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경비원, 관리소장 갑질에 호소문 남기며 목숨 끊어
관리소장에게 책임 묻던 경비대장도 해고
경비원 3개월 재계약 족쇄…"이젠 누구 하나 나서려 하지 않아"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A 아파트에서 일하던 70대 경비노동자가 관리소장의 갑질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70여 일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관리소장을 상대로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A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일한 70대 경비원 박 모 씨가 '관리소장의 갑질로 힘들다'는 취지의 호소문을 휴대전화로 동료들에게 전송한 뒤 해당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했다.
고인은 지난 3월 8일 갑자기 경비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신입 경비원의 실수와 화재경보기 오작동 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였다.
박 씨가 사망하기 6일 전 아파트 단지를 청소하던 70대 김 모 씨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발견됐는데, 숨지기 전날 아파트 청소 용역업체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의 죽음에 관리소장의 책임을 묻던 이길재 경비대장도 3월 말 해고됐다. 이후 해당 아파트 경비원들은 해고된 경비대장 이 씨의 원직 복직과 관리소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왔다.
<더팩트>는 지난 24일과 25일 해당 아파트를 다시 찾았다. 이 경비대장을 비롯한 경비원들은 박 씨가 사망한 지 2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일 휴게시간(오후 12시부터 1시 반)을 이용해 집회를 하고 있었다.
이길재 경비대장은 매일 출근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제일 힘없고 백 없는 경비원이 죽었다. 이 책임을 누구 하나 지려고 한 사람이 없다"면서 "제 복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책임감 때문이다. 내 동료가 죽었는데, 경비대장인 내가 나 몰라라 하면 마음이 편하겠나"라고 말했다.
그사이 또 다른 경비노동자도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했다고 밝혔다.
A 아파트에서 5년간 근무한 홍성준 경비원은 휴게시간에 아파트 단지 내에 해고된 경비대장의 복직 요구와 경비원들이 소속돼 있는 B 회사를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가 강제 인사명령을 받았다.
홍 경비원은 관리소장이 부임해 오자마자 갑질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퇴근 시간이 30분(기존 퇴근 시간은 익일 오전 6시) 늘어났고, 퇴근 전 근무자와 교대자가 나란히 앉아 인증사진까지 찍게 했다. 흰 머리의 근무자들에게 염색을 지시하고, 아파트 정문에서 끝동 12동까지 경비원들을 일렬로 도열해 몇 시간씩 주차관리도 시켰다.
1년마다 재계약하던 기존 계약방식도 3개월 단위로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부당한 인사권 남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홍 씨는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비원은 "지금도 (관리소장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가 쉬는 시간에 시위에 참여하면 (소장 측 사람이) 카메라로 찍는다"고 귀띔했다.
그는 3개월 재계약이라는 족쇄 때문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면서도 "박 씨가 여기 78명 경비원을 대신해 십자가를 진 셈인데, 십자가를 지나마나 해결이 안 되니 참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비원 역시 고용불안을 호소하며 "업체와 관리소장이 바뀌고 1월에서 3월 31일까지, 다시 6월 30일까지 재계약했다. 그래도 노동부(고용노동부)에 안 걸린다더라"라고 말했다.
홍 경비원은 "(박 씨가) 오죽하면 뛰어내렸겠나. 그 순간의 모멸감 때문"이라며 "그동안 관리소장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가족들이 고소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70여 일 만에 산재 고소·고발을 위해 유가족이 나타났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집회가 길어진 만큼 주민들의 관심도 줄어드는 모양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10여 명의 주민을 만나 물었으나 "모른다. 관심이 없다"라거나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입장을 밝힌 한 주민은 "마음이 안 좋다"면서도 "경비원이 사망하신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들이 등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나 싶은 섭섭함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망 사건으로 (관리소장이) 도의적으로 물러나시고 정리될 줄 알았는데 요즘은 그냥 버티는 사람이 승자인지, 어쨌든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C소장의 출근 여부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근무는 잘 나오고 있다"면서도 "오늘은 안된다. 기자들과 만날 일은 없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아파트 관리소장 C씨 등 4명은 해고된 경비대장 이길재 씨와 박현수 민주일반노조 조직부장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접근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씨와 노조가 관리사무소와 관할 아파트 관리 책임지역 및 아파트 입주민들의 사생활에 영향을 주는 지역에서 불법집회와 시위를 해 관리소장과 다른 관리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2020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폭행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일명 '경비원 갑질 방지법' 인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에는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와 관리주체가 경비원을 상대로 업무 외의 부당한 지시 등을 금지하고 있다.
취재진이 이틀간 만난 경비원들은 하나같이 "빨리 일이 해결돼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비원들은 갑질에 신음하고 있다.
최근 지속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각지대에 있는 아파트 입주민 등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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