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그만두고 트로트 전향 15년, "후회없는 성공한 가수 보람"
[더팩트|강일홍 기자] 박현빈(37·박지웅)은 천성적으로 밝다. 성격적으로 진중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지닌 그는 누구와도 적응이 가능한 쾌활 모드다. 팬들은 그와 팬심으로 한번 인연을 맺으면 나이가 들어도 바꾸지 못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특이하게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모팬들이 '오빠'를 연호해주는 '유일한' 남자 가수다.
박현빈의 이런 자유분방함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진 가족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색소폰 연주자인 아버지와 유명 노래강사인 어머니 정성을(당시 건반 연주) 씨는 음악을 함께하다 만나 결혼했다. 덕분에 그는 유년시절과 학창시절까지 줄곧 음악과 더불어 살았다.
외할아버지(음악교사 출신)와 외할머니(노래강사)가 음악 인생을 살았고, 이모 정진향 씨(배우 이윤지 어머니) 역시 현직 노래강사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가 트로트로 방향을 튼 것도 이런 가족의 영향을 받았다. 박현빈은 "편견과 틀을 깨고 싶어 대중가수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데뷔 15년, 무대 위에서 내뿜는 그의 생동감 넘치는 활력(活力)과 기(氣)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돌 트로트 원조'다운 면모 그대로다. 트로트계에 젊은 남자가수의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가수 박현빈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스페셜 인터뷰는 설연휴 직전인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언제 어디서든 유쾌한 무대로 관객들을 들었다놨다 하는 열정의 가수다. 말 그대로 타고났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봐주신다는 것만으로 저는 이미 성공한 가수입니다. 무대 위에서 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서도 그게 당연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무덤덤했던 게 사실이에요. 다른 분도 아니고 강 기자님이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다시 한번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게 되네요. 강 기자님은 '최대한 편하고 가볍게'라고 하시지만, 솔직히 저는 정색하고 인터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거든요.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성격은 보이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신중한 스타일이에요.
박현빈은 '타고났다'는 표현에 대해 "보기에 따라 여러가지 평가를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성격과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무대 위에 올라가면 관객이 기대하는 이상의 유쾌한 즐거움을 내뿜는게 가수로서 신념이라고 했다. 다만, 그런 보여지는 것과 달리 본래 성격은 매우 조심스러운 편이라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가 가요계 '유쾌한 가수의 아이콘'처럼 비치는 것은 엄청난 사전 연습의 결과다. 그는 "적어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라면 그 이상의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온 집안이 음악과는 뗄 수 없는 분위기로 유명하다. 특히 성악을 전공한 뒤 트로트로 전향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가 군악대에 근무하셨어요. 군전역 후엔 클럽에서 색소폰을 연주하셨는데, 그때 건반 연주자인 엄마를 만난거죠. 당시엔 카바레 같은 곳에서 건반을 연주는 여성이 많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고보면 어머니도 어려서부터 음악을 가까이 하신 부모님(외조부모) 영향을 받으신 거죠. 어머니는 이모님이랑 자매가 나란히 노래강사를 하고 계시는데 제가 트로트를 결심할 때도 이 두 분 영향이 가장 컸어요. 아마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이름없는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박현빈의 부모는 둘다 음악인이다. 결혼 직전까지 서울 영등포에 있던 '금마차' 카바레에서 각각 색소폰과 건반을 연주했다. 어머니 정성을 씨는 지금도 그의 친 이모와 함께 현역 노래강사로 활동 중이다. 타 지역 특별 초빙 강사로 마이크를 잡으면 개런티가 보장될 만큼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셀럽이다. 이모 정진향 씨는 배우 이윤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가 음악선생님이었고 외할머니 역시 음악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의 친형 박지수 씨는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바리톤)로 활동 중이다.
-요즘 신곡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나자연')를 부르며 '건강 웰빙 전도사'로 대중과 교감하고 있다. 노래는 실제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한 음악인이 만들었다고 들었다.
