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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단독 그순간③] 노태우 전 대통령 '뻗치기'…"졸면 죽는다. 찍어라"

  • 포토 | 2015-12-27 05:00


'약 5년 만의 언론 노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옥숙 여사가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는 모습을 단독으로 포착했다. 이 사진으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약 5년 만에 언론에 노출됐다. /서울대병원=이덕인 기자
'약 5년 만의 언론 노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옥숙 여사가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는 모습을 단독으로 포착했다. 이 사진으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약 5년 만에 언론에 노출됐다. /서울대병원=이덕인 기자

팩트를 찾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취재하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다. 가슴 떨리던 순간도 있었고, 아쉬움에 탄성을 자아내던 순간도 있었다. 사진으로 다 표현하지 못한 현장의 순간은 어땠을까. <더팩트>사진기자들이 한 해를 정리하며 단독 취재 과정에서 느낀 가장 인상적 장면을 선정,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최근 퇴원 단독 포착…'나만 아는 이야기'

[더팩트 | 이덕인 기자] "졸면 죽는다. 찍어라!"

더팩트 사진팀에서 나름 카리스마(?)를 담당하는 배정한 선배가 취재 '뻗치기(무작정 현장에서 대기하는 취재 방식 )' 중, 졸음과 싸우고 있는 저를 보고 던진 말입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며칠간의 고행 끝에 지난 21일 선배들과 함께 취재한 단독 기사를 '13년 투병' 노태우 전 대통령 근황 포착, '걱정마세요' 란 제목으로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진팀으로 부서 이동을 한 지 겨우 두 달 만에 건진 단독이라 선배들은 체질이란 말로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영상부에서 영상취재와 편집을 하던 제게 '사진기자'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기회가 왔고, 결국 받아들이기로 한 게 생각보다 일찍 단독 기사의 출고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하지만 '장면' 단위 작업이 익숙해져 있는 저에게 찰나의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전달하는 일은 어렵고 또 어려웠죠. 조직화된 <더팩트> 사진팀의 체계적 시스템과 현장 교육이 아니었다면 아마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부푼(?) 꿈을 갖고 이동한 서울대병원로 입구.
'지금 만나러 갑니다' 부푼(?) 꿈을 갖고 이동한 서울대병원로 입구.

12월 19일 오전 4시. 힘들게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전기장판을 껐습니다. 집을 나선 뒤 얼음방 같은 차 안에 몸을 실었습니다. 주말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원할 것 같다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울대병원에 도착하자 곧바로 현장 취재팀(배정한 문병희 이덕인)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 경로를 파악, 세 곳의 장소에 '뻗치기' 포인트를 정했습니다.

오전 6시.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뻗치기(아직도 적응 못 한 취재 방식)가 시작됐고, 제가 위치한 곳은 퇴원 경로로 가장 가능성이 큰 지하 주차장 연결 병실 입구였습니다.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우리는 연락을 통해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오전 9시 10분. 전날의 야근이 힘들었는지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카리스마' 배정한 선배가 내 옆에 와 있었습니다. 아뿔싸, 순간 꿈인 듯했죠. 하지만 배 선배는 짧은 쓴소리와 함께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던져 주고 갔습니다. 따뜻하고 맛있었습니다.

칼라콘(러버콘)을 옆으로 치우자, 노 전 대통령의 퇴원을 도울 차량이 그곳에 주차했다.
칼라콘(러버콘)을 옆으로 치우자, 노 전 대통령의 퇴원을 도울 차량이 그곳에 주차했다.

'그에겐 지긋한 병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짐으로 보이는 휠체어와 물건이 나오고 있다.
'그에겐 지긋한 병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짐으로 보이는 휠체어와 물건이 나오고 있다.

오후 1시 30분. 제 앞에 정장을 입은 경호원과 병원 보안요원이 수상해 보였습니다. 경호원은 무전을 하며 주변을 의식했고, 조금 뒤 카니발 승합차 두 대가 주차장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배 선배는 즉각 1층 현관 입구로 이동했고, 문병희 선배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내 차로 합류했습니다. 차를 가까이(?) 주차한 덕분에 문 선배와 나는 화장실도 못 가는 신세가 됐습니다.

'찍을 테면 찍어봐라'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는 노 전 대통령의 관계자들과 차량.
'찍을 테면 찍어봐라'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는 노 전 대통령의 관계자들과 차량.

'기자분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출구에서 취재진을 의식하는 노 전 대통령의 관계자들.
'기자분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출구에서 취재진을 의식하는 노 전 대통령의 관계자들.

노 전 대통령의 짐과 관계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문병희 선배는 그들 앞으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모든 시선이 문 선배에게 집중될 때 저는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외투에 숨기고 반대편으로 이동, 주차된 차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오후 2시 20분. 우리는 관계자들에게 발각됐습니다. ㅠㅠ

관계자와 취재진 서로 트러블은 없었지만, 관계 차들과 인원이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가릴 것이라고는 불 보듯 뻔했죠. 그때, 취재 기자 출신 문 선배의 시나리오가 빛을 발휘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정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쭈그린 상태에서 운동화 끈을 몇 번이나 다시 묶었는지.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노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옥숙.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노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옥숙.

취재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노 전 대통령.
취재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노 전 대통령.

'후드티에 모자, 그리고 선글라스' 걱정과는 달리 정정해 보이는 노 전 대통령.
'후드티에 모자, 그리고 선글라스' 걱정과는 달리 정정해 보이는 노 전 대통령.

오후 3시.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였고, 순간적으로 일어나 셔터를 눌렀습니다. 수년간 모습을 안 보였던 '장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고, 반대편 문 선배는 더 격렬하게 액션(?)을 취했습니다.

'찰칵찰칵'

저는 셔터를 눌렀고, 외투에 카메라를 숨겼습니다. '장군 포스'는 여전하더군요.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선명하게 제 카메라 안에 있었습니다. 셔터를 누를 때 한 번, 초점이 맞은 사진을 확인할 때 한 번, 그렇게 두 번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수년간 볼 수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병원을 떠났다.
수년간 볼 수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병원을 떠났다.

우리는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의 생사와 현 상태를 확인했고, '궁금해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제보가 입수되고 있고, 저희는 '팩트'를 알리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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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팀 phot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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