 했다. 재무 전문가 4명과 닷새 동안 밤샘을 했다. 살과 뼈대를 죄다 알 수 있었다. 몇 개만 넘겨봐도 한눈에 들어왔다. 답이 나오지 않아 다음 날 다른 서류를 요청하기도 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나오던가.

사무국만 봐도 얼마나 주인의식 없이 방만하게 운영했는지 알게 됐다. 법인카드 명세를 비롯해 재정이 열악한 도민구단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낭비가 심했다. 직원들 일대일 미팅도 했다. 얼마나 전문성이 있는지, 구단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비전을 가졌는지 살펴봤다. 금세 답은 나오더라. 프로는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 2년 전 이사회 추천을 받지 못했다가 적극적인 제안을 받았다.

도에서 강원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였다. 해체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마지막 이사회 전 한 달간 간담회를 열었을 때도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누가 강원 사장을 맡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2년 전 날 반대하던 분들이 2개월 전부터 적극 맡아달라며 제안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정말 구단이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손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2년 전부터 많은 공부를 했다. 이사회에서 오히려 내가 더 상황을 직시하는 면이 많았다. 외부에 알려졌듯 빚이 많았다. 선수단은 프로의식 없이 망가졌다. 사무국 또한 힘을 잃은 상태였다. 난 그런 곳에서 희망을 찾는 편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 마케팅 회사의 CEO이자 대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강원에 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엔 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도 많았으나 추진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사들의 진정성을 느꼈다. 한 분은 5억 원을 꿔주겠다, 안 받아도 좋다는 식이었다. 또다른 분은 목숨을 걸고 돕겠다, 대표이사 이상으로 일하겠다는 열정을 보였다. 관망하는 이사가 아니라 일을 하겠다는 이사가 많아졌다. 자신감이 생기더라.

- 강원으로 오기까지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하. 말을 아꼈다. 가족들은 만류했다. 사실 그들은 신문을 통해 먼저 알았다. 언니는 거의 쓰러졌다. 2년 전 상처도 있었을뿐더러 지금 하는 일이 잘 되고 있는데 왜 모험을 택하느냐고. 그만큼 나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난 안 된다는 것을 일으키려는 습성이 있다. 강원이 무너지면 타 시도민구단에 도미노로 영향이 미칠까 봐 우려도 됐다. 남은 인생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일단 구하고 보자'라고 다짐했다.





취임 이후 수많은 미디어를 상대하며 강원의 새로운 비전을 설명하고 있는 임 대표.
취임 이후 수많은 미디어를 상대하며 강원의 새로운 비전을 설명하고 있는 임 대표.


◆ "김학범 감독과 3시간 미팅, 각자 책임지자"

- 김학범 감독 반응은 어땠나.

김 감독과 서울에서 만나 3시간 넘게 미팅을 했다. 프로답게 가자고 했다. 난 선수단 월급 지급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감독께선 성적을 내달라. 그야말로 프로답게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지자고 했다. 애초 스폰서 금액이 하루 이틀 늦게 들어오면서 월급 지급이 늦어진 건 사실이다. 내가 들어온 이상 그런 일은 없다. 김 감독께 '체납' 문제로 승리에 대한 열망이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 문제가 나오면 항상 뒤로 숨게 된다. 1승 하면 다 용서가 된다. 프로는 그런 게 아니다. 책임이다. 1라운드는 연습경기라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2, 3라운드에서 감독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명장을 데려온 이유는 2000만 원짜리 2억 원 만들고, 2억 원짜리 4억 원 만들기 위해서다. 지더라도 스토리있게 져야 한다. 그게 강한 팀이다.

-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재정이다.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우리 스폰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곳이 강원랜드와 강원도다. 두 곳만 정상적으로 교감을 나눠도 운영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간 대표이사 없이 갈등을 겪다 보니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을 받지 못했다. 열심히 발로 뛰며 소통을 해왔다. 2년 전 날 반대했던 이사들이 두 곳을 책임지는 분들이다. 하나가 됐기 때문에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지장이 없다. 강원도가 18개 시군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동안 아무도 소통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백 km를 다니며 협조를 얻었고, 스폰서들을 만나 비전을 제시했다.

- 임 대표 부임 이후 도내 수많은 곳으로부터 협조 요청이 많이 온다더라.

강릉의 축구 열정은 세계적이다. 식당에서 밥 먹는데 시민이 벌써 알아본다. 원주축구협회장과 통화를 했는데, 한 팬이 원주에서 K리그를 개최해달라며 편지를 보냈다고 하더라. 낮 경기라도 해달라고 애원했다. 원주회장께선 내게 관중동원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예전 누가 이 같은 제안을 했는가. 오직 강릉과 춘천에서 우리만의 리그를 한거다. 지금도 18개 시군에서 제안이 끊이지 않는다. 아까 점심에도 막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먼저 오셔서 인사 건네는 시민이 많았다. 부지런히 뛰면 홈경기 관중을 꽉 채우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 이전까지 강원은 주식회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도에 재무제표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맞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감사를 받는 것 또한 황당한 일이다. 난 우리 주주들과 공청회를 자주 열고자 한다. 미디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강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미디어에서 내게 하는 질문은 거의 청문회 수준이다. 왜? 예산 문제가 항상 거론됐으니까. 난 정면돌파하고 있다. 대답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선수 몸값 80%, 운영비 20%를 왜 감추는가. 난 공청회를 계속 열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필요할 때 손을 벌릴 수 있다.

- 임 대표의 추진력이 가속페달을 밟게 된 것은 달라진 이사회다. 원동력은.

