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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㉔-송해] "술 두세 병은 거뜬, 100살까지 뛰겠다"

  • 오피니언 | 2019-02-10 09:1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해는 9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에 넘친다. 그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고령 현역 방송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선화 기자

'전국노래자랑' MC 송해(93·본명 송복희)는 마이크만 잡으면 펄펄 난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고령 현역 방송인이자 온국민의 지지와 함께 사실상 첫 종신 MC로 인정받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환갑 넘어 마이크를 잡고 무려 33년째 국민가요프로그램을 진행중인 그는 "건강이 허락하면 100살까지는 거뜬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송해의 인생과 삶을 조명한 평전(評傳) '나는 딴따라다'를 쓴 오민석 시인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한 종신 무대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랑극단 출신 MC, 지금껏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유쾌한 재치와 만담에 대한민국 남녀노소가 울고 웃는다. 송해의 매력은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깊은 장맛 같은' 진행이다. 놀랍게도 그는 구순을 넘어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더 활력이 넘쳐보인다. 비결은 '끝없는 마이크 사랑'이다. 구순 기념 헌정 공연 당시 그는 필자에게 "무대에서 쓰러질지언정 포기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송해는 식지않는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송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헐리우드 극장 주변 일대는 그가 반세기 가까이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일군 터전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았다. 여러차례 스케줄 조정 끝에 어렵게 성사된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원로연예인들의 사랑방으로 통하는 종로3가 상록회 사무실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건강 비결이요? 잘 먹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뿐이죠." 송해는 매일 목욕을 일상화하는 등 평생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하며 건강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낙원동에 위치한 상록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선화 기자

-93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정정해 보인다. 무엇보다 건강유지 비결이 궁금하다.

비결이 따로 있나요? 잘 먹고 열심히 걷는 게 다예요. 제 나이에 무슨 운동을 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되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하려고 노력하죠. 매일 목욕하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예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기만 해도 건강에 좋은 활력소가 생겨요.

그는 전국노래자랑' 지방을 다니면, 주변 가까운 관광지나 명소를 직접 걸어다니며 둘러본다. 지역 관계자들한테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바를 방송에서 멘트로도 활용한다. 녹화가 없는 날이면 종로3가 상록회 사무실로 출근해 지인들과 어울리고, 오후 4시엔 어김없이 근처 사우나(송해사우나)에서 목욕을 즐긴다.

-'전국노래자랑'은 올해로 33년째, 단일프로그램으로는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마이크 앞에 서는 게 힘에 부치지는 않나?

90세 넘어 현역 방송인은 없다고 들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하리라곤 생각 못했지만, 이젠 안하면 섭섭할 것같습니다. 힘에 부치기는커녕 몸이 아프다가도 녹화날만 되면 신기하게 가뿐해져요. 아직은 열정이 샘솟으니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만 두겠다는 건 생각조차 안해요. 건강이 허락하고 시청자들이 원하신다면 100살까지는 채우고 싶어요.

현재 KBS 내에서 '전국노래자랑' MC 교체를 언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제작진은 말할 것도 없고 윗선에서조차 암묵적인 금기사항이 돼 있다. 자칫 말을 잘못 꺼내놓았다가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는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없는 '전국노래자랑'은 상상할 수 없다. 가장 큰 우군은 바로 시청자들이다.

송해는
송해는 "아내가 먼저 떠났어도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면서 "다만 대중문화계 선후배 간 끈끈한 유대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슬프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선화 기자

-여전히 약주를 즐기신다고 들었다. 연세를 감안하면 건강을 위해 줄이셔도 좋을듯 하다.

젊은 시절 하루 10병씩 마실 때와 비교하면 많이 줄인 셈이에요. 제 나이가 어디 만용을 부릴 때인가요? 말 그대로 약주를 즐기는 수준이죠. 아직은 활동을 해서 그런지 한 자리에서 2~3병 정도는 거뜬해요. 지금 종로3가에서 함께 어울리는 동료들이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려요. 다 동생들인데 대부분은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저만큼 못마시죠.

송해는 필자와 인터뷰 직후 "지금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며 식사에 초청했다. 근처 식당(마산아구찜)에서 자리를 함께 한 뒤 "오늘은 약간 감기 기운이 있어 자제하겠다"면서도 "건배 술은 한잔 해야한다"며 필자에게도 직접 따라줬다. 식당을 드나드는 손님들로부터 "송해선생님 건강하세요" "뵙게 돼 영광입니다" 등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반갑다"며 일일이 응대주는건 물론 사진촬영 요청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 활동하고 계신데 연예인으로 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뭔가?

