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철 기자]한나라당내 젊은 의원들 사이에 오가는 우스갯말이 있다. 바로 ‘소장파는 없고 쇄신파만 남았다’는 자조섞인 말이다. 소장파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소장(少壯)은 ‘어리고 씩씩하다’는(정력적인, 원기 왕성한) 뜻이다. 즉, 소장파(少壯派)란 어떤 조직이나 단체 안에서 주로 젊은 층이 모여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는 파(派)를 말한다.
한나라당내 소장파라고 하면 대표적인 단어가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벌써 3선급 이상으로 ‘중진’인데다 나이도 40대 중반을 훌쩍 넘었고 50대 초반으로 접어든 인사도 있다. 더 이상 소장파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한나라당에서 ‘남원정’으로 대표되는 소장파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6대였다. 당시 젊은 초선의원이었던 3총사는 ‘미래연대’(미래를위한청년연대)를 결성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 모임에서 활동했다. 젊은 초선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미래연대는 민주당 소장파와 함께 국가보안법 개정안 발의를 시도하면서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2004년 17대 공천을 앞두고 소장파는 ‘보수 중진의 물갈이론’을 주장하면서 공천혁명을 주도했다. 당시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을 선봉장으로 최병렬 대표를 포함, 60여명의 현역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힘을 받은 당내 소장 개혁파들은 17대 들어서자 당권 갈등으로 지지부진하던 미래연대를 해체하고 새정치수요모임을 결성해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박형준, 김희정, 이성권 의원 등 젊은 부산출신 젊은 초선의원들이 합세하면서 기세도 등등했다.
탄력 받은 소장파들은 그해 7월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원희룡 의원을 내세워 박근혜 전 대표 다음으로 2위를 만들면서 당내 차세대 지도자로서 우뚝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5년 전당대회를 맞이해 수요모임은 분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내 중립모임인 ‘푸른정책연구모임’과 사전 경선을 통해 권영세 의원을 단일 후보로 선출했지만 정작 본선에서 권 의원을 밀지 않으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당안팎에선 소장파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이재오, 홍준표, 박계동 등 당내 중진 의원을 누르고 소장파가 지지한 오세훈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재차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대선을 맞이해 소장파는 지지하던 손학규 전 도지사가 탈당을 하면서 중심점을 잃기 시작해 모래알처럼 흩어지면서 독자세력화하는 데 실패했다.
소장파의 등장은 화려했다. 하지만 16, 17대를 거치면서 몇몇 소수만 차세대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굳혔다는 점을 제외하곤 개혁적인 언행에 비해 결과물은 미비했다. 또한 독자적인 세를 규합하지 못했다는 점, 자기 정치에만 몰두한다는 점 등 비판을 받으면서 ‘행동은 없고 말만 앞선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20여명의 회원중 공천을 받아 생환한 인사는 남원정을 비롯해 권영세, 진수희 의원 등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쇠락했다. 나머지 회원들 다수는 공천 자체를 못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소멸된 소장파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당내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본21’이라는 쇄신파 모임으로 간판을 바꿨다. 십여명의 개혁 성향의 초선 모임으로 과거 소장파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야당 시절 ‘소장파’와 여당내 ‘쇄신파’의 역할과 위상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중반만 해도 ‘국정 기조의 쇄신’, ‘당정청 인적 개편’, ‘당 화합’ 등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당 건의사항을 이명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 참패이후에도 쇄신파는 재차 당·정·청의 전면개편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2010년 전당대회에선 민본21로 공동 간사인 김성식 의원이 단일후보로 도전했지만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2011년에는 4.27재보선 참패이후 민본21은 내부에서 해체 의견이 나올 정도로 위기감에 휩싸였다. 결국 ‘새로운 한나라’라는 민본21을 주축으로 재선의원까지 가세시켜 40여명까지 외연을 확대했다.
그 실험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5월달에 개최된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인 황우여 의원을 원내사령탑으로 당선시켰기 때문이다. 당안팎에선 신주류라는 평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7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한나라’는 남경필 의원을 내세워 당 대표를 노렸지만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라는 두 거대한 계파에 포위돼 가까스로 5위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민본21 역시 과거 소장파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어두운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민본21은 해체의 기로에서 오히려 ‘새로운 한나라’를 탈퇴해 새로운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쇄신파’로서 이명박 정권 임기말을 맞이해 당내 ‘거수기’로서 역할보다 ‘여당내 야당’으로서 차별화된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친이계에선 ‘박근혜 전위부대’로 나서는 게 아니냐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피투데이>가 지령 122호를 맞이해 한나라당 원조 소장파와 권토중래를 꿈꾸는 쇄신파를 재조명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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