쉽게 말해서 2년 전 날 반대했던 분들이 임은주를 싫어했던 게 아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알다시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시기였다. '자기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 가운데 내가 뚝 떨어진 거다. 어떻게 보면 내가 지역의 색깔을 잘 몰랐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사들께서 당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더라. 빚은 커지고 방만한 경영이 되다 보니.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다. 심지어 리그 휴식기에 들어와 구단 상황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그는 눈 코 뜰새 없이 강원도내 18개 시군을 오가며 강원FC의 도약을 촉구하고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그는 눈 코 뜰새 없이 강원도내 18개 시군을 오가며 강원FC의 도약을 촉구하고 있다.


◆ "후반기 선수들의 '미친 열정' 보게 될 것"

- 시도민구단은 정치적 목적으로 창단한 팀이 많다.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됐다. 축구 문외한인 이사진도 많은 논란이 됐는데.

개인적으로 이사진은 스폰서를 책임질 수 있는 분들이 80%, 축구 전문가 20%로 구성돼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둘 중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구단의 청사진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태생적 한계라는 말에 대해서는) 운명이다. 하지만 운명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대표이사는 프로필 한 줄 채우기 위해 앉는 자리가 아니다. 난 오직 축구를 보고 왔다. 구단주부터 모두 정치색을 입으면 선수단은 외로워진다. 이미 재수하고 들어왔다. 리스크를 줄일 자신이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이다.

- 앞서 공청회를 말했듯이, 일각에선 강원의 현주소를 도민에게 설명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2부로 떨어져도 큰 그림을 그려 꾸려나가겠다는 의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뭐든 단절이 무서운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봐줘야 한다. 그래야 2부로 내려가도 1부와 같은 후원을 받을 수 있다. 벽이 높아지면 무관심이 돌아온다. 그럼 2부 예산도 갖추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난 미디어와 많은 소통을 원한다. 앞서 밝혔듯이 강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민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솔직히 타 구단 대표이사들이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선수 연봉도 다 공개하고 싶다. 심지어 이기면 승리수당, 지면 패전수당까지 넣고 싶을 정도다. 그 정도로 프로가 뭔지 보여주고 싶다.

- 간혹 시도민구단의 감독과 대표이사는 갈등을 겪는다. 흔히 대표이사의 선수단 관여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런 얘기는 아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난 경기인 출신이다. 내가 그럴 수 없다. 계속 강조하지만, 우린 프로다. 단, 대표이사로서 구단 재정과 연결되는 선수단 구조조정에는 감독과 이견 조율은 할 수 있다. 그 외엔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 솔직히 내가 오자마자 지역 미디어들은 '김학범 감독의 경질 여부'를 묻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난 딱 잘라 말한다. '무한신뢰'라고. 2라운드에서 도민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존중이 바탕이 돼야 그 조직은 굴러간다.





지난 12일 선수단 상견례를 하고 있는 임 대표. 재창단을 강조하며 선수들에게 '미친 열정'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2일 선수단 상견례를 하고 있는 임 대표. 재창단을 강조하며 선수들에게 '미친 열정'을 강조하고 있다.


- 선수들에겐 어떤 부분을 강조하나.

내가 보기엔 우리 선수들의 꿈이 낮다. 스스로 프로이기 때문에 슬럼프가 되든 경기력 저하가 되든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답이 스스로 있는 게 프로라고 본다. 축구 선배로서 그 부분에 대해 특강을 통해 전달하려고 한다. 일대일 미팅도 필요하다면 하겠다. 사기를 올려주겠다. 강원 슬로건이 (손으로 가리키며) '투혼'이다. 내가 전반기 강원 경기를 모두 봤다. 그런데 투혼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후반기엔 '미친 열정'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기든 지든 관중이 보고 "쟤들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

- 국제심판과 사업을 통해 워낙 네트워크가 방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깜짝 선수 영입 얘기가 들려오던데.

무상 임대로 데려오려는 선수가 있다. 해당 구단과 MOU까지 생각하고 있다. 비시즌 때 전지훈련에도 도움을 받고자 한다. 한국 일본 중국에 용병 선수가 150명이 있는데 80%가 브라질 선수다. 그런데 몸값이 3~4배로 올라 있다. 사실 A급 선수는 죄다 유럽으로 빠진다. 브라질 외에도 남미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뚫지 않았던 국가와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80%까지 얘기가 됐다. 7월 동아시안컵 대회 기간에 2주 휴식기가 있는데, 유럽 한 팀과 친선경기를 추진 중이다. 도민이 원하는 수준으로 강원이 다가가지 못했는데, 국제경기를 통해 관심을 유도할 생각이다.

- 강원 도민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젊음'으로 다가가겠다는 말을 한 만큼 승리 공약은 어떨까.

좋다. (오래 생각하더니) 앞으로 선수단이 경기를 뛸 때마다 참여한다는 심정으로 1승을 거둘 때마다 월급에서 100만 원을 강원 도내에 있는 모든 기관에 기부하겠다. 다문화 가정과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으면 한다. 승률이 높아지면 기부액도 늘어날 것이다. 월급 전액을 기부하더라도 강원의 승률을 높이는 데 동참하겠다. 또한, 나도 한때 잘 나가는 국제 심판이었다. 축구동호회 또는 단체 500명 이상 홈구장을 찾는다면 요구에 따라 축구 심판을 봐 드리겠다. 이밖에도 선수들이 도민 여러분을 기쁘게 해드리고, 구단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앞장서서 하겠다. 하이힐 세리머니를 하라고 하면 하겠다.(웃음)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 창단 때처럼 사랑받는 구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강원은 임자 만났다.(웃음)

◆ [영상] 임은주 강원FC 대표, 도민들을 위한 편지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wRFN-699LeE)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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