대중문화계 선후배간 끈끈한 유대감이 사라지고 있다는게 슬퍼요. 엔터 산업이 확대되고 커지면서 연예인들의 위상이 상승한 건 고마운 일인데, 인기와 수입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개인화 돼가는 것이죠. 과거에도 인기에 따라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나 지금처럼 삭막하지는 않았어요. 딴따라로 비하받는 힘든 시기였어도 연예인들끼리는 정(情)이 넘쳤어요. 인기가 좀 없더라도 선배대접을 해주는 풍토였거든요.

선후배간 유대감에 대해 그는 "故 구봉서 선배와는 불과 1년 차이였어도 평생 형님으로 깎듯이 모셨다"고 했다. 그는 또 "한류바람이 거세지면서 전통 가요를 '한물 간' 또는 '흘러간' 노래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로트는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 못지않게 지난 100년간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대변해온 대중가요"라고 강조했다. 송해는 마이크를 잡고 소개할 땐 반드시 '추억의 노래' '그리운 노래' '다시 들어보고 싶은 노래'라고 소개한다.

서울 종로3가 낙원동 일대는 송해거리로 지정돼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진은 송해 개인 사무실이 있는 낙원동 상록회관 근처 송해 비 앞에서 변아영 송해 엄용수 김남칠(왼쪽부터). /이선화 기자
서울 종로3가 낙원동 일대는 송해거리로 지정돼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진은 송해 개인 사무실이 있는 낙원동 상록회관 근처 송해 비 앞에서 변아영 송해 엄용수 김남칠(왼쪽부터). /이선화 기자

-'전국노래자랑' MC로 활동하면서 직접 발표한 히트곡도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있나?

가끔 부르는 '나팔꽃 인생'은 우리나라 재래꽃이에요. 하루일과를 마칠 때쯤 인 오후에 시들시들해졌다가 다음날 아침 이슬을 받으면 다시 활짝 피어나요. 우리네 인생과 너무 흡사하잖아요. 가사만 들어봐도 알죠. 와닿는 구석이 많아요. 악단장인 신대성씨가 곡을 붙였는데 연예인으로 살아온 제 모습을 보는듯 기묘하게 많이 닮았어요.

송해의 삶은 우리 근현대사와 항상 궤를 같이 했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해주예술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국립극단 단원으로 북한을 돌며 순회공연을 했고, 6.25가 발발한 이후 1.4후퇴 때 월남해 3년8개월 동안 군예대에서 위문공연을 했다. 전역후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데뷔해 활약하던 중 1960년 KBS라디오 '샘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는다. 악극단 데뷔로는 65년, 방송 데뷔로는 60년 연예계 인생이다.

-지금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목소리로 열창을 하신다. 연세에 비해 기억력이 남다르다.

마이크를 잡고 꾸준히 활동을 하다보니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같아요. 기계도 자꾸 써야 녹슬지 않듯 사람도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 흐트러지지 않아요. 아마 노래도 관성적으로 가능해진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음정이나 박자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어도 호흡이 거칠어지면 맞추기가 힘들거든요.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 70대 후반이나 80대 출연자가 노래할 때 따라 부르거나, 2절을 통째로 부르곤 한다. 그는 "내가 더 잘 부른다고 자랑하거나 비교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거들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을 때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자가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려도 마치 스승이 제자 앞에서 시범보이듯 웬만한 노래는 즉석에서 소화해곤한다.

"건강만 받쳐주면 무대를 떠날 생각이 없어요." 송해는 여전히 왕성한 기력으로 '전국노래자랑' MC를 맡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시종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응했다. /이선화 기자

-송해코미디박물관을 건립 중이라고 들었다. 이미 송해공원, 송해거리 등 브랜드 상징성이 크다.

대구 달성에 공원이 조성돼 연간 100만명 가까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해졌어요. 지자체가 여기에 박물관을 지어 상징성을 더 키우려고 하는건데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죠. 제가 연예활동을 하면서 모은 대본이나 상장, 상패, 악단공연 의상 등은 기본이고, 소문을 듣고 팬들이나 지인들이 보내준 각종 물품들이 많아요. 제 사무실에 보관하다 너무 많아져서 위층을 하나 더 임대해 박물관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 보관하고 있어요.

