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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왜 그들은 K리그를 눈물짓게 했는가

[김용일 기자] 얽힌 실타래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사상 초유의 K리그 승부 조작 스캔들은 아픔을 넘어 불신으로 이어졌다. 한국 축구의 맑은 샘을 찾기 위한 과도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거짓으로 변질돼 그 상처는 더욱 커졌다.

축구라는 스포츠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승부욕, 다수가 참여해 누구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승부 조작 파문은 이러한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한 중대한 사안이다. 일부의 문제가 아닌 프로 스포츠, 더 나아가 한국의 학원 스포츠의 뿌리를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승부 조작 수사 결과를 놓고 좀 더 원천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해 볼 필요가 있었다. <더팩트>은 13일 오전 서초동 체육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스포츠 심리학 박사인 허정훈 중앙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승부 조작에 관련한 내용을 스포츠 심리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느냐가 인터뷰의 주제였다.





▲ 심리학 박사인 허정훈 중앙대학교 교수
▲ 심리학 박사인 허정훈 중앙대학교 교수

- K리그 승부 조작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셨는지.

예전에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관전했을 때였다. 고등학교 경기였다. 처음부터 이상한 느낌이었다. 설렁설렁 뛰는 것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고3 선수들의 대학교 진학 문제로 양팀 감독과 학부모들이 사전에 경기 내용을 조율한 것이었다. K리그 승부 조작은 스포츠맨십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옳지 못한 '문화의 학습화'가 주된 원인이다.

한국의 학원 스포츠는 치열한 경쟁 구도와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선후배간의 잘못된 의리, 대학 진학과 관련한 검은 유혹들을 자주 접한다. 학습 과정도 뒤떨어져 있어 외부의 옳지 못한 유혹에 대해서 제대로 된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의리로 무장한 '관계'와 성공을 미끼로 한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식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허 교수는 이 같은 학원 스포츠의 폐해를 예로 들며 K리그 승부 조작을 바라봤다. 축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많은 선수들이 집단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는 합숙 생활은 팀 동료들 외에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을 여건이 부족하다. 심리학적으로 고립감, 의존감, 자기중심적 속성이 가장 많은 스포츠로 통한다. 최근에는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상급자에 대한 복종 개념이 워낙 강했던 것도 이유였다.

- 승부 조작 개선안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도입한다는데.

싱가포르 프로축구리그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문화는 싱가포르와 다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담배꽁초만 버려도 법적 제재가 강하지 않은가. 교통 법규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다. 물론 최근 승부 조작 논란이 커져 거짓말 탐지기 도입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거짓말 탐지기는 모든 선수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인권 문제도 있다. 예방적이고 교육적인 제도가 필요할 것 같다.





▲ 거짓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최성국(수원 삼성)
▲ 거짓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최성국(수원 삼성)

- '최성국 논란'이 거셌다. 운동선수들이 일반인과 차별된 심리적인 문제가 있나.

운동선수들의 성격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엘리트 선수들은 주관성이 뚜렷하다. 반면 평범한 선수들은 부정적인 정서가 상당히 높다. 최성국을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 해보지는 않았기에 정확한 분석을 할 수는 없다. 암묵적으로 '위기가 있었을 때 잘 넘겼으니까'하는 비도덕적인 관점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 학원 스포츠의 폐쇄성이 승부 조작의 주된 원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단,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학창 시절부터 승부 조작과 관련된 경험을 한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학습이 된 것이다. '괜찮구나'라는 생각으로 좋은 결과만 있다면 공정한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기본적인 가치를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 승부 조작으로 구속 선수들이 영구 제명됐다. 어떻게 보는가.

잘못을 한 선수들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들도 '제2의 피해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비난의 화살이 선수들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 스포츠의 구조 속에서 나온 결과다. 연결 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잘 파헤쳐야 할 것이다. 그 선수들의 미래는 그저 축구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영구제명을 당했는데 심적인 박탈감이 클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적으로 중도 탈락한 선수들을 연령대별로 연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그만두면 그래도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는 좀 늦었지만 잘 이겨 내서 일반인으로 성장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고등학교 이후부터 탈락할 경우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박탈감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K리그 승부 조작과 관련해 자살을 택한 선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허정훈 교수 제공>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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