맞습니다. 작사 작곡하신 분은 이춘석 씨인데 해발 800m 고지의 깊은 산속에 거주하고 있어요. 진짜 자연인으로 살고 계신 분이 직접 만든 곡이라서 더 실감이 나고 애착이 가요. 80년대 언더에서 많이 활동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꽤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다고 해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생전 술을 한잔 하시고 기분이 좋으면 '쨍하고 해뜰날'을 가끔 부르셨다는데 당시 이춘석 씨가 워낙 베테랑이어서 연주를 도맡았다고 들었어요.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여전히 신체 건강하신 분인데 자연이 좋아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고 있는거죠.
'♭♩야호 야호 나는 자연인이다/ 가슴이 뛴다 내 가슴이 뛴다/ 거친 세상 응어리진 내 마음/ 인생의 봄날이 찾아왔네/ 돈 있으면 뭐하고 집 좋으면 뭐하냐/ 야호 야호 메아리가 울리는 곳/ 야호 야호 나는 자연인이다♬♪' 박현빈의 신곡 '나자연'은 종편채널 MBN 동명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삽입곡이기도 하다. 덕분에 박현빈은 '나자연' 방송 진행자들이 앞장서 노래를 부르고 홍보해주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윤택과는 '전국노래자랑'에 듀엣으로 두번 출연했고, 이승윤과는 '가요무대'에서 함께 열창했다. 윤택은 박현빈의 디너콘서트에도 깜짝 출연해 다시 한번 팬들과 깊은 교감을 주고받았다.
-지난해부터 트로트 열기가 불면서 기성 가수들한테도 변화가 일고 있다. 데뷔할 무렵만 하더라도 트로트계에는 젊은 남자 가수가 드물었다.
최근 몇년 사이 가요계에 새로 진입한 가수들을 기준으로 하면 저는 고참 가수예요. 2000년대 중반에 데뷔했는데 그때만 해도 젊은 남자가수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등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리던 선배님들 외엔 TV에 자주 출연하는 남자가수는 제가 유일했어요. 그만큼 불모지로 여겼던 곳이에요. 올해 '미스터트롯'이란 프로그램에 마스터로 참여한 뒤 솔직히 저도 많이 놀랐어요. 트로트 층이 이렇게 폭넓고 광범위한 줄은 몰랐거든요.
박현빈은 2006년 4월에 첫 싱글 앨범을 발표하고 2006년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월드컵 버전 '빠라빠빠'로 활동하며 단번에 인기를 거머쥐었다. 당시 축구장 그라운드서 75명의 대규모 안무 팀(모델 50명+브라스밴드 백댄서 25명)이 꼭짓점 댄스쇼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데뷔 당시 트로트 가수 장윤정과 같은 소속사여서 '남자 장윤정'으로 불렸다. 현재 인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TV 조선 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의 마스터로 참여하고 있는 그는 "실력파 신진 가수들과 함께 다시한번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계기를 만들고 싶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배우 이윤지와는 이종사촌 사이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친 오누이처럼 지냈다고 하는데 각자 결혼한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윤지와 저는 보통 이종사촌들과는 좀 달라요. 엄마와 이모가 워낙 단짝이라서 결혼 후에도 바로 이웃집서 살았고, 우리도 유년시절 소꼽장난부터 자연스럽게 붙어살다시피 했죠. 학창 시절 윤지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도 내 전화를 받으면 소곤소곤 수다를 떨 정도였어요. 저한테 하도 다정다감해 친구들이 '친 오빠도 아닌데 사촌 오빠랑 뭘 그리 할 얘기가 많으냐"며 핀잔을 줬다고 해요. 물론 지금도 이런 친밀도는 변함이 전혀 없죠. 주로 제가 많은 걸 양보하고 가르쳐주는 입장인데, 데뷔 때는 윤지가 저보다 선배여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박현빈은 2015년 8월 서울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4살 연하의 신부 김주희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당시 남진이 주례를 하고 사촌 이윤지가 축가를 불렀다. 먼저 결혼을 한 이윤지는 박현빈의 히트곡 '샤방샤방'을 축가로 선택해 하객들 앞에 다시한번 애틋한 오누이 사이를 확인시켰다. 박현빈은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하는 윤지를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면서 "둘 다 평소 성격은 비교적 차분한 편인데 카메라 앞에서 돌변하는 건 닮았다"고 웃었다. 이윤지는 최근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에 딸 라니와 출연해 반전 예능감을 발휘하며 누리꾼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본명이 박지웅인데 가수 박현빈이란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