달성군청은 송해의 부인 故 석옥이 여사 고향이 옥포읍 옥연지 인근이라는 점에 착안해 2016년 65만7000㎡ 규모의 스토리텔링형 송해공원을 조성했다. 옥연지를 둘러싼 10.5㎞의 둘레길, 전국에서 둘째로 큰 10m의 대형 물레방아, 100세 시대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백세교와 백세정, 오색풍차, 송해폭포, 출렁다리 등을 조성하고 금굴과 삼림욕장을 갖췄다. 앞서 서울 종로낙원동 일대에는 송해거리가 조성돼 매년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전국 노래자랑' 외에도 활동영역이 많은 편인데 올해도 콘서트는 계속 할 계획인가.

구순이 넘어 돈을 받는 유료콘서트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적이지요. 84살에 생애 첫 콘서트란 걸 했어요. '최장수 무대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추천될 만큼 늦게 시작했으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래 하고 싶죠. 건강만 받쳐주면 무대를 떠날 생각이 없어요. 아쉬운 건 저를 보러 오시는 분들께 무료로 무대에 서고 싶어도 공연 비용 때문에 부득이 티켓을 발매해야한다는 거예요.

송해한테는 세 가지가 없다. 매니저, 자동차, 스마트폰 없는 이른바 3무(三無) 연예인이다. 그럼에도 '전국노래자랑' 진행과 콘서트 외에 의미있는 활동을 많이 한다. 특히 서울 종로 낙원동에서 오래동안 해온 무료봉사활동 등은 유명하다. 악기상가 내 극장 허리우드 극장(김은주 대표)에선 매주 한 차례씩 후배 가수들과 무료 공연을 하고 자신보다 '나이어린 어르신들'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종로 3가 일대 상가 업주들은 "송해 선생님 덕분에 불경기에도 이곳은 늘 호황"이라며 반기는 이유다.

송해는 환갑 넘어 마이크를 잡고 무려 33년째 국민가요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그는
송해는 환갑 넘어 마이크를 잡고 무려 33년째 국민가요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면 100살까지는 거뜬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배정한 기자

-마지막으로, 부인 고 석옥이 여사가 떠나신 뒤 무척 외로워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누구와 함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누구나 한번 오면 다시 가는 게 인생 아닙니까? 순리에 따라 살고 순응해야죠. 나이 들수록 아내의 빈 자리는 클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외로워서 못견딜 정도는 아니에요. 아내가 먼저 간 뒤 혼자 살아도 두 딸이 바로 이웃으로 한가족처럼 살고 있으니까요. 주로 집 밖에 스케줄이 많아 바쁘게 활동하보면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지요.

부인 고 석옥이 여사는 지난해 1월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6.25 전쟁통에 결혼식을 못한 아쉬움을 리마인드 웨딩으로 달래 찡한 감동을 안겼다. 발인을 하면서 그는 "붙잡으면 무슨 소용 있나. 조금 먼저 갈 따름이야. 열심히 애들 보살필 테니까 마음 놓고 (가)"라며 비통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1986년 아들(당시 21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큰딸 작은 딸 모두 바로 이웃해 살고 있다.

"든든한 후배님들이 있어 오늘날 제가 존재합니다." 송해는 지난달 31일 서울 대방동 해군호텔에서 가진 한국코미디협회가 주관한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덕담을 겸한 멋진 신년사로 눈길을 끌었다. /강일홍 기자

이 시대 진정한 예인(藝人)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는 송해는 환갑이 지나서 잡은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올해로 38년째 쥐고 있다.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방송 진행자로 건재를 과시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다. 국내외를 통틀어 사실상 유일무이한 90대 방송인이다.

송해는 90살이 넘어도 여전히 '송해 오빠'로 불리고 '인터넷 안티팬'이 없는 연예인으로도 유명하다. 인터뷰 직후 이날 서울 대방동 해군호텔에서 가진 코미디협회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역시 최고령 선배로서 "새배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으로 신년사를 했다. 매년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는 '일요일의 남자' 송해, 필자에게 비친 그는 그야말로 스페셜 중의 스페셜인터뷰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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