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뿌린 씨앗, 연기 생활 40년 만에 '만개'..."배우가 아니면 느끼지 못 하는 행복에 감사"
[더팩트|강일홍 기자] 배우 김응수(58)는 수많은 작품에서 차진 대사와 애드리브로 조연 단역 가리지 않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배우다. 그가 요즘 인기 역주행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무려 13년이나 지난 영화 '타짜' 곽철용의 강렬한 임팩트 대사가 재소환되며 부활했다. 그의 인기 원천은 놀랍게도 2030의 젊은세대다. 최근 각종 SNS 등에서 곽철용 명대사들이 리바이벌 패러디로 확대 생산되면서다. '어이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내가 달건이 생활을 열일곱에 시작했다' '묻고 더블로 가, 너 목숨 걸고 베팅할 수 있겠냐?'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이런 열기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의 능청스러운 오만복 사장 연기로 다시 불타올랐다. 누리꾼들은 '타짜' 곽철용을 통해 새로운 '오만복 패러디'를 탄생시켰다. '미쓰리, 나도 순정이 있다' '내가 청소기를 열일곱부터 만들었다' '청일전자는 무너졌냐' '대기업놈들아 나도 청소기 있다'.
신드롬의 결과는 곧 인기와 명성, 그리고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는 '곽철용의 대세 인기몰이'에 들어간 지 불과 한 두 달 사이 무려 87개의 CF 출연 제의를 받을 만큼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층 감성과 트렌드에 맞는 온라인 마케팅 대상 층이 대부분이어서 아이돌스타 인기를 능가한다.
요즘 그는 하루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쪼개 움직인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곳은 몰라도 더팩트 강 기자님 스페셜인터뷰는 꼭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광고주와의 점심 약속과 다음 촬영 스케줄 중간에 짧지만 임팩트 있게 시간을 할애했다. 인터뷰는 지난 주말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인기가 폭발한 배경은 영화 '타짜' 속 곽철용이란 인물이다. 젊은 층에서 왜 이렇게 열광한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타짜' 속 곽철용은 젠틀 그 자체입니다. 장사꾼은 장사꾼의 윤리가 있고, 공무원은 공무원의 윤리가 있듯 곽철용도 나름의 윤리를 갖고 있습니다. 비겁하거나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아요. 신분은 건달이지만 우직하리만치 꼭 필요한 말, 꼭 해야할 말만 합니다. 결코 젠틀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죠.
"나 깡패 아니다. 적금 붓고, 보험 넣는 사람이다.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네가 내 순정을 짓밟으면 마! 그땐 깡패가 되는거야! 내가 깡패처럼 널 납치라도 하랴?" 13년 전 '타짜' 개봉 직후부터 젊은 관객들이 조연급 인물 '곽철용'의 맛깔스런 대사에 주목했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꾸준히 패러디화 됐고, 올해 '타짜3'(원 아이드잭) 개봉 후 전설처럼 더 거세게 리바이벌되기 시작했다. 그는 또 "거짓말 하고 속이고, 힘과 배경으로 반칙을 일삼는 비뚤어진 세상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반발이 곧 곽철용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CF제의가 무려 87개나 쏟아졌다고 들었다. CF 출연은 스타로 대접받는 인기의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다. 어떤 종류가 가장 많나?
그렇게 많은 광고가 들어온 사실만으로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저도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굳이 설명을 하자면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입니다. 온라인 소통에 익숙한 세대들은 오직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로 관심사의 기준을 삼잖아요. 저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바로 곽철용 같은 스타일을 우직하게 대변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온라인게임 관련 제품이 23개로 가장 많고, '비비큐' '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9개, 화장품 8개 순이에요. 이중 분야별로 선택해 조율하고 있어요. CF라는게 러브콜이 들어왔다고 다 찍을 수는 없으니까요.
