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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획] '사격스타' 강초현, 김연아-손연재와 동시대였다면…

[ 김용일 기자]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 만개의 시기가 오면 다소 이르거나 혹은 늦더라도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만의 순간을 느끼며 각기 다른 시기에 기개를 뽐내고는 한다.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떠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강초현(30·한화 갤러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매화꽃처럼 다른 꽃들이 움도 틔우지 못한 이른 나이에 사격에서 기개를 뽐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사격에 입문했다. 그리고 5월에 만개하는 장미나 늦가을에 아름다운 빛을 선사하는 국화꽃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목표치를 향했다. 그러던 중 올림픽과 운명적인 만남은 그를 이른 성공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매화꽃의 애환처럼 춘삼월 찬이슬에 떨 듯 그 이후 외롭고 험난한 여정이 마주했다.

성적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주변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얻고 또 얻었다. 다시 자신이 만개하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고개를 들고 화사한 햇볕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강초현의 모교인 대전 유성여고에 마련된 '강초현 사격장'
▲ 강초현의 모교인 대전 유성여고에 마련된 '강초현 사격장'

5월의 마지막 날. 대전에 있는 유성여자고등학교. 이곳은 강초현의 모교이자 그의 이름을 딴 ‘강초현 사격장’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그 또한 여기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더팩트>은 원조 사격 스타로 ‘초롱이’로 기억되고 있는 강초현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 11년 전 시드니의 영광 재현? "총까지 바꿨어요"

시드니의 영광은 어느새 11년 전의 기억 속에 묻혔다. 강초현 역시 30대로 바뀌었다. 하지만 동안 외모는 여전했다. 세월의 무게를 떠안고도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저를 잊지 않고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으세요. 쑥스럽고 감사드려요."





▲11년 전 고교생 사격 신화를 썼던 강초현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1년 전 고교생 사격 신화를 썼던 강초현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초현은 그간의 세월을 스스로 돌아본다. 올림픽 후 11년 동안 왠지 떠밀려서 지낸 것 같다며 소리 내어 웃는다. 최근에는 총까지 바꿨다. 독일제 파인베르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 공기소총 은메달을 딸 때 사용했던 총이다.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예전 총보다는 체형에도 잘 맞고 편한 것 같아요.”

지난 5월 18일 창원종합사격장에서 열린 한화회장배 여자일반부 공기소총에서 394점으로 21위에 머물렀다. 이전 경호처장기에서는 392점이었다. 겨우 2점이 올랐지만 점점 발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본인도 “최근 감이 좋아졌다. 런던 올림픽을 향해 다시 달리고 싶다”고 말한다.

시드니 올림픽 이후 대표 선발전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오랜 부진을 겪은 이유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했어요. (사격이) 아무래도 집중력이 중요하잖아요? 주변 상황이 어수선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올림픽 금메달만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죠. 그때그때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데…. 준비 과정이 소홀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절치부심, 내년 런던올림픽을 향한 강초현의 의지는 남다르다
▲절치부심, 내년 런던올림픽을 향한 강초현의 의지는 남다르다

◆ "아빠, 정말 해내고 싶었는데…" 은메달의 추억

2000년 호주 세실파크에 태극기가 올라갔다. 강초현은 첫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확했다. 결선에서 8번 발까지 1위를 달렸지만 마지막 발에서 실수를 범해 0.2점차 역전을 허용했다. "(등수를 몰랐었다고?) 의식적으로 보지 않죠. 마지막 발을 쏘고 안 들어갔다고 생각을 했어요. 뒤를 보고 순위를 확인했을 때는 아쉬웠죠."

하지만 강초현의 첫 올림픽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이때부터다. 아쉬운 은메달에 고개를 젖히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데 단지 슬퍼서만 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카메라가 비추는데 왠지 2위니까 조금은 울어야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사실은 힘들었던 과정에 대한 기억과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교차했던 눈물이었어요."

또 하나의 명장면은 강초현이 시상대에 오르며 선보인 유쾌한 미소 한 방이었다. 한국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은메달도 뿌듯했어요. 지금 그 장면을 보면 오글거려요.(웃음) 그 전까지 시상식에서 은, 동메달을 따고 저처럼 좋아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기억해주시죠."

