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가르는 골든타임 '10초'
묻지마 범죄, 가만히 당할 수 없어... 내 몸 지키는 '셀프 디펜스' 관심 급증
[더팩트ㅣ임영무 기자] "무서운 세상이다. 삶이 흉흉하다 못해 흉측해졌다. 거리 다니기가 무서워졌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을까. 요즘 사람들은 뉴스 보기가 겁나고 세상이 참 흉흉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이상동기 범죄, 일명 '묻지마 범죄'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다음 사건의 피해자가 나와 내 가족, 주변 지인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소수의 생각만은 아니리라.
지난 7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서울 신림동 흉기 난동이 벌어진 이후 경기 분당의 서현역에서는 차량 돌진과 무차별 흉기 난동으로 1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또 사회적 분노가 가시기도 전 또다시 서울 신림동의 등산로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과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가 범죄예방 강화를 위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긴 했지만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지는 범죄를 어떻게 모두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일까 요즘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 몸 내가 지킨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흉기 위협과 폭행에 취약한 여성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7일. 저녁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기자 필리핀 전통 무술 '칼리&아르니스'를 기반으로 실전 호신술을 교육하는 칼리아르니스 강서 센터에는 여성 수강생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이곳 호신술 센터에서는 검(나이프), 쿠보탄(호신용 스틱), 톤파(긴 막대에 수직 손잡이가 달린 무기)등 전문 호신용품을 비롯해 가방, 우산, 펜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한 방어와 공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자 사범들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실제 괴한 역할을 자처했다. 사범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여성들을 몰아붙였다. 모형 흉기를 들고 여성의 몸 이곳 저곳을 겨냥했다.
하지만 수강생들은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오는 흉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가방, 핸드백, 책 등 방어 도구 등을 사용해 상대방 공격을 막아냈다. 특히 가방을 이용한 방어 방법은 꽤 효율적이었다. 핸드백이나 백팩은 흉기를 든 괴한의 시야를 방해하고 상대를 밀어 낼 수 있는 최적의 방어 수단이 됐다.
방어 후 이어진 얼굴 공격은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골든타임 10초를 벌기에 충분했다. 수강생과 1:1로 마주한 사범들은 흉기를 든 사람은 연습이 없다며 실전이라 생각하고 막아내라며 수강생들을 다그쳤다.
'이대로만 (방어)하면 죽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훈련은 짜여진 메뉴얼을 몸으로 익힌 뒤 실제 공격을 막아내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훈련의 반 이상은 시나리오가 없는 실전 훈련이었다.
2년 6개월째 수련 중이라는 직장인 고경아(32) 씨는 호신술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흉기 사건이 많아졌다"며 "이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무도술을 가르치는 호신술 도장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상대방을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함이 아닌 무기를 들고 덤비는 상대에 대항할 수 있는 훈련을 통해 몸을 지켜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한 "우리나라도 더이상 범죄 안전지대가 아닌것 같다" 라며 "치안을 믿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대비(괴한의 습격)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수련 4개월 차에 접어든 대학생 이윤희(24) 씨는 "(요즘)외부에 나갈때 주위를 살피게되고 긴장하게 된다"라며 "호신술을 배움으로써 조금 더 자유롭게 다닐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호신술을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한국아르니스협회 회장 겸 한국아르니스 강서 센터를 운영중인 전성용 회장은 "방어만이 상대방의 공격의지를 꺾고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방어를 여러차례 강조했다.
위협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가지고 있는 가방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인 호신용 장비인 쿠보탄이나 스틱 등을 가방에 소지하고 다니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생존율을 10% 올릴 수 있는 골든타임 10초가 가장 중요하다"며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무술을 지도하는 검도, 태권도, 주짓수 도장 등도 최근들어 실전 기술 교육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경기 군포시 대한검도회 군포검도관의 이현선 사범은 "상대적으로 힘 약한 여성들은 최대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상황을 벗어나는것이 최선"이라 밝히면서도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했다면 "휴대하고 있는 우산 등을 활용해 상대방의 손목을 내려치거나 공격을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무술은 오랫동안 연마해 온 기술이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때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면서 꾸준한 수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셀프 디펜스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호신술 센터에는 수강 문의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아르니스센터 전 회장은 "작년 대비 하루 1~2통 이던 입관 문의가 5~6회로 늘었고 회원가입은 50%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분간 회원 문의와 더불어 입관하는 수강생들도 많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호신술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호신용품의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신림역 칼부리 사건 이후인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3일까지의 호신용품 관련 거래 현황을 조사한 통계뱅크의 자료에 따르면 인터파크 쇼핑 거래액은 123%, 11번가 202%, G마켓의 매출은 243% 각각 증가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때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호신용품의 인기가 상승하며 제품이 품절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갈수록 범죄들이 과감하고 잔혹해지고 있다. 누구도 대낮의 평화로운 거리에서 정신이상자들의 난동을 지켜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범죄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시급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어느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여성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호신술을 실전에서 써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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