김응수에게 최근 두 달간 쏟아진 CF는 소속사에서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만큼 많다. 너무 많다 보니 제품군 별로 정리 나열할 정도다. 온라인게임군, 패스트프랜차이즈군, 화장품군, 전자제품군, 건강기능식품군, 의약품군, 유통업체군, 이동통신군, 의류업체군, 금융권군, 주유업체군, 침구류군, 유제품군 등이다. CF는 각 직군별로 선별하고 조율해 일부 촬영을 마쳤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외교통상부 'FTA'와 보건복지부 '금연캠페인' 등 공익광고는 별개다.
-13년 전 '타짜' 속의 인물 곽철용과 지난주 종영한 '청일전자 미쓰리'의 오만복은 어떤 특별한 매력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도박판의 건달을 두고 무슨 매력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미화돼선 안되겠죠. 다만 작품 속 캐릭터 자체로만 보면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젠틀한 매력이 있어요. 주먹이라는 강력한 힘이 있어도 약자에게 반칙을 쓰지 않잖아요. 그 점에서 곽철용은 충분한 매력의 사나이입니다. 드라마 속 오만복은 또다른 인생관을 가진 인물이에요. 생존을 위해 대기업 앞에선 확실히 을이 돼 굽신거리고, 반대로 직원들한테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갑질을 하죠.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다혈질이면서 짠내 나는 인간미의 매력이 있어요.
'타짜' 속의 곽철용은 강한 남자다. 그는 17살 때부터 '달건이' 생활을 하면서 잘난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내고 회장자리까지 올랐다. 두목이 아닌 '회장님'으로 불리는 그는 볼링장이나 불법 도박장 규모만으로 얼마나 고단하고 험난한 길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알 수 있다. 뜯긴 돈에 있어선 미련없이 떠나는 듯하지만 어떻게든 무슨 짓을 해서든 다시 따는 악착같은 면모를 갖췄다. 그는 호구였지만 남자다운 철학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의 적당한 꼰대질, 배신자를 찾아내는 추진력, 적을 끌어들이는 포용력, 그리고 무엇보다 일관성과 추진력도 있다. '묻고 더블로 가!'
-얼마 전 MBC 리얼토크쇼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언(철) 드래곤(용)의 세상이 왔다'고 선언했다. 스스로 인기를 실감하는가?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스타가 됐더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올해 연기생활 40년입니다. 웬만한 일에 놀랄 일이 없어요. 한데 곽철용 신드롬에는 저도 정말 뭐가 뭔지 모를 만큼 어리둥절합니다.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만나는 젊은 친구들로부터 사인 요청이 쏟아집니다. 과거에 없는 현상인데, 가히 쓰나미급입니다. 곽철용 때문에 영화를 10번 봤다거나 스무 번을 봤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요. 곽철용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조금씩 불씨가 지펴져 있었다곤 해도 환갑이 다 된 나이가 돼 아이돌급 인기를 누릴 줄은 몰랐어요.
그는 '곽철용 캐릭터의 인기비결'에 대해서는 "젊은 친구들은 일방 채널인 TV를 잘 보지 않는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는 쌍방채널에 익숙하다. 그런 마당에 젊은이들은 자신의 고민이나 현실적 답답한 상황을 '곽철용 패러디'를 통해 분출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재미와 흥미를 꼽았다. 그는 "곽철용의 대사가 현실 상황과 비교돼 반전 재미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응수는 "우연일지라도 13년 전 뿌려놓은 씨앗이 만개했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동안 남긴 숱한 명대사들이 회자되고 있다. 극중 인물 곽철용이나 오만복이 뱉는 대사 중에는 애드리브도 상당수 들어있다고 들었다.
그건 잘못 알려진 부분이에요. 영화나 드라마는 사전 각본과 시나리오대로 준비된 대사를 얼마나 리얼하게 잘 해내느냐가 중요해요. 오랜 연기경험을 통해 몸에 밴 철칙입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기본 줄기를 벗어나지 않는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가 통용될 때도 있죠. 가령 '마포대교는 무너졌나' 같은 대사는 연기에 깊이 몰입돼 튀어나온 것인데 예상 밖의 긍정적 효과를 낸 케이스예요. 관객들이 공감하고 매끄럽게 받아들였으니까요.
