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스런' 유쾌하고 편안한 방송진행, "제 본 모습 찾았어요"
[더팩트|강일홍 기자] 정선희(47)는 연예계에서 꼽는 대표적인 '착한 연예인' 중 한명이다. 또 늘 밝은 이미지와 긍정적 마인드로 주변사람들과 교감하고, 센스있는 입담과 선한 이미지로 대중적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익살 예능인이다.
1992년 SBS 1기 공채 개그우먼으로 방송에 발을 들여놓은 뒤 MBC KBS 등 지상파 3사의 단골 스카우트 대상이 될 만큼 끼와 재치의 대명사로 정평이 났다. 데뷔 당시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하나인 딱따구리 흉내로 한동안 '딱따구리'라는 별칭이 붙어다녔다.
그늘이라곤 없어보일 그에게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고난의 시기와 시련이 있었다. 11년 전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 남편의 비극은 지금도 치명적 아픔으로 남아있다. 故 안재환은 거액의 부채에 시달리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정선희는 이후 온갖 거짓 소문에 휩사이며 좌절하고 절망했다.
필자는 데뷔 시절부터 오랜 기간 교감하며 그를 지켜봤고, 예능프로그램(TV조선 '별별톡쇼')에 패널로도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한층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거듭난 그의 진짜 속내가 궁금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우선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방송에 비치는 모습이 매우 편안해 보인다. 비결이라도 있나.
그렇게 보이신다니 저도 기분 좋네요. 안그래도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예전엔 어딘가 모르게 그늘진 모습이 있다고들 했거든요. 겉으로 아무리 아닌 척해봐도, 위장된 표정으로 감출 수는 없는가 봐요.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관건인 것 같아요. 수긍하고 내려놓으니 저절로 편안해지더라고요.
정선희는 SBS 'TV동물농장'과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시대' 등 두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전성기 시절 9개 프로그램(생방 2개포함)에 출연하던 때와 비교하면 한가로울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빡빡한 스케줄로 바삐 움직인다. 5년째 진행중인 크리스천 C채널 '회복'은 그가 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잡아준 끈이다. 또 매주 2~3차례씩 이어가고 있는 강연활동 외에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인 1인방송 팟캐스트로도 뛰고 있다.
-현재 출연 중인 프로그램들은 모두 색깔이 분명하다. 다작 출연을 하지 않는 대신 시청취자들한테는 더 인상깊게 각인돼 있다.
과연 정곡을 찌르시네요. (신)동엽 오빠와 함께 진행하는 '동물농장'은 사실 저도 원년 멤버예요. 1999년부터 9년간 방송 후 2008년부터 5년간 쉬고 2013년에 복귀했어요. 다시 돌아와 6년째 진행 중이니 그냥 가족 같은 느낌이죠. 솔직히 제 개인사로 도중하차 했기 때문에 같은 프로그램에 복귀하리란 생각은 꿈도 못꿨어요. '지금은 라디오시대'도 저한테는 의미가 남달라요. 연예계 활동을 한 이후 저에게 자존감을 극대화해준 은인 같은 프로그램이거든요.
SBS 'TV 동물농장'은 2001년 5월부터 방영돼 올해로 19년째 롱런하고 있는 동물 전문 프로그램이다. 정선희는 방송 첫회부터 출연했다. 하지만 2008년 고 안재환 사망 이후 논란에 휘말리며 9년 만에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는 "동물들이 열일 하는 프로그램이라 누가 해도 상관없는데 5년의 공백을 가진 제가 다시 돌아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면서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신동엽과의 찰떡호흡을 꼽았다.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라디오프로그램 중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부담은 없나?
청취자들로부터 워낙 많은 사랑을 받아온 프로그램이잖아요. 한때 라디오 전체 1위를 했던 프로그램인 만큼 다시 정상에 올려놔야죠. 청취자 사연을 주로 소개하다보니 재미를 위한 순발력이나 양념을 치는 것 못지 않게 사연을 얼마나 정확하면서도 감칠맛나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해요. 청취자들과 최대한 가까이 교감하며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지만 늘 긴장을 늦추지 않죠.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매일 오후 4시 5분부터 5시 57분까지 방송 중인 MBC 간판 라디오프로그램이다. 정선희는 최유라 후임으로 2017년 2월1일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24년간 故 이종환을 비롯해 이윤철 전유성 이재용 조영남 박수홍 등이 거쳐갔다. 정선희가 두번째 여성 간판 DJ로 나서면서 문천식이 파트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선 청취율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얼마 전 해외 스케줄로 일주일간 선후배 동료들이 대타로 진행했다. 무슨 긴박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게 됐는지 궁금하다.
미국에 본사를 둔 G&M이란 문화재단이 있어요. 일종의 봉사활동인데 제가 고문을 맡고 있죠. 오래 전부터 본사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던 데다 라디오 진행을 2년간 하면서 하루도 쉬질 못했거든요. 휴가를 겸해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강연도 하는 스케줄이었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 큰 보람을 안고 왔어요.
