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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매만지며 그는 오랜 시간 추억을 회상했다. 22년의 선수 생활 동안 화려한 만큼 아픔도 많이 겪었기에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삶의 또 다른 토대로 배구를 떼어놓을 수 없는 김세진이었다.
◆ 영광의 월드리그…'김세진' 이름 석 자 알리다
그에게 태극마크의 의미는 각별하다. 월드리그가 그 중심에 있다. 1990년 태동한 이 대회는 홈과 원정을 오가며 세계 배구의 최강국을 가리는 권위 있는 대회다. 우리나라는 1991년 제2회 대회부터 참가했다. 김세진이 월드리그에 첫 모습을 보인 것은 1992년. 당시 18세였다.
"너무 어렸을 때 대표팀에 들어갔죠. 고생도 많이 했고요. 선배들과 나이 차도 많았죠. 뭘 알았겠어요.(웃음)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누구보다 한 발짝 더 뛴 것 같아요."

거칠 것이 없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2년 만에 월드 스타로 도약했다. 1994년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 쿠바를 비롯해 네덜란드, 독일과 한 조를 이뤘다. 그리고 1승 11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정반대였다. 쿠바, 네덜란드에 4전 전패했지만 무기력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와 원정 2경기에서는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쿠바와 경기에서는 3세트를 따 내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를 좀 더 살펴보면 김세진의 공이 단연 컸다. 선배들의 부상을 틈타 주전 자리를 꿰차더니 높은 타점을 바탕으로 강력한 스파이크 꽂아넣었다. 100% 성공률을 자랑했다. 당시 우승은 이탈리아, 준우승은 쿠바가 차지했지만 최우수 공격상은 9위를 차지한 한국의 김세진의 차지였다. ‘베스트 6’에도 뽑히며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남자 배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것이다. 이어 1995년에는 기어코 세계 6위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이끌기도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공격상을 수상하면서 제 이름 석자를 남겼죠. 그 일을 계기로 배구에서 제 자리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 국가대표팀서 김세진이 '추장꾼'이라 불린 사연은?
월드리그 시절이 화려하긴 했지만 세계 각국을 오가는 것은 엄청난 체력 부담이었다. "아, 정말 할 짓 못돼요.(웃음) 어느 날에는 러시아로 떠났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더니 다시 이탈리아로 곧장 갔어요. 그리고 끝나면 또 쿠바로 들어가고요.(웃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행기 표가 없어서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를 거쳐서 들어가기도 했죠. 선수들이 최종 라운드가 끝나고 정말 다 뻗더라고요."
그래도 한 달에 5번 정도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외국을 오가는 테니스, 골프 선수들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고 말하는 김세진. 오랜 바깥 생활을 했기에 추억도 많다고 한다.
"먹는 문제가 가장 컸어요. 저는 태릉선수촌 식당에서 고추장 한 통을 얻어서 짊어지고 다녔어요. 그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빵에 고추장을 찍어 먹고 그랬거든요. 특히 쿠바는 정말 입에 맞는 음식이 없더라고요. 이탈리아도 로마, 베네치아 정도나 가야 좀 있지…. 그래서 제 별명이 '추장꾼'이었어요.(웃음) 하도 고추장을 좋아한다고 해서요."

고추장의 매운 맛이 통했을까. 김세진은 태극마크를 달고 일취월장하는 기량을 선보였다. 그리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금메달)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까지 활약했다. 12년 간의 국가대표 생활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행복한 추억이고 영광스러운 기억이죠. 하지만 아테네 올림픽은 가장 후회한 대회였어요. 다 아시겠지만 그해 이혼을 했죠…. 마음의 안정이 되지 못했어요. 함께 했던 멤버들에게 매우 죄송했고요."
◆ 이혼 아픔 딛고 일궈 낸 리그 9연패 "독주 비난에 대해서…"
2004년 김세진은 결혼 5년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조심스레 은퇴까지 결심했다. 주변 상황과 더불어 고질적인 무릎 부상도 한 몫 했다. 프로배구가 출범하며 그의 활약을 더욱 기대했건만 코트와 작별을 준비해야 했다.
"삼성화재에 통보를 했고 지인 댁에서 잠시 머물렀어요. 신치용 감독께서 설득도 하셨지만 아예 마음을 접은 상태였죠. (복귀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삼성화재에서 행사를 했는데 제가 안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참석을 했는데 마침 전지훈련을 앞둔 상태였죠. 그 현장에서 감독님과 선수들이 한결같이 '모두 지나간 과정이다. 다시 해보자'고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줬어요. 고마웠고요."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몸 안의 에너지를 남김 없이 쏟고자 하는 의욕이 솟았다. 그리고 팀의 맏형으로서 주 공격수이자 공수의 구심점으로 거듭났다. 프로배구 원년 우승과 함께 리그 9연패 신화를 쌓았다.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거머쥐었다.


"부침을 겪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죠. 동료들의 덕이라고 생각해요. 믿고 의지할 수 있었고 스스로 힘이 더 생겼고요. 심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후배들이 잘 따라 줘서 고마웠어요."
아름다운 결말을 이뤄 냈다. 리그 9연패와 77연승이라는 국내 프로스포츠 통틀어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겼다. 1996년 삼성화재 창단 멤버로 시작해 프로 원년까지 단 한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한때 흘러나온 삼성화재 독주 비난에 대해서도 "어느 팀이든 목적은 우승이죠. 스포츠에 양보가 있나요? 진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요."

◆ 눈물의 현역 은퇴식…감독·동료선수 모두 눈물바다
김세진은 2006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해 12월 27일 은퇴식이 있기까지 동료들도 그의 은퇴를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에 대한 결심은 서 있었다. 새로운 길까지 확정했다.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아니요. 그냥 글썽거렸죠.(웃음) 사실 은퇴식 때 단장님 말씀이 끝나고 제가 소감을 말하려고 하는데 신치용 감독께서 제 얘기를 듣는다고 서 계셨어요. 그런데 저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울먹이셨어요.(웃음) 그때, 감정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그래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지는 않았고요.(웃음)"


신 감독은 그야말로 아버지나 다름없다. 1991년 고등학생일 때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후 2006년까지 선수 생활 22년 중 17년을 함께했다. 신 감독도 '애제자' 김세진의 은퇴식 때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마이크를 잡지 않기도 했다. 은퇴식장은 눈물바다였다.
"팀워크에 대한 교과서를 보여준 것 같아요.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신 감독의 카리스마 아래서 공통의 목표 의식을 가졌죠. 큰 힘이 됐고, 서로의 능력을 신뢰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소중하게 현역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준 것에 감사합니다."

1편과 2편을 통해 본 김세진은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연상케 했다. 자신의 가치관과 주변인의 이상으로 괴리를 겪어야 했다. 화려했던 현역 생활에서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굳게 다졌고, 해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갖춘 것이다.
무엇보다 뼛속부터 끓고 있는 배구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미래에서 배구를 떼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현역 시절 이룬 성공을 은퇴 후 성공으로 이어가기만을 원하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과정을 밟고자 했다. 늦은 나이란 없다. 묵묵히 전진할 뿐이다. 행복은 꿈의 성취가 아닌 꿈꾸는 일 그 자체에 있듯이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신의 꿈을 간직하고 갈 것이다. 배구인 김세진은 말이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 [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 여섯 번째 주인공은 '레슬링계 전설' 심권호 편입니다.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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