저를 발탁해 가요계로 이끌어주신 소속사 대표님이 당시 유명한 배우 이름을 빌려쓰자고 적극 추천했어요. 이름에는 누구나 자신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각기 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잖아요. 막 신인가수로 활동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선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이미지가 굳기 때문에 부르기 쉬우면서도 빠르게 기억될 이름이 절실했어요. 한참 지나서야 알았지만 연예계에선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더라고요. 그만큼 작명이 중요하죠. 직접 이름을 불러보니 어색하긴 커녕 아주 그럴듯하더라고요. 연예계에 없는 완전 새로운 이름이 맘에 쏙 들었어요.
2006년 박현빈이 데뷔를 앞 둘 당시 방송가의 가장 큰 이슈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남녀 주인공을 연기한 김선아와 현빈이 한창 주목을 받던 시기다. 당시 소속사 홍익선 대표(현 IW엔터테인먼트)가 TV 드라마를 보다가 "지금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현빈'을 차용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 박현빈도 자신의 성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현빈'이란 유명 스타배우의 이름을 함께 쓰는 게 내심 싫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성악을 하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면서 발성을 바꾸느라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클래식 공부를 했기 때문에 트로트 가수가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대학에서도 성악을 전공했으니까요. 물론 부모님께서 모두 대중가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죠. 군복무를 공군 군악대에서 했는데 대중음악을 주로 해온 선후임들과 교감하면서 트로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더라고요. 전역 후 광명시민가요제나 왕십리가요제 같은 지자체 노래자랑에 몇번 도전을 했다가 모두 고배를 마셨어요. 나름 체계적으로 음악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굴욕이었어요. 발성 자체가 달랐기 때문인데 정식 음반을 내고 데뷔하기까지 이를 극복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박현빈은 심지가 굳은 의리맨이다. 그는 한때 장윤정 등이 소속된 국내 최대 트로트 기획사에 몸담았지만 소속사가 내부 분열로 공중분해되면서 모두가 이해타산을 따져 뿔뿔이 흩어졌다. 유일하게 박현빈만 어려웠던 신인시절 도움을 준 홍익선 대표를 선택했다.
"홍 사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신인가수들과 비교해도 저는 유독 처지가 곤궁했어요. 내세울 것도 기댈 것도 없이 막막했죠. 말 그대로 몸만 가서 대형 가수로 거듭났고, 가족들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벗었으니 회사가 힘들 때 저라도 끝까지 남아 작은 힘이 돼주고 싶었어요."
이런 선택은 인기(몸값)를 앞세워 새로운 소속사로 쉽게 이동하는 가요계 생리상 매우 드문 케이스다. 가수 입장에선 고액 계약금을 받거나 유리한 수익분배율로 계약해 이익을 얻을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현빈은 "혼자만의 독주가 아니라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현빈에게는 열성 이모 누나팬들이 많다. 10여년째 이어져온 디너쇼가 늘 성황을 이루는 데는 이런 충성 팬심 덕분이다. 겉으로 보이는 밝고 개구진 모습과 달리 음악 욕심도 많다. 그는 "이제서야 객석의 한분 한분 얼굴 표정이 또렷이 보일 만큼 스스로 공연을 즐기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유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내뿜은 박현빈, 필자도 미처 몰랐던 그의 의리와 열정이 새삼 믿음직스럽게 비쳤다.
eel@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