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엽 기자]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전성시대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스포츠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를 떠올리면 남성들의 얼굴이 먼저 그려졌다. 그러나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스포츠 세계에 여성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그 양상은 달라졌다. 공중파 스포츠 뉴스에서도 여성 아나운서가 메인 진행자로 나서고 있다.
물론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스포츠는 처음부터 자신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다.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포츠에 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색깔 있는 진행으로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더팩트>은 공중파 방송3사에서 스포츠 뉴스를 책임지고 있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인공으로 MBC '스포츠매거진' 이진(25) 아나운서를 23일 오전 여의도 MBC에서 만났다. 라디오 방송을 갓 마치고 글쓴이를 만났지만 특유의 밝은 미소와 침착한 어투로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스포츠 뉴스 진행 "정말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아요"
"스포츠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해요. 학창 시절에 우연히 배구 올스타전 입장권이 생겨서 구경하러 갔었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이후 조금씩 경기장을 찾게 되고 야구, 농구, 축구 같은 대중적인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죠. 운동 신경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은 편이에요.(웃음)"
등산을 좋아해 평소 청계산과 북한산을 오르내릴 정도로 운동에 관심이 있는 그가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게 됐을 당시의 소감이 궁금했다. "스포츠매거진과 저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아나운서를 꿈꾸고 있을 때 리포터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요. 처음으로 방송에 얼굴을 알린 것도 스포츠매거진에요. 그런데 입사 후 처음으로 배정을 받은 프로그램도 공교롭게 스포츠매거진이었죠. 신기하면서 인연인가 싶었어요."
"스포츠 분야에서 크게 활약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포츠매거진을 오래 하고 싶어요. 아직 대부분의 여성분들이 스포츠에 전문적이진 않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조금씩 편안하고 재미있게 스포츠 소식을 전달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답니다.(웃음)"

◆ 스포츠 모르는 여자, '정신없는' 방송 준비 과정
스포츠매거진 녹화는 매주 토요일 오후 9시쯤에 시작된다. 이 아나운서는 녹화 3시간 전 간단한 메이크업을 진행한 뒤, 방송에서 소개할 경기 내용을 파악한다. 대본이 나오면 꼼꼼하게 훑어보고 입에 맞지 않는 표현은 곱씹는다. 반복해서 틀린 부분과 추가할 내용을 정리한다. 그러다 보면 녹화 시작 30분전이 된다. 의상을 체크하고 그 사이 새로운 뉴스가 없는지 다시 확인한다. 방송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사전 멘트를 맞추고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이 아나운서는 아직 본인이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며 고충을 털어 놓는다. "선수들의 이름을 아직 잘 몰라요. 특히 외국인 선수들의 이름은 어려워서 더욱 신경을 쓰죠. 스포츠 용어는 어려운 게 많잖아요? 기본적인 규칙도 알고 있어야 진행을 할 때 어색하지 않죠. 그래서 틈틈이 공부해요"라며 "요즘에는 인터넷만 봐도 알기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참고하고 있어요."
어느 누구보다 철저한 준비로 방송에 나서는 이 아나운서도 실수 할 때는 있다. "한 번은 야구 순위를 알려주는데, 아직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보니깐 대본에 엄청 큰 글씨로 써놨었거든요? 그런데 잘못 읽었는지 완전 뒤죽박죽 이야기를 한 거예요. 예를 들어 1위는 한화, 2위는 LG라는 식으로요…너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마쳐서 주변 분들도 처음에는 모르고 넘어갔어요. 녹화 방송이었기에 다행이었죠.(웃음)"

◆ 스피드 좋아하는 이진의 매력? '스포츠' 삼행시로 '종결'
이 아나운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F1을 가장 좋아해요.(웃음) 남자들이 보통 자동차를 좋아하잖아요. 여자인 제가 F1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놀라세요"라며 웃는다. "예전에 스포츠매거진 리포터를 하면서 모터쇼에 갔었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실제로 자동차에 탑승해 봤는데, 흔들거리면서 앞으로 나가는 게 재밌더라고요. 엔진 소리도 좋았고요. F1에 정말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오는 10월 영암에서 F1 그랑프리가 열리는데 제작진에 꼭 보내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도 남달랐다.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승부와 슬램덩크에 푹 빠져있을 때는 우지원 선수의 팬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좋아했던 선수는 현실에는 없지만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윤대협과 서태웅의 팬이랍니다. 정말 멋지지 않나요? 생각만 해도 흐뭇하네요"라며 밝게 웃는다.
이 아나운서와 스포츠 이야기에 푹 빠졌을 무렵, 난데없이 '스포츠'로 삼행시를 부탁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유는 스포츠에 '츠'자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스! 스피드를 좋아하는 이진입니다. 포! 포스가 다른 아나운서가 되고 싶네요. 츠! 츠~은 천히 저의 매력으로 빠져 보시죠"라며 재치 있는 삼행시로 응해 탄성이 절로 나왔다.

◆ '엄친 딸' 이진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지난해 11월 MBC에 입사한 이 아나운서의 경력은 화려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외고를 졸업한 뒤 명문대에 진학해 신문방송학을 수학했다. 대학생이던 2007년에는 무심코 참가한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본선까지 올라 미를 수상했다. 2009년에는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국보급 미모 엄친 딸 이진'이라고 극찬을 받아 화제의 인물이 됐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성공한 모습만 비춰지고, 실패를 이야기 하지 않아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제작진 측에서 제가 가진 것 보다 훨씬 좋게 포장해주신 면이 없지 않았어요. 좋은 것만 모아서 '엄친 딸' 로 만들어 주셨던 것 같아요."
"공부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성격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엉뚱한 면이 참 많아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보다 활발하고 털털해요. 먹을 것도 엄청 좋아하고요. 평소에는 운동화를 주로 신고 화장도 안하고 다녀요"라며 "실제 모습을 방송에서 보이기는 쉽지 않잖아요? 저의 다른 부분도 잘 찾아보시면 매우 많다는 것을 아실거에요"라고 전했다.

◆ '아나운서' 이진, 그의 인생관은 "구름이 흘러가듯…"
2007 미스코리아 미에 당선돼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 분야에 흥미를 느꼈단다.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좋았고,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심었다. 진로를 모색하던 그는 뉴스와 라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연이은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세 번째 도전 만에 당당히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인생을 구름이 지나가듯 천천히 살고 싶어요. 포물선을 그리는 안정적인 삶이랄까요. 욕심을 내서 수직 상승을 목표로 하는 삶이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한 계단씩 오르고 싶어요. 지금하고 있는 이 일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반성하며 살고 있죠.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면, 자녀가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 아나운서. "아나운서를 그만 두게 될 때 주변으로부터 '이진 아나운서가 이거 하나는 정말 잘했어", "그 방송은 정말 훌륭했어"라고 회자 될 수 있는 아나운서로 거듭나고 싶다는 포부처럼 스포츠계를 넘어서 언제나 고공비행하는 그의 유쾌한 행보를 기대해본다.
< 글 = 신원엽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wannabe2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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