그렇지만 아픔도 있었다. 올림픽 직전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이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는 1971년 수류탄에 오른쪽 발목을 잃고 골수염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환경은 어려웠지만 이상은 높았죠. 아버지는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돌아가신 뒤 일기를 발견했는데 '가족을 위해서 더 건강하게 살아야 되는데 미안하다'는 것이었죠. 많이 울었어요. 집 근처 대전국립현충원을 자주 찾아요. 올림픽 은메달은 아버지가 하늘에서 주신 선물인 것 같아요. 정말."

◆ 당시 인기는? "군부대 소대원 단체 펜 레터 기억에 남아"

올림픽 후 강초현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인기 영화였던 '쉬리'에 등장한 북한 여자 특수요원 이방희와 견주는 등 가냘픈 몸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한 강초현에게 모두가 열광했다.

"신기했죠. 어리둥절했어요. 하루에 편지가 200통 넘게 왔어요. 한 번은 군부대에서 소대원 전체가 편지를 써서 보내셨어요. 글씨가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던 한 편지에서 '병장이 시켜서 억지로 쓰고 있다'고 적으셨더라고요.(웃음) 정말 영광이었어요."

스포츠의 세계에서 선수가 미디어의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경우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일찌감치 성공 후 관심을 받을 경우 언론 대처 능력이 미숙해 여론에 흔들려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팬들과 언론은 선수로서가 아닌 사적인 내용까지도 궁금해 하시잖아요? 그런 것을 피해 다닌 적도 있었어요. 미운털이 박힌 적도 있었고요. 2001년 서울에서 국제대회가 있었는데 올림픽 후 관심도가 매우 높았어요. 경기 당일 경기장에 가려고 하는데 TV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찌나 부담되던지…. 결국 그날 결과가 좋지 못했어요. 부진한 이유에 대해서도 인터뷰를 했어야 했고요."





▲11년 전의 일은 강초현에게 특별한 추억이 돼 돌아왔다
▲11년 전의 일은 강초현에게 특별한 추억이 돼 돌아왔다

◆ 시대가 달랐다면? "김연아 손연재 등 젊은 선수들 대단"

강초현의 당시 인기는 스포츠계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피겨 퀸' 김연아와 '체조 요정' 손연재와 자연스레 연동된다. 시대가 조금만 맞았다면 사격계에도 붐이 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만 해도 스포츠 매니지먼트가 생소했어요. 지금은 워낙 전문적이죠. 김연아, 손연재 선수 세대와 다르죠. 지금 시기와 맞물렸다면 사격 종목의 다양한 이벤트도 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면이 있어요."

비인기 종목이라는 서글픈 현실에 대해서는 오히려 담담했다. "늘 느끼고 있어요. 외국처럼 클럽 스포츠 문화가 발전된 것이 아니기에 관중도 없죠.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 국제 대회 성적이 중요한 것 같고요. 선수의 스타성도 필요해요. (제2의 강초현을 말하나) 사실 미안해요. 어느 후배가 잘 쏘면 '제2의 강초현'이라고 하시는데 민망합니다."

일부 종목에서는 대스타의 그늘에 가려져 은, 동메달이 빛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강초현도 후배들이 자신의 그늘에 가려진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사격 부흥을 위해 방송 출연은?)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출연하고 싶어요. 내년 런던 올림픽 대표에 꼭 국가대표로 선발돼 좋은 성적을 일궈 내는 것이 중요해요."

선수 이후에는 체육교사를 꿈꾸고 있다. 지금은 사선에 들어서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15년 넘게 운동을 했지만 사격이 그저 재미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질리는 순간이 오지 않는 한 사격과 인연은 계속될 것 같다.

혹자는 그에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느냐며 질시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강초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1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꽃이 피는 계절이 따로 있음을 알고 있다.

황혼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을 뿐이라고. 다소 늦더라도 사격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계절이 오면 11년 전 못지않은 희망찬 기개를 뽐낼 것이라 믿는다. 강초현,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질주를 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서 또 다른 강초현 신화를 기대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또 다른 강초현 신화를 기대한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K리그 명예기자 조현식>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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