정선희는 지난 3월3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간 휴가를 겸한 문화재단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그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라디오는 센스와 입담을 겸비한 스페셜 DJ들이 문천식과 호흡을 맞췄다. 윤택이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및 '행복한 월요일'을 진행한데 이어, 장도연(화) 노사연(수) 장윤정(목) 신봉선(금) 등이 품앗이를 했다.
-방송 외에 요즘엔 강연활동이 부쩍 많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내용을 담아내는지 궁금하다.
저는 한때 '울화의 아이콘'이자 '절망의 아이콘'이었어요.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소문 때문에 힘들었죠. 아무리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 해도 세상사람들은 남의 얘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더라고요. 방송에 다시 복귀한 뒤에도 제 개인 얘기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됐고, 누군가는 제 얘기에 공감하고 힐링할 수 있다면 다행이란 생각을 했어요. 저 또한 평안을 되찾게 됐죠.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껴요.
정선희는 일주일에 평균 2~3차례 강연 일정을 잡는다. 주로 기업체 또는 여성단체, 학교, 지자체 등이 대상이다. 현대인의 '스트레스 극복'을 주제로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그는 "제가 겪은 힘든 경험을 다른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힐링할 수 있다는게 강연의 매력인 것같다"고 말했다. 정선희는 번역서 '하루 세 줄, 마음 정리법'을 출간한 바 있다.
-2008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겠지만 11년 전의 심경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간다.
불행은 연달아 온다는 화불단행(禍不單行) 이란 말이 있잖아요. 가까운 분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고, 저 역시 회오리에 휩쓸렸으니까요. 동정을 받기도 싫었고, 오해를 받는 건 더 싫었어요. 모든 게 억울했고 분했지만 언론의 왜곡된 보도까지 바로 잡는데는 역부족이었어요. 마치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그런 심정이었죠. 방송복귀는커녕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도 걱정됐어요. 결국 시간이 무너진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믿어요.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서 정선희는 시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8년 남편 故 안재환의 극단적 선택과 함께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를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안재환은 죽기전 부모님에게 '먼저 세상을 뜨는 저를 용서해달라'는 글과 함께 '국민 여러분 선희에게 잘 해주세요'란 당부를 해 안타까운 심정을 더했다. 각별했던 사이였던 고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죽음도 힘들게 했다.
-한동안은 언론과 접촉을 끊고 주변사람들과도 극히 폐쇄적 교감을 했던 것으로 안다.
상황이 그랬어요. 근데 더이상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더라고요.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한 가지 다행이라고 여긴 건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참 많다는 사실이었어요. 극복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라고 여겼지만, 결국 주변에서 용기를 주더라고요.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깨달았죠. 막다른 길에서 방황을 하니 어느 순간 가족들이 내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게 더 견디기 힘들었고, 그런 가족들한테 미안하고 고마워서 삶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정선희가 가장 억울한 부분은 왜곡된 소문 때문이다. 잘못 알려진 사실로 인해 대중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그는 "그 마저도 모두 내 탓이라며 수긍하고 받아들였다"면서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부당한 시선과 욕을 먹으면서도 그는 심야 라디오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힘과 용기를 냈다. 청취자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한걸음씩 공감대를 엮어갔다.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얘기를 많이 해준다고 들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나? 변화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같은 '돌싱'이라도 저는 좀 상황이 달라요. 전 남편과 불행한 이별을 하지 않았다면 벌써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지도 몰라요.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그런 욕심을 버리기로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결국 '과거 일'로 인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일'로 많이 잃었지만 한편으로는 좀더 깊이 있는 삶의 목표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해요. 이 모든 건 숙명인지도 모르죠.
정선희는 절대 독신주의가 아니라면서도 결혼 할 수 없는 입장을 덤덤하게 말했다. 어머니와 단촐한 식구이지만 'TV 동물농장'을 진행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인연을 맺은 반려견들도 가족의 일원이 됐다. 한때 8마리까지 키우다 4명이 떠난 뒤엔 '이별'이 힘들어 더이상 식구를 늘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선희는 "행복의 기준은 모두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 내 슬픔을 뽐내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시련을 겪으면 더 성숙하기 마련이다. 정선희는 10여년 전 '불행한 개인사'를 겪으며 방송활동 중단 등 누구보다 긴 고난과 방황의 아픔을 겪었지만 좌절을 딛고 우뚝 섰다.
필자 역시 인터뷰 중 故 안재환의 불행한 죽음을 떠올리는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언급하면서 가장 조심스러웠다. 이에 대해 정선희는 "아닌 척하는 건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면서 "힘들었지만 이미 모든걸 극복했기 때문에 아픈 기억들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선희는 요즘 TV 예능프로그램 MC와 라디오 DJ 등 특유의 맛깔스런 진행으로 사랑받고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선희답고' '정선희스런' 유쾌함으로 교감한다. 속마음은 아무리 감춰도 결국 표정으로 묻어나기 마련이다. 꽃샘추위와 미세먼지의 터널을 벗은 화창한 봄날, 서른 세번째 스페셜인터뷰이로 만난 정선희는 필자에게도 반짝이는 '행복천사'로 비쳤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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