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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④] 양군파 vs 주노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사진=스포츠서울DB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사진=스포츠서울DB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①] 춤꾼들의 성지, ‘문나이트클럽’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②] 양현석, '춤귀신'으로 불린 시절

▶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②] ‘양군 패밀리’의 등장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3편에 이어…

(내가 양군파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난 후 이주노가 댄스팀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점차 윤곽이 드러났다. 그 결과 문나이트클럽은 양군파, 주노파로 양분됐다.

양군파에는 나를 비롯해 ‘지누션’ 션, 오용주 등이, 주노파에는 디엠스쿨원장 강민, 인댄스원장 서진석, 지준구, 한현남, 송진아(이하 영턱스멤버) 등이 속했다. 이주노가 춤을 잘 추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 당시 (주관적인 의견일 수 있으나) 양현석이 더 압도적인 춤을 구사했다. 동생들 역시 출중해 춤 실력만큼은 ‘양군파’의 우세였다.

주노파 동생들은 항상 양군파 동생들을 동경했다. 문나이트클럽에 양군파가 들어오면 주노파는 제대로 춤을 추지 못했다. 그냥 서서 리듬 하나만 타도 그 아우라에 기가 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양현석이 “주노형이 동생들을 키운다는데 그곳에 가자. 만약 춤 배틀에서 지면 나 볼 생각마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서울 방배동에 있는 이주노 연습실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연습실 창문에 걸터앉은 이주노가 “여기다 차 대”한 뒤 우리를 연습실 데리고 들어왔다.

그때 이주노는 쇼파에 앉아 동생들을 연습시키고 있었고, 우리도 자연스레 쇼파에 앉았다. 하지만 양현석이 갑자기 “너네 왜 앉아! 춤 안 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일어나 주노파 동생들에게 춤 배틀을 걸었다. 난 목각기(목 부위를 꺽어서 주는 팝)라는 춤으로 이쪽 세계에선 이미 유명한 상태였다. 이 춤으로 주노파의 기를 꺾은 뒤 연타로 오용주가 주특기인 ‘필’ 충만한 문워커 댄스로, 마지막으로 김호진이 ‘죽음의’ 밸런스 댄스로 주노파 동생들은 녹다운시켰다.

이후 이주노가 “야~니네도 보여줘”라고 자신의 오른팔 강민에게 지시 내렸다. 그러자 강민은 개인기로는 답이 없다면서 단체 안무로 맞섰다. 그들의 안무는 충격적이었다. 왜냐면 우린 개인 기량은 좋았지만 단체 안무 능력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걸 계기로 교훈을 얻어 죽도록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5편은 23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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