김응수는 "마포대교는 무너졌냐"같은 명대사는 당시 "운전기사 역이 애드리브를 하길래 나도 순발력을 발휘해 애드리브 한 것"이라고 했다. 영화 '타짜' 속 곽철용은 '소화 안되는 돈'을 받기 위해 화란을 납치한 뒤 "칼은 내가 쥐고 있으니 절대 배신하지 못할 것"이라고 안심한다. 하지만 100명을 제치고 회장까지 올라간 곽철용은 결국 중간보스의 운명이었다. 마포대교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결국 고니에게 제침을 당한 곽철용은 마포대교를 건너지 못했다.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연기자로서 존재감을 키우는 매개체는 드라마나 영화다. 한데 연극무대에 훨씬 더 애착을 갖는다고 들었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극이든 사실 제가 출연한 작품은 다 자식처럼 소중하죠.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분신이니까요. 그럼에도 연극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드라마나 영화는 휘발성이 있다면 연극은 어떤 배역이든 정성들여 만들고 보듬어가는 과정이 있어요. 같은 배역이라도 반복해서 연기할수록 맛이 달라지거든요. 수개월 연습을 하다보면 새로운 발견이 있고, 돈이나 다른 대가로 환산할 수 없는 깊은 보람과 기쁨을 만끽하게 되죠.
김응수는 80년대 초인 대학 1학년 때 연극계로 데뷔했다. 극단 '목화' 출신 배우다. 오랫동안 이 극단에 몸을 담으면서 순수 창작극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는 "배우가 무대에서 번안극을 전혀 안할 수는 없지만 창작극과는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면서 "가요계에도 금지곡이 있었듯이 스크린 쿼터제나 검열 등 제약이 많았던 80년대는 영화보다 연극무대가 편했다"고 말했다. 박영규 손병호 김병옥 장영남 유해진 성지루 정은표 등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목화' 출신이다.
-배우도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빠른 걷기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다고 들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고, 배우는 연기로 모든 걸 설명합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연기를 할 수가 없죠. 젊은 시절에야 밤새 술 마시고도 다음날 거뜬하게 촬영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지만, 지금은 관리를 해야할 나이예요. 땀 흘리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무엇보다 술을 많이 자제하고 있어요. 술은 적당히 먹으면 최고의 명약이지만 과하면 뇌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맑고 상쾌한 정신이 꼭 필요한 연기에는 그야말로 독약입니다.
김응수는 틈날 때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북한산 자락 진관사까지 뛰는 운동을 한다. 빠르게 걷거나 달리면서 땀을 흠뻑 흘리는 게 체력보강의 비결이다. 연기에 뛰어든 이후 배우들 사이에 애주가로 정평이 난 그다. 지금은 술보다는 여행을 다니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한다. 그는 "젊어서는 술 마시면서 인간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매개체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고독하게 살아야할 나이"라고 했다.
요즘 그는 '김응수' 보다는 영화 '타짜 속 '곽철용'이란 이름에 더 익숙하다. 곽철용은 건달로 시작해 사업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흔한 캐릭터일 수도 있는 곽철용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완벽한 몰입 연기다. 시간이 갈수록 배우 김응수가 빛나는 이유다.
청소년 심리학자들도 김응수의 '곽철용 신드롬'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 속 인물 곽철용을 활용한 패러디가 책이나 TV 보다는 유튜브 등 SNS를 통한 쌍방채널에 관심을 갖는 세대에 의외의 긍정적 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소통의 공감대 역할 때문이다.
김응수는 때 아닌 곽철용 열풍이 불면서 각종 예능과 인터뷰, 광고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많은 분들한테, 그것도 젊은 세대들한테 평가받고 인정받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줄 몰랐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예능 출연을 자제하고 들어온 CF도 가능한 최소화해 숫자를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정의 대중스타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깊은 내공을 쌓은 배우답게 신드롬을 일으킨 이후 더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성격상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거나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오랜 배우생활을 지켜온 남자다운 면모는 분신같은 '곽철용'과 도 얼핏 닮은 구석이 없지 않다. 줄곧 진지한 모습을 잃지 않던 그는 "배우가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요즘 느낀다"며 인터